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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붐 May 15. 2020

#4 산티아고 순례길 - 오늘은 잠시 쉬어갈게요.

다이내믹 순례길, 하루도 편히 지나가는 날이 없구나.

어제 너무 무리를 하기도 했고 순례길을 걸으며 만나는 몇 안 되는 대도시이기 때문에 수언니와 나는 오늘 하루는 팜플로나에서 쉬어가기로 했다. 아침식사를 신청했기 때문에 다른 순례자들과 마찬가지로 아침 일찍 일어나 그들과 함께 아침식사를 했다. 순례길에서 오늘 하루 얼마만큼의 거리를 걸을지는 본인이 정하는 것이지만 보통 알베르게가 모여있는 큰 마을을 도착점으로 하기 때문에 오늘 함께 걸은 순례자들을 내일 혹은 내일모레에도 계속 마주치는 경우가 많다. 또한 하루 6~7시간의 길을 걸으며 서로가 서로를 스쳐 지나갈 때마다 '부엔 까미노'라며 서로에게 격려와 응원의 인사말을 건네거나 잠깐 동안 함께 걸으며 스몰토크를 하기도 하기 때문에 낯익은 순례자들이 굉장히 많다. 오늘 헤어지면 지금까지 함께 걸었던 순례자들과 하루의 차이가 생기기 때문에 오늘의 인사가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 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들과 많은 것을 나누었나 보다. 

출처 - http://bitly.kr/4hLXhbuS3 


알베르게에서 하루 더 묵는다 하더라고 일정 시간(8시~14시였던 것 같은데 정확하지 않다) 동안에는 알베르게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수언니와 나는 간단한 채비를 하고 도시의 메인 거리로 향했다.  아무래도 순례자이기 때문에 행색이 굉장히 초라했다. 누가 봐도 순례자임이 티가 났다. 아침 일찍 문 연 곳들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카페에 가서 커피를 한잔하고 난 후 메인 거리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둘 다 쇼핑을 좋아하기 때문에 메인 거리에 있는 여러 상점들을 구경했다. 옷과 액세서리를 보는데 예전 같았으면 이것저것 대보며 쇼핑에 열을 올렸겠지만 눈에 띄는 아이템들을 봐도 시큰둥했다. '뭐지, 순례길 3일 차에 자연인이 다 된 것인가?' 그러면서도 한 헤어밴드가 눈에 띄었다. 여러 헤어밴드를 머리에 대보며 뭐가 더 나와 잘 어울리는지 대보는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 손에 들린 헤어밴드를 다시 자리에 내려놓았다. 


수언니와 간단한 점심을 먹고 다시 알베르게도 돌아갔다.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갑자기 알베르게 카운터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마치 도떼기시장인 양. 뭔 일인가 했더니 너무나도 익숙한 언어가 들렸다. 한국어였다. 급히 슬리퍼를 신고 카운터 쪽으로 향했다. 정말 장관이었다. 40여 명의 4~50대 중장년들이 본인 몸만 한 케리어를 끌며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여기가 스페인인지 한국인지 가늠이 안될 정도로 한국어로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로비에는 소란스러운 소리를 따라 로비로 몰려온 놀란 얼굴의 다른 외국인 순례자들도 있었다. 그들이 표정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나 역시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상황을 파악해보기로 했다. 그들은 한국의 **여행사의 단체여행객들이었다. 주 연령대는 4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었다. 그 소란스러움은 그 많은 인원들이 모두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각자의 침대를 배정받기까지 약 3~40분간 계속되었다. 그들의 배려 없는 행동이 같은 한국인으로서 너무 민망했다. 10kg가량의 배낭을 메고 하루 6~7시간을 걷고 녹초가 된 순례자들이 쉬는 쉼터인 알베르게에서의 정숙은 너무나도 당연한 룰이다. 그러나 단체관광객들은 그들이 이 알베르게를 전세 낸냥 한국어로 쉴 새 없이 큰 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내 침대 옆자리의 한 외국인 순례자는 나에게 저들이 누구인지 물었다. '그들은 한국에서 온 단체여행객들이고 알베르게에서 지켜야 할 예의에 대해 아직 숙지하지 못한 것 같다. 그들을 대신해 내가 사과한다'라는 말을 전했다. 그 외국인 순례자는 '잘못은 그들이 하는데 네가 사과할 필요는 없다'며 연신 'I'm sorry'를 말하는 내게 괜찮다며 다독였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알베르게의 욕실은 공용으로 사용되며 세면대에서의 빨래는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 단체 여행객들은 금지된 세면대에서의 빨래뿐만 아니라 몇몇의 한국인 단체여행자들은 세면대에서 그들의 더러워진 신발까지 빨았다고 했다. 정말 같은 한국인으로서 낯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얘기를 듣고 욕실로 가보니 세면대 곳곳에 흙물이 묻어 있었다. 수언니와 나는 그들이 남긴 무례한 흔적은 닦아내고 그 단체여행객의 인솔자에게 향했다. 알베르게에서 주의해야 할 사항들을 잘 전달한 것이 맞는지, 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주는지 요목조목 따져 물으니 그 인솔자의 대답은 주의사항을 다 전달했지만 인원이 많아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통제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참 어이가 없는 답변이었다. 그들의 무례한 행동이 여기서 끝이었으면 좋겠지만 그들은 정도를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순례자들은 출발하는 시간이 각각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아침 일찍 출발을 할 때 최대한 조용조용 준비를 한다. 혹시라도 배낭 안 비닐 소리가 다른 순례자들에게 피해를 줄까 본인의 짐을 모두 갖고 나와 로비에서 짐을 정리하는 순례자가 있는가 하면 불을 켤 수 없으니 손전등 혹은 헤드랜턴을 켜서 본인의 짐을 정리하는 순례자들이 있다. 최소한 다른 순례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 이 순례길의 당연한 규칙이다. 순례자라면 누구에게나 지켜야 하는 룰인 것이다. 하지만 그 룰이 통용되지 않는 집단도 있나 보다. 보통 아침에는 각자의 알람소리에 깬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냄비 부딪히는 소리, '**엄마, 혹은 **아빠니, 어서 쌀을 안치라느니' 익숙한 한국어와 소음으로 눈이 떠졌다. 보통 순례자들은 간단히 빵으로 아침 요기를 하고 길을 나선다. 그러나 그 단체 여행객들은 아침부터 아침밥을 해 먹겠다며 공동부엌을 점령했다. 덕분에 아침도 못 먹고 출발한 외국인 순례자들도 있었다. 몇몇 외국인 순례자들은 버스를 타고 다다음 마을로 점프를 한다고 했다. 그 단체 여행객들과 계속해서 같이 순례길을 걷기 싫어서란다. 참으로 부끄러웠다.  


나는 수언니에게 흰띠를 하나 구해달라고 했다. 그 흰띠에 '타도 **여행사'를 적어 머리에 두르고 순례길을 걷겠다고 했다. 수언니는 배를 잡고 웃으며 그건 안된다며 나를 말렸다. 난 그 정도로 그들에게 분노를 느꼈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평균 10kg의 배낭을 짊어지고 하루 6~7시간을 걷는다. 그러나 그 단체 여행객들은 큰 봉고차와 함께 다녔는데 그들의 케리어는 다 그 봉고차에 싣고 그들은 그들의 간식이나 소지품을 넣을 수 있는 조그만 보조가방 하나만 들고 순례길을 걷는다. 그래서 순례길을 걷고도 알베르게를 휘젓고 다닐 만큼 기력이 남아도나 보다. 그리고 그들 역시 순례길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전무해 보였다. 단순 트레킹 코스라 생각하고 순례길에 온 것 같았다. 물론 여행사를 통해 단체로 순례길을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순례길에 대한 기본적인 매너는 배워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순례길 걷다 보면 중장년의 한국인 분들을 종종 마주친다. 그분들은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낯선 땅이기 때문에 순례길에 오기 전 각자 나름의 공부를 해오신다. 젊은 우리보다 더욱더 긴장하시고 행여나 다른 순례길에게 피해를 주진 않을까 항상 조심스러워하신다. 다른 순례자들을 배려하고 문화를 존중하며 30일간 고된 일정을 걷는 용기에 그분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존경심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달랐다. 다른 이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다짐했다. 


나는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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