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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닫는마음씨 May 02. 2024

영원의 숲 #4

"숲길"




  하이데거의 대표작으로 『존재와 시간』을 꼽는 이가 있을 수 있고 『숲길』을 꼽는 이가 있을 수 있다. 나는 후자다.


  하이데거의 숲길(holzwege)은 숲 사이로 낸 넓은 길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길이 끝난 자리에서 무성한 숲이 시작되는 '길 아닌 길'이다. 아무도 밟지 않은 숲을 처음으로 나아가려는 존재의 모험가들에게만 길이 되는 길이다.


  왜 아니겠는가.


  그것은 신비에의 길이다.


  마음이나 깨달음만큼이나 신비도 이 시대에는 오염되어 퇴색한 단어다. 마술사의 트릭이나 SF적인 소재, 또는 전형적인 오컬트의 이미지를 환기시키는 통속어로 전락해있다.


  차라리 영원이라 써서 차분하게 끌어내리는 것이 낫다.


  환각버섯과 LSD를 복용하고 우주와 합일하는 궁극의식의 체험을 쫓던 히피들은 조금도 신비하지 않다.


  그것은 그저 그렇구나, 하는 신기한 일일 뿐이다. 신비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신기'와 '신비'를 구분하는 좋은 기준은 존재한다.


  신기는 의식 내에서 상연되는 것이고, 신비는 의식 밖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이 말을 다시 하면, 신기는 자기 안에서의 의식체험의 일이고, 신비는 자기 밖에서의 존재체험의 일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신기는 필연적으로 자기가 신기의 소재를 체험한 그 자리에 눌러앉아 '신기하고 특별한 자신'을 만드는 일로 귀결된다. 반대로 신비는 그런 자기를 벗어나서 미지에 설레는 느낌을 따라 길을 떠난다.


  신기한 것의 소비에는 분명 도취가 있다. 제자리에서 공중부양을 하듯이 방방 뛴다.


  신비는 도리어 차분하다. 숲길을 밟아가는 이의 발걸음이다. 도취와는 다른 이것을 우리는 고양감이라고 부를텐데, 깊이에 고양된 것이다. 이러한 고양감 속에서는 숨을 쉴수록 더욱 고요해진다. 그러다가 그 고요함이 문득 말이 되어 나온다.  


  "아무 것도 신비하지 않다. 이것은 당연하다."


  그 자신이 이 우주에서 영원히 사랑받을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말을 들은 이가 있다.


  그가 동일한 말을 한다.


  그것은 당연하다고.


  이 말이 사실이라는 것이 신비가 아니다.


  한 인간이 그 말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야말로 신비다.


  신기한 것을 쫓는 이들은 자신이 신기한 것을 소유해서 신기한 자신이 되면, 이제 소중한 존재로 대우받을 자격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 자격을 얻기 위해 신기한 것을 쫓는다.


  신비는 원래부터 당연한 자신의 것을 쫓을 이유가 없다. 잃을 수도 없으니 그것을 가진 척 연기하며 유난을 떨 필요는 더욱 없다.


  그래서 신비의 깊이로 걸어들어가 신비로 무르익은 이에게는 신비한 것이 없는 것이다. 다 당연한 것들이다. 이 세상이 가장 좋고 멋진 것들로 가득한 일은 당연한 일이다. 자신이 누릴 수 있는 당연한 일이다.


  이것은 결국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신비하다는 말과 같은 현실을 묘사한다.


  "아무 것도 신비하지 않다."와 "모든 것은 신비하다."는 실은 동의어다. 그 둘이 전적으로 같다는 것을 이해하는 자리에서 신비는 비로소 신비다.


  숲길 위에서.


  영원히 사랑받을 소중한 존재여, 앞으로는 숲길만 걷자.


  반짝반짝 빛나는 영원의 그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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