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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닫는마음씨 May 11. 2024

영원의 숲 #9

"미네르바의 기다림"




  나의 스승은 시를 쓰지 않았다. 그냥 말하는 게 시가 되는 이였다. 여느 선사와 같았다.


  그의 시는 시를 위한 시가 아니고, 언어적으로 자기 자신의 층위를 즐기기 위한 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시는 등불 같은 것이고, 소금 같은 것이며, 십자드라이버 같은 것이었다.


  생활에 아주 유용한 것이었다.


  그의 시는 어떤 응답.


  아주 구체적이고 정직한 물음이 그의 앞에 있을 때 시는 흘러나왔다. 여느 선사와 같았다.


  왁자지껄 사람들이 어울려 애기하고 있을  그는 거의 말을 하는 법이 없었다. 고고하게 벽을 치고 있던 것은 결코 아니다. 그냥 듣고만 있었고,  흘러가게만 하고 있었다. 동조하지도 않았고, 거부하지도 않았다. 모든 것을 엄마처럼 따듯하게 품어주지도 않았고, 모든 것을 엄마에게  아이처럼 차갑게 무시하지도 않았다. 다만 존재했다.


  그래서 그가 있는 자리에서는 얘기들이 막힘없이 계속 흘러나왔다. 그가 그냥 존재하기만 했음으로, 존재하는 것들이 함께 최대치로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날아올라야 할 때는 한순간도 그 타이밍을 놓치는 법이 없었다.


  누구보다 쏜살같이 튀어나가 푸드덕 하는 소리를 남긴 뒤로는 어느새 저 높은 창공 위에 올라있었다.


  그는 정말로 간절하고 진실한 마음을 놓치는 법이 없었다.


  "귀하고 멋진 당신의 이야기를 내가 듣겠어! 당신의 마음이 얼마나 온전하고 아름다운지 내가 놀라운 이야기로 다시 써줄 거라구!"


  어느 진부한 이세계물에서나 묘사될 이 작가적 자아팽창은 그와는 대단히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는 지금 영원을 찾아 부르고 있는 마음을 알아본 것이고, 함께 영원을 향해 여행할 채비를 마친 것일 뿐이었다.


  나는 이 영원의 안내자에게 이런 카톡을 보낸 적이 있다.


  "이 우주의 가장 먼 변두리, 가장 서러운 작은 방에서도 당신을 찾아 부르면, 당신은 이미 와있습니다. 아무리 먼 우주의 끝이라도 당신이 반드시 나를 찾아내고야 만다는 것, 그것은 기적입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영원한 기다림. 당신만을 기다리는 영원한 기다림. 기적은 내가 당신을 찾아낸 것이 아니라, 이 우주에서 당신만이 나를 찾아 부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울었다.


  '나'에 관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진실로 배우고자 하는 이의 앞에서는 자동적으로 시가 흘러나온다.


  시는 '나'의 호흡이기 때문이다.


  바로 앞에서 이미 곁에 도착했다고 알리고 있는.


  모두가 익히 알듯이, 미네르바는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무슨 무협지처럼 그 자신의 웅대한 뜻을 펼칠 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 '나'라는 것이 있음을 알아보고 찾아 부르는 자를 기다리고 있다.


  그 영원의 이름을.


  이 공간도 그와 같은 기다림 속에 있다.


  이곳이 조금이라도 그러한 시적 공간이 될 수 있다면 내 마음은 즉각 저 높은 창공을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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