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ella Aug 12. 2020

Train of thought

누구보다 강하다고 자부하는 나에게도 밤은 길고 외롭다.

요새 들어 왜 자기 전마다 자꾸 아빠 생각에 눈물을 흘리는지 생각해 보니, 이 시간이야말로 온전히 나 자신을 마주해야 하는 고독한 시간이기 때문인 것 같다. 낮에는 주변 소음에 주의가 분산돼 슬픔을 느낄 새가 없지만, 눈을 감고 주위의 자극이 사라지면 그때부터 머릿속엔 갖가지 잡념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리고 그 끝은 언제나.


고통은 숨기고, 기억 깊이 억눌러 놓는 게 나의 방어기제라 내 감정을 온전히 마주하는 건 두렵다. 보고 싶지 않다, 슬프지 않다를 되뇌며 괜찮은 척하는 게 이젠 숨 쉬듯 자연스럽지만 그것도 결국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일뿐. 혼자 있을 땐 날 것의 감정과 불편한 조우를 해야 한다.

이 일이 내게 큰 트라우마가 된 것 같다는 건, 내가 얼마나 방어기제를 심하게 내비치느냐에서 알 수 있다. 내가 괜찮아 보이는 만큼, 난 괜찮지 않다. 그래서 테라피스트를 만나고 싶은 거고.


존도 잠들고, 아무도 내 얘기를 들어줄 수 없는 밤은 길다. 집은 힘들다. 절에선 일을 하느라 몸이 피곤해서 9시면 잠에 들었는데 여기선 새벽 1시가 되도록 잘 수가 없다. 물론 거의 매일을 12시까지 회사 일에 붙들려 있다보니 생체 리듬이 깨진 탓도 있지만, 확실히 몸이 편하니 마음이 복잡해진다.

내일부터는 힘들어도 몸을 피곤하게 해야겠다.

지금껏 잘 해왔는데 이제 와서 힘들어할 필요는 없다.

아빠를 묻고 마지막으로 절을 올릴 때 난 다짐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울자. 그리고 이제 울지 않을 거야. 아빠를 부르며 통곡을 하는데 슬프기보다는 속이 후련했다. 물론 그 후로도 혼자서는 몇 번 더 울었지만, 남들 앞에서 운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뭐랄까, 강해 보이고 싶은 마음이 내 슬픔을 억눌렀던 것 같다. 난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 하고, 완벽해야 하고, 약해서도 안되고 뭐 그런 부담감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있다. 어릴 때 막 살아서 그런 걸까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다른 의미로) 철이 늦게 드니 짊어져야 할 짐도 무겁다.

잘 하고 있는 거겠지. 잘 하고 있어. 잘 해왔고.


이번 일로 많이 성장한 것 같다. 마음이 단단해졌달까, 오랫동안 나를 옥죄던 불안감이 사라졌다. 현실과 이질감이 들며, 붕 뜨는 듯한 그 소름 끼치는 불쾌한 감정이 사라진 것이다. 마음이 제자리를 찾았다. 그리고 그건, 수천수억의 돈보다 더 귀하고 가장 내게 필요한 거였다. 이제 질투는 없다.

아빤 불안한 나를 안정시켜 줬다. 그게 나한테 남긴 아마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돈도, 회사도, 차도, 집도 아니라.


어릴 때부터 조울증, 우울증을 겪어오며 13살엔가 처음 자살기도를 한순간부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딱히 없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건 그저 자살 도구일 뿐, 저 차에 달려들면 죽을까, 여기서 뛰어내리면 죽을 수 있을까, 이 약을 다 먹으면 깨어나지 않겠지 하는 생각만 했다. 물론 당시에는 내가 정상인 줄 알았기 때문에 정신과적인 치료를 받진 않았다. 머리가 좀 크고 나서는 그 방법이 더 괴악해져, 자해를 시작했다. 죽는 건 이미 너무 힘들다는 걸 깨달아서 스스로 칼을 들고 생살을 찢는 걸로 대신한 거다. 싸이코처럼 들리겠지만 몸을 그을 때는 약을 한 것처럼 거대한 해방감이 느껴진다. 난 스스로 고통을 주면서 살아 있음을 느꼈다. 기분이 우울해지기 시작할 때면 약쟁이가 주사기를 찾듯 칼과 가위를 찾았다. 덕분에 내 방에는 뾰족한 물건이 남아나질 않았고 몸에 남은 흉터는 그때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성인이 된 후론 술과 약에 빠졌기 때문에 굳이 피를 보지 않아도 해소가 됐다. 기분이 좆같다 싶으면 제넥스와 다른 신경 안정제들을 털어 넣고 정신을 잃을 만큼 술을 마신 뒤 그것도 모자라면 다른 substances를 하면 그만이었다. 제넥스를 하면 나른해지니 커피를 미친 듯이 마시고 또 술로 다시 안정을 했다가 담배로 각성을 하는 식의 반복이었다.

사실 지나고 나니 생각하는 거지만 난 지금 살아있는 게 신기하다.


그토록 방황하고 갈피를 못 잡던 내 마음과 정신이, 인생의 가장 힘든 일을 겪으며 안정을 찾았다는 건 분명 내가 설명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뜻에 의해서라고 믿는다.

예전 같았으면 지금의 난, 음. 상상하고 싶지 않다.

10년 전 그때, 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다. 오히려 더 엇나갔다. 그 후 오랫동안.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라면 상상도 할 수 없었을 만큼 안정적이다. 이토록 생을, 내 미래를 낙관적으로 본 적도 없었고 실체가 없는 걱정과 불안감도 없다.

나는 드디어 해방했다. 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에게서.

당분간 이 무미건조한 삶에 익숙해져야 하겠지만 이 모든 걸 이뤄준 그 누군가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여전히 난 삶은 고통의 연속이고 이 생이 지옥이라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주어진 두 번째 삶을 예전처럼 내쳐버릴 순 없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2020.01.25 / 03:27pm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