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육아에 고군분투하던 어느 날 오후, 아마 아이가 태어난 지 6개월도 채 안됐을 무렵이었을 거다.
스페인에 사는 아는 언니와 카톡을 하고 있었다.
"아이를 낳고 나니 스페인에 살길 정말 잘한 것 같아.
아이 덕분에 어딜 가든 VIP처럼 대접받고, 더 많이 사랑받고 지내고 있어.
다음에 아이랑 꼭 놀러 와"
엄마를 깎아내리는 사회적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위축되어있었는데, 아이 덕분에 사람들이 더 호의적으로 대해준다고? 그 분위기, 그 느낌이 어떨지 너무 궁금하고 부러웠다. 그리고 나에게 너무도 특별한 나라 스페인, 그곳에 아이랑 같이 놀러 오라는 언니의 메시지를 보자마자 정말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나는 곧 '아이가 두 돌이 되기 전에 같이 스페인에 가게 되겠구나'라고 직감했다.
난 하고픈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많은 사람이다. 무언가를 하고 싶을 때 그 생각이 그냥 흘러갈 때가 있는 반면, 내 안에 고집스러운 단단함과 함께 '결국 실제로 하게 되겠구나'라는 확고함이 느껴질 때가 있는데, 이때가 딱 그랬다.
웬만하면 스페인, 정확히는 바르셀로나에서 한 달을 살다 오고 싶었다. 아이와 함께 바르셀로나를 구석구석 살펴보는 여행이 아닌, 정말 일상을 살 다오는 그런 한 달을 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남편도 여느 때처럼 내 생각을 적극 지지해주었다. 나에게는 어학연수를 했던 마드리드가 더 친숙하긴 하지만, 아이랑 지내기에는 넘치는 햇살과 지중해가 있는 바르셀로나가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언니도 아이랑 같이 다니기 너무 좋은 도시라고 추천해주어서 더 마음이 갔다.
"내가 많이 다녀봤는데, 애는 어릴 때라 그런지 하나도 기억 못 하더라."
"애가 좀 더 크면 가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이런 얘기는 아마 아이를 데리고 여행 가는 사람들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아이들이 잘 기억하지 못하는 세 살 이전에 양육자의 일관된 사랑이 중요하다는 건 대부분 고개를 끄덕일 거다. 난 여행이라는 경험이 아이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아이에게 0이 되어버리진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기억이든, 몸이든, 정서든 어디에는 남아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 둘만의 깊은 추억이 만들어질 것이라 기대했다. 사실은 내 만족을 위해 시작된 일이라고 보는 게 더 맞을 수도 있겠다.
나는 2006년에 '워크캠프'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처음 스페인에 갔었고, 2007-2008년에는 어학연수로, 2012년에는 여행으로 갔었다. 이번이 4번째 스페인에 가는 셈이었다. 그동안은 나에게만 특별한 스페인이었는데, 남편과 아이와도 그 특별함을 더 깊이 공유할 수 있다니.. 너무 의미 있는 여행이 될 것 같아서 두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