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는 하드커버에 젊은 한국 화가의 그림을 표지로 썼다. 예뻤지만 가격은 비쌌다. 반면 노벨라 시리즈는 자기 책들을 테이크아웃 커피에 빗댔는데. ‘카페나 지하철에서 부담 없이 읽고 버릴 수 있다’는 은근한 암시가 깔려 있었다. 가격이 저렴한 대신 외형은 상대적으로 단출했다.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는 성공했고 노벨라 시리즈는 그러지 못했다. 이후에 나온 얇은 국내 소설 단행본 시리즈는 ‘소장 욕구를 자극해야 한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특히 표지를 인스타그램에 올렸을 때 때깔이 좋아야 한단다. 그렇게 앞은 점점 매끈해지고, 옆은 점점 날씬해졌다.
요즘 독자들은 긴 글을 읽기 버거워하고, 요즘 작가들은 긴 글을 쓰기 어려워하니까, 윈윈이라고들 한다. 문예지라는 플랫폼을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느끼는 일반 독자와 한국문학 간의 체감 거리가 세련된 디자인과 오디오북 같은 신병기로 간신히 좁혀진다고도 본다.
그런데 가끔은 어쩔 수 없이, 불쑥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이거 너무 얇은 거 아냐?
출판사들의 노력을 폄하할 마음은 없다. 그런 기획들은 작은 오아시스를 조성하려는 노력이라고 여긴다. 독자를 탓하고 싶지도 않고. 나는 그냥 작가들에 대해, 현재의 한국 소설가들이 아니라 옛 거장들과 나에 대해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한국문학의 잠재 독자들과 소통하는 것은 출판사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어렵고 중요한 일이다. 2018년과 2019년을 거치며 나는 작가의 일은 그와 조금 다르다고 믿게 됐다. 작가의 사명은 오히려 세상과 불화하는 데 있고, 또 그것이 작가의 숙명이라는 개념에 사로잡히게 됐다.
가끔은 내가 당대를 굉장히 못마땅해한다는 사실이 위안이 된다. 세상이 너무 좋고 아름답고 옳은 방향으로 제대로 굴러간다고 보는 사람은 중요한 글은 못 쓸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동료의 호감은 분명 더 많이 얻을 테지만. 불화의 근원을 탐구하려는 의지가 나의 연료다. 그런 의지를 극단으로 밀어붙이려는 자세와 집요함이 나의 무기다. 그런 태도는 대인관계에는 도움이 안 되지만, 글쓰기에는 좋다.
-장강명 <책, 이게 뭐라고>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