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실종법칙>
‘실종’은 주로 타의에 기반을 두고 쓰는 말이다. 누군가의 사라짐이라는 기본적 의미를 갖지만, 그 부재가 사라진 주체에 의해서만 발생하진 않았을 거란 의심을 덧붙인 언어다. 당신이 사라졌을 때, 그 사라짐이 다른 무언가에 의했을 가능성이 높을 때 그 부재를 우리는 실종이라는 단어로 규정하고 마는 것. 그러므로 실종에 ‘법칙’이 있다면, 그것은 사라진 당신과 남겨진 우리의 관계 속에 존재할 테다. 어떤 실종 사건을 들여다보는 일은 관계의 진실을 찾는 일과 다르지 않다.
연극 <실종법칙>을 본다.
어느 날 유진이 불현듯 사라진다. 대기업에서 고속 승진을 앞둘 정도로 승승장구하는 유진의 행방불명이 그녀의 주체적 일탈이라고 생각할 이유는, 적어도 그녀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가족의 입장에선, 없을 것. 이유를 알 수 없는 유진의 사라짐에 대해 언니 유영(노수산나)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부재를 타인에 의한 실종으로 규정하고 의심하는 일뿐이다. 의심의 첫 번째 대상은, 당연하게도, 유진의 오래된 남자친구 민우(이형훈)다.
유영은 민우의 집을 찾아 유진의 행방을 묻는다. 유진 실종사건의 범인으로 민우를 의심하는 유영의 논리는 성글지만 철저하게 귀납적이다. 여성에 대한 폭력, 강간, 살인의 범인은 대체로 피해자들의 남자였다는 것. 유영은 시종일관 억울함을 표하는 민우의 한탄에도 아랑곳없이 그를 범인으로 의심하며 몰아간다. 물론 사회적 통념과 직관 외에도 유영의 판단에 확신을 주는 더 주요한 요인은 존재할 텐데, 그것은 민우가 머무는 공간, 반지하이다.
유진과 오랜 기간 만난 남자친구 민우는 소설가 지망생으로, 변변한 직장 없이 소설을 습작하며 빈곤한 생활을 이어간다. 민우에게 숨겨왔던 유진의 진실을 알고 있는 유영은 그의 가난과 유진의 성공이 엇갈리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무너졌음을, 그리고 그 균열이 민우의 극단적 범죄로 이어졌음을 확신한다. 민우는 결백을 호소하기 위해 자신과 유진이 비밀리에 공유하고 있었던, 유영의 비밀들을 무기로 써야 한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상처를 내기 위해 유진을 중심으로 숨겨왔던 진실을 꺼내 날카롭게 휘두른다. 2인극 <실종법칙> 무대 위 배우는 오직 둘이다. 다만 진실은 세 사람의 사이에서 위태롭게 활보한다.
유진을 둘러싸고 무능 대 질투의 구도로 시작한 싸움은 실종의 진실을 찾아 자꾸만 아래로 미끄러져간다. 진실이 미끄러지는 장소, 반지하라는 어둡고 음침한 공간이 만들어내는 은유는 선명하다. 지상으로 올라오지 못하는 무능의 상징이자, 온전한 환기 없이 가까스로 호흡하며 영혼을 좀먹는 곰팡이 같은 상처들의 공간. 창문을 열고 내보내선 안 되는 비밀들, 나는 알지만 당신은 모르는 것들, 그 진실의 간극 사이에서 우리의 존재는 자주 실종되고 또 발견된다.
모든 실종에는 숨은(혹은 숨긴) 관계의 진실이 있다. 끝까지 진실을 회피할 때 실종된 존재는 돌아올 수 없다. 그렇다면 진실이 드러날 때 실종도 함께 끝난다고 바꿔서 말할 수도 있을 것. 다만 그 진실이 언제나 우리에게 친절한 것은 아니라서, 어떤 특별한 진실을 마주하는 존재에겐 또 다른 길이 생겨난다. 예컨대 사랑의 동반자의 길에서 악행의 공모자의 길로 새어나가는 길이다. 연극 <실종법칙>이 서로를 상처 내는 잔혹한 진실을 주고받으며 도달한, 불변의 실종법칙은 이것이다. ‘타인은 지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