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 마을과 병산서원이 나누어지는 이정표를 얼마쯤 지나자, 비포장도로다. 길을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약간 망설여진다. 외길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다. 산등선 고개를 넘어서 텅 빈 주차장이다. 이른 시간,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 한적한 마을 진입구가 있다. 마을 옆의 낙동강 줄기와 흰모래사장 그리고 깎아진 산을 보면서 걷다 보니 반대편 먼발치에 언덕 위 여러 채 한옥이 서원임을 짐작게 한다.
서원 앞에 도착하니 복례문(復禮門)이란 현판과 정문이 있다. 논어 ‘자신을 이기고 예로 돌아가라(克己復禮)‘는 문장이 떠오른다. 정문이 상대적으로 작게 보임은 실행하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좁은 문을 통과하는 것처럼 어렵다는 뜻으로 읽혔다.
정문을 지나자 바로 2층 누각 만대루(晩對樓) 밑이다. 만대루는 정면이 7폭, 측면 2폭으로 200여 명을 동시에 자리할 수 있는 사면이 개방된 구조다. 정문에 비해 지나치게 크다는 느낌이 든다. 마당을 지나 병산서원 본채로 올라가 본다. 여기서 보는 만대루는 낙동강과 병산을 배경으로 병풍처럼 펼쳐진 자연 속 어울림으로 나의 선급한 판단을 고쳐야 했다. 만대는 두보의 시에서 ‘취병의 만대’, ‘푸른 병풍절벽은 늦은 저녁 맞이하기 좋다'에서 유래되었다. 현재 아쉬움은 세월의 흐름에 누각이 약간 기울어지고 있어 올라가서 풍경을 확인할 수 없고 이른 시간이라 해 질 무렵의 광경을 볼 수 없었다.
병산서원 사액이 있는 마루 안쪽 벽에는 입교당(立敎堂) 현판이 걸려있다. 그 아래에 한 여인이 편안히 책을 보고 있다. 아내와 나는 스마트폰으로 각자 여기저기 사진을 남긴다. 둘이 함께 있는 기념사진을 남기기 위해 부탁하고 몇 마디 나누면서 이곳 문화재 해설사라 소개한다. 아내의 눈치를 보고 지금 해설이 가능한지를 물어본다. 아내는 설명 듣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 나는 누군가 말로 정리해 주는 것을 좋아한다. 해설사는 입교당 마루에 다 함께 나란히 병산을 바라보고 앉자고 하며 우리 부부만을 위한 맞춤형 강의가 시작되었다.
고려 때부터 있었던 근처 풍산 유 씨 풍악 서당을 서애 유성룡(1542~1607) 선생이 선조 5년(1572년)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광해군 5년(1613년) 때 존덕사(尊德祠)를 세움으로 서원이 되었다. 서원은 제사 기능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서당과 서원의 차이다. 서원 뒤편에 지금도 사당이 자리 잡고 있다(前學後朝). 철종 14년(1863)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다. 사액(賜額)은 임금이 써야 하지만 이곳은 당대의 문필가가 쓰고 자신은 낙관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현판을 쓴 이의 겸손함이다.
마당 왼편이 동직재, 오른편이 장허재로 학생들 기숙하면서 공부하는 곳이었다. 각각 방이 3칸이니 학생은 많아도 15명 정도였을 것이다. 동직제(動直齊)는 거동을 바르게 하라는 의미로 상급생이 그리고 정허재(靜虛齊)는 마음을 바르게 하라는 의미로 하급생이 있었다고 한다. 공부보다 먼저 힘써야 할 가르침이다. 입교당은 강의실보다는 시험장으로 보름에 한 번 각자 공부한 것을 점검받는 곳이라 한다.
서원의 대내외 큰 행사를 치를 수 있는 강당인 만대루 천장에는 북이 있다. 서원의 금기 3종 술, 여자, 사당패(놀이)가 반입되면 북을 울려 징계했다고 한다. 하루 종일 글공부만 하는 학생들은 이렇게 좋은 자연 풍경을 즐겼을까? 아마 그보다는 고달프고 힘들었을 것이다. 북이 몇 번이나 울렸는지 궁금하다.
이어서 서애 유성룡 선생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선생은 임진왜란 때 영의정으로 국난 극복에 큰 공헌을 한 명재상이다. 임진왜란 1년 전에 이순신 장군, 권율 장군을 천거했고, “난중의 일은 부끄러울 따름이다."라고 하며 스스로 반성한다는 의미로 징비록을 저술했다고 한다.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날의 근심거리를 삼가라는 선생의 뜻은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서원은 병산서원 외에도 8개가 더 있다. 서원은 조선시대 사립 성리학교육기관이다. 모든 서원 내부는 제향을 올리는 영역, 유생들이 공부하고 숙식 공간, 그리고 유식, 교류를 위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서원은 존경하는 지역 인물을 제향하고 학맥을 형성했다고 한다. 나는 기회가 되면 나머지 서원도 방문하여 역사적 가치, 주향 인물, 건축물과 지형 조화를 체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