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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희 Apr 15. 2023

안녕, 나의 소울 카

15년 동안이나 타오던 차와 이별했다. 

스물여섯 살 때부터 타기 시작했으니 어느덧 15년을 훌쩍 넘긴 차였다. 


중고차 매매상을 하는 남편의 지인은 내 차를 150만원에 가져가겠다고 했다. 년식이 오래되긴 했지만 비교적 관리가 잘 된 차라고 생각했는데 그 정도 가치밖에 안 되다니. 차에 든 정이 깊어서인지 너무 헐값에 넘겨지는 것 같아 서운했다. 조금이라도 값을 더 쳐주는 사람을 찾아보려고 중고차 거래어플에 내 차를 올려놓았다. 어플을 통해 차가 경매에 부쳐지자 전국의 딜러들이 내 차를 평가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중 최고가(210만 원)를 부른 딜러를 선택해 만나게 되었다.  


"아우 진짜 오래 타셨네요... 오래 타셨어.. 대단하시네요.."

턱을 목 쪽으로 바싹 당기고 허리를 반쯤 뒤로 넘긴 자세로 차의 외관을 훌던 딜러는 한 차를 오래 타온 내가 신기한 듯 감탄을 했다. 2008년에 구입한 2007년식 아반떼 차량. 현대자동차 최대의 실수라고 할 만큼 아반떼 HD 차량은 단 한 번도 고장 나거나 멈춰 내 속을 썩인 적이 없는 견고한 차였다. 


"아니.. 뭐 딱히 고장 난 것도 안 나고.. 차가 좋아서요."

딜러의 이상한 감탄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난감했다. 새 차를 샀으면 최소 10년 이상은 타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15년 동안 한 차를 타며 그 지론을 몸소 실천한 나 같은 사람을, 딜러들은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최고가를 불렀던 딜러는 차의 외관만 보더니 차 값을 반이나 더 후려쳤다. 그 흔한 자동 세차 한번 돌리지 않은 차이거늘... 내부보다 외관의 상태가 더 좋아 어느 정도의 감가상각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하부가 부식된 '수출조차 할 수 없는 차'라고 명명하는 바람에 우리의 거래는 성사되지 못했다. 


말하고 나니 내가 차를 오래 탄 이유가 더 분명해졌다. 내 차가 '좋아서'였다. 

옵션이 거의 없는 깡통차였지만 내 힘으로 마련한 가장 비싼 나의 첫 동산이었으니 애정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이른 나이에 차를 구입하게 될 줄이야. 하얗고 은은한 광택이 나는 차 문을 열 때마다 스스로가 기특했다. 직장생활의 시작과 동시에 타기 시작한 차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둘이나 낳아 큰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착실하게 나의 발이 되어 주었다. 아이들을 부지런히 실어 나르며 집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차 안에서 나누기도 하고, 장거리를 나설 때면 커피 한잔을 손에 들고 여유를 만끽하는 나만의 공간이기도 했다. 



회사에 출퇴근하려면 차가 필요했다. 중고차를 사라는 부모님의 권유에도 캐피털 할부를 끌어 모아 신차를 구입했다. 아반떼 이름을 본 따 차에 '아방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운전초보인 네가 새 차를 사면 며칠 안에 차에 흠집을 낼 것이라는 부모님의 예언은 그대로 적중했다. 후방센서만 믿고 후진을 했다가 회사 사람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보기 좋게 뒷 범퍼를 박은 것이다. 차에서 분명 퍽하는 둔탁한 소리가 났고 몸으로 충격이 감지되었지만 내릴 수가 없었다. 회사 문 앞에서 담배를 태우던 직원들은 나의 첫 단독사고 현장을 목도하면서 얼마나 황당했을까. 미숙한 운전으로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낸 것이 너무 창피해 내려서 상태를 보지도 못한 채 수리센터를 찾아갔다. 카센터 사장은 너무 새것인 범퍼를 교체하기 아깝다며 표시 나지 않게 잘 꿰매어준다고 했다. 딱딱한 철을 꿰맨다니, 기르던 강아지가 다친 것처럼 안타까워하는 내게 어쩜 그리 적합한 표현을 쓰시는지. 꿰맨 부위에 페인트를 덧 바르자 꿰맨 부분이 봉긋하게 솟아 올라왔다. 차를 산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상처를 냈지만 그래도 마냥 좋았다.  


어느 날은 도로에서 아빠 차와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다. 바로 옆 차로에 정차한 아빠는 창문을 스르륵 내리더니 새 차를 몰고 있는 딸의 모습이 흐뭇했는지 씩 웃었다. 저런 걸 아빠 미소라고 하나? 그렇다면 나는 그때 아빠 미소를 보았다!  공무원이 된 딸이 제 힘(은행의 힘)으로 산 차를 모는 모습을 보면 어느 부모가 흐뭇하지 않으랴. 평소 무뚝뚝하고 선물 주고받는 것에 젬병인 엄마도 딸의 첫 차를 기념해주고 싶었는지 흰색 핸들커버와 스누피가 그려진 파란색 시트커버를 선물해 주었다. 차를 보내는 날까지 엄마가 선물한 핸들커버를  벗긴 적이 없다.   


한 번은 회사 언니들과 함께 내 차를 타고 출장을 가는 길이었다. 교통사고가 났는지 4차로의 큰 대로가 꽉 막혀있었다. 내 차 앞에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길이가 긴 대형 트럭이 서 있었다. 꽉 막힌 차로에 서 있는 차 안에서 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내 차가 앞으로 전진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브레이크를 꽉 밟고 재빨리 기어를 주차모드로 바꿨지만 소용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 차가 아니었다. 정체를 기다리지 못한 트럭이 차선을 바꾸려고 후진을 하고 있었다. 긴 대형 트럭의 높은 차체에 앉아있는 운전자에게 트럭 뒤에 있는 내 차가 보일리 없었다. 

어어어어--- 트럭은 계속해서 후진을 했고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닿을 수 없는 소리인 줄 알면서도 있는 힘껏 클락션을 눌렀다. 트럭을 피하려고 나도 같이 후진을 했다가는 뒤차를 박을게 뻔했다. 트럭이 가까워질수록 차에 탄 우리들의 목소리도 같이 높아졌다. 내 차 범퍼를 박기 직전에 트럭은 브레이크를 잡고 멈췄다.


'쿠웅' 멈춤과 동시에 트럭 끝에 달려있는 고리가 내 차의 보닛을 찍어 눌렀다. 가까스로 범퍼에 부딪히는 것은 피했지만 차 밖으로 넓적하게 튀어 나는 고리는 인두질하듯 차 보닛에 상처를 남겼다. 자신의 만행?을 아는지 모르는지 트럭 운전자는 옆 차선으로 옮겨 전진하기 시작했다. 사고를 내고 도망을 가다니! 나는 본능적으로 트럭을 쫓아갔고, 때마침 신호에 걸린 트럭이 멈춰 섰다. 비상깜빡이를 켜고 차에서 내려 운전자에게 달려갔다. 


아저씨! 제 차를 박고 그냥 가시면 어떡해요! 성이 난 나는 아저씨에게 따져 물었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설명하면서 아저씨와 나는 내 차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웬걸, 차 안에 있어야 될 언니들이 입고 있던 잠바를 벗어던지고 제복에 경찰 모자까지 눌러쓴 채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어디선가,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이라는 음악과 함께 배우 전원주가 확성기를 들고 지붕 사이를 건너 뛰어오는 한 통신사 광고가 떠올랐다. 


정체된 차들 사이를 가르며 뛰어오는 언니들을 나와 아저씨는 그저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고마워해야 할지, 민망해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녀들은 분명 나를 위해 출동한 구원자들이었지만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갑작스러운 경찰들의 등장에 아저씨는 살짝 겁을 먹고, 나는 제 목소리를 내려다 말았다.

이 사건이 15년 동안 차를 타며 낸 가장 큰 사고였다. 15년 동안 내 차를 타면서 다행히 누구 하나 다친 사람은 없었다. 


차를 보내기 전 차를 타며 겪었던 일련의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새 차를 알아보면서도 차를 떠나보낼 생각에 마음의 헛헛함을 감출 수 없었다. 다시방에 있는 서류들을 정리하고, 트렁크에 실린 묵은 짐들을 내리면서 차에 대한 애정도 하나둘씩 내려놓았다. 


"이제 차 보낸다."

차를 가지러 오기로 한 날, 남편이 카톡을 보내왔다. 

"마지막으로 사진 한 장만 찍어줘"

내 인생의 앨범 한 장을 장식할 나의 첫 차를 나는 그렇게 보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내 차를 타게 될 누군가도 안전하고, 행복하게 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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