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먹으면 좋아진다"
편안하고 갈등없이 여여한 상태를 얻기 위해 상담을 받으려 하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는 약을 먹는 것이 낫다. 약을 먹으면 정말로 안전하고 빠르게 그런 상태를 얻을 수 있다.
약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분야와 상담으로 가능한 분야는 애초 다르다. 인간의 정신세계를 다룬다고 동일한 영역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축구와 야구는 똑같이 공을 다루는 활동이지만 완전히 다른 영역의 스포츠다. 특히나 실존주의 내지 인본주의적 기원을 갖고 활동하는 상담자들에게는 이 변별이 더욱 분명하다.
그러나 어떤 상담자들은 상담자도 약을 처방할 수 있도록 법제가 개편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또는 약의 부작용 및 역기능에 대해 호들갑스럽게 과장하며 대신 상담의 위상을 높이려 한다. 상담은 단순히 증세만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심리적 체질개선을 이루는 활동이라며, 흡사 대체의학에 종사하는 이들처럼 말하곤 한다.
통합이라는 미심쩍은 용어로 우리는 자주 경계를 흐리곤 하지만, 실은 경계구분이 안되는 건 미발달의 증거다.
다르게 말하자면, 상담자가 자신의 경계를 흐리는 일은 상담자의 고유한 영토를 스스로 파괴하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흡사 정신과의사를 흉내내며 진단명을 들먹이고, 그러면서도 자기는 약보다 더 본질적인 어떤 전인적 건강의 상태를 다루고 있는 친환경 생태주의 휴머니스트처럼 보이려 하는 상담자가 있다고 할 때, 상담은 그로 인해 볼품없는 삼류 모방의 활동으로 전락하고 만다. 의료행위와 엄연히 구분되는 장르로서 심리상담의 입지를 확보하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상담을 정신과의료의 아주 열화된 하위버전으로 만들기 위해 기를 쓰고 있는 모습과도 같다.
누가 보면 오해하지 않겠는가. 마치 상담자라는 일이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은 결과 의사가 되지 못해 생긴 열등감을 대리해소할 소재라도 되는 것처럼. 심지어 그렇게 의사를 흉내내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의사보다 더 나은 인격적 접근을 취하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굴고 있다면, 그러한 이는 상담을 해야 할 것이 아니라 상담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아니 약을 먹으면 편안해질 수 있다.
상담자는 내담자를 편안한 상태로 만들기 위한 목표를 갖지 않는다.
상담자는 인간이란 무엇이며, 그 인간으로 어떻게 살아가는가의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상담학은 엄연한 인간학이며, 상담자의 입장은 철학적 인간학의 실천론자에 더욱 가깝다.
그런데 인간은 과연 편안하기만 한 주제일까? 그럴리가 없다. 인간에게는 언제나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이 가장 성가시고 까다로운 주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인간으로 발견하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 우리의 삶이란 인간을 찾기 위해 떠난 그 모험의 여정과도 같다.
불편하지만 이상하게 끌리는 것, 그것이 인간인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갖게 되는 자연스러운 태도다. 여기에는 인간의 아주 고귀한 소망이 담겨 있다. 우리는 아주 큰 미지로서의 우리 자신에게 한번 감동받아보고 싶은 것이며, 도무지 이해불가의 신비인 우리 자신을 한번 사랑해보고 싶은 것이다.
인간학적 실천론으로서의 상담의 가치도 여기에 있다. 상담의 결과는 단순히 여여하고 편안한 지복의 상태가 아니다. 상담은 우리가 얼마나 우리 자신을 더욱 놀랍고, 사랑스러우며, 소중한 존재로 확인하게 되는가에 있다.
이렇게 사는 이의 모습을 우리는 통상적으로 인간적이다, 라고 말한다.
인간적이라는 것은 인간을 향해 가고 있는 그 모습을 뜻한다.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지도가 있다. 마음, 바로 마음이 인간을 향한 지도다. 마음의 운동은 언제나 인간을 향한다. 그래서 자기 마음을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이의 모습을 볼 때 우리는 인간적이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적이라는 이 표현은 사회적으로 규정된 인간이라는 어떤 형식을 뜻하지 않는다. 즉, 윤리가 아니다. 오히려 윤리를 넘어서 있는 본래적인 내용이다. 떠드는 애들의 이름을 적으며 자기가 정의를 실현한다고 믿는 초등학교 학급회장 같은 미숙한 선악의 기준을 넘어, 본래적인 자기 마음을 경험하고 성숙하게 누리며 살아가는 그 모습은 차라리 종교인의 모습에 가까운 것이다.
이 자리에서 이제 상담은 의료의 뜰을 벗어남과 동시에 또 윤리의 성채를 벗어나 아주 독자적이고 고유한 상담만의 영토를 확보하게 된다. 그것은 과거에는 종교인이나 철학자가 다루었던 영역, 바로 '참인간되기(becoming)'의 영역이다.
생물학적 생리도 아니고 사회학적 윤리도 아닌 것, 그래서 심리다.
우리는 마음을 통해, 나라는 인간이 되고자 해왔던 것이다. 심리라는 표현에는 이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생리도 윤리도 다 약을 먹으면 좋아진다. 편안한 몸으로 활동하며 사회적으로 잘 기능하는 인물이 되는 일이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가 약을 먹는다고 인간을 향해가는 모험이 펼쳐지게 되는 것은 아니며, 상담은 바로 이 첨예한 심리철학적 지점을 다룬다. 우리에게는 좋아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핵심적으로는 우리는 좋아하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이 인간으로 태어나 한 번 살다 가는 이 삶을, 이 마음을, 그러한 내 자신을, 정말로 좋아한다고 끝내는 고백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가 더 불편해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담실을 찾던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