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아 Mar 21. 2021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귀지를 파고 손톱을 깎았다

엄마의 투병 일기 - 210321

오늘처럼 봄 햇살이 따스하게 내려올 때면 엄마는 어김없이 자식들 귀지를 파줬다. 무릎을 베고 누우면 엄마는 성냥개비로 귀속을 살살 간지럽혔다. 지금처럼 고급진 귀이개도, 면봉도 없을 때였다. 시원함은 아니었던 것 같다. 엄마의 폭신한 허벅지의 촉감과 햇살의 따스함, 그리고 사각사각거리는 간지러움은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쾌감이었다. 결혼 후에는 짝꿍이 불빛이 나오는 귀이개로 귀를 파주긴 했지만 그때의 행복한 쾌감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      


정성 들여 엄마의 귀를 파줬다. 파줬다기보다는 어설픈 청소를 해줬다고 하는 게 맞겠다. 엄마의 손발톱도 깎았다. 바짝 메마른 소나무 가지를 부러뜨리는 것처럼 손톱을 깎을 때마다 뚝뚝하고 선명한 소리가 났다. 엄마의 몸도 구석구석 씻겼다. 신장 기능이 정지됐기 때문에 엄마의 몸은 코끼리처럼 심하게 부어 있다. 피부는 아이클레이처럼 손가락으로 꾹 하고 누르면 쑤욱하고 들어갔고 복원 속도는 나무늘보보다 느렸다. 바디로션을 발가락 사이까지 정성 들여 발랐다. 엄마의 똥기저귀도 갈았다. 냄새 때문에 마스크를 썼고 일회용 비닐장갑을 꼈다. 확신하건대 어렸을 적 내가 퍼지른 똥기저귀를 맨손으로 갈았을 테고 고무장갑도 없이 그것을 또 맨손으로 비벼 빨았을 것이다. 겨우 이런 사소한 것조차도 내가 엄마에게 해준 처음이자 마지막 표현이 될 것이란 사실이 슬프다.   

  

엄마는 이제 물조차 삼키기 어려워한다. 숨 쉴 때마다 그르렁 소리가 들린다. 눈은 뜬 듯 안 뜬 듯 초점이 사라진 지 오래다.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아무리 말을 걸어보지만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견딜 수가 없어서 귀지를 파고 손발톱을 깎고 몸을 씻겨 드렸지만 엄마의 마지막 길에 무슨 위안이 될까 싶다. 그저 나의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한 비겁함이 아닐까?     



‘자식이 부모에게 쏜 화살들은 한 발도 예외 없이 후회가 되죠. 후회할 짓 하지 마요. 후회는 현실에서 겪는 가장 큰 지옥이니까'                                                                            - 드라마 <빈센조> 대사 중 -  


순간순간이 후회 투성이다. 깨어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많이 표현했어야 하거늘. 어째서 왜 매번 이렇게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뒤늦은 후회로 힘들어하냔 말이다. 정말이지 이제부터라도 사랑하는 이들에게 최선을 다해서 표현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다짐한다.         



<커버 이미지 출처 : 후회 - 일러스트레이션, 디지털 아트 (notefolio.net)>

작가의 이전글 선택이 아닌 필수여야만 했던 엄마의 지지리 궁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