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낄라 마을에 가다.
데낄라라는 마을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프랑스의 샴페인이라는 곳이 있듯이, 이곳 멕시코에도 데낄라라는 마을이 있다. 사촌동생의 학교가 긴 재량 휴업일에 들어간 덕에 우리에게 짧은 연휴가 생겼다. 우리는 이곳 께레따로에서 5시간 정도 떨어진 데낄라 마을과 과달라하라로 2박 3일간의 여행을 떠났다.
이 곳 멕시코는 선인장이 참 많다. 이곳 사람들은 이 선인장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즐겨먹는다. 노빨이라는 선인장은 가시를 제거한 뒤 요리해 먹는다. 조금 끈적하지만 피망과 비슷하게 쓰이는 것 같다. 노빨의 열매인 뚜나는 뚱뚱하고 짤막한 오이같이 생겼는데, 막상 먹어보면 참외와 같이 달달한 맛이 난다. 데낄라의 역시 마게이라는 선인장에서 만들어진다.
데낄라 마을에 가까워질수록 창밖으로 청록 색깔이 많이 보이기 시작한다. 전부 데낄라의 원료가 되는 마게이의 밭들이다. 이모가 새벽부터 5시간 동안 쉬지 않고 차를 몰은 덕분에, 우리는 점심 전 즈음에 데낄라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서울과 부산 정도의 거리였는데, 미국까지도 운전해서 가는 이모에게는 이제 그렇게 대단한 거리도 아니라며 어깨를 으쓱하셨다.
멕시코가 익숙하지 않거나, 차를 운전하기 힘든 사람들은 주로 기차를 이용한 여행을 한단다. 패키지 투어로 구성된 다양한 상품들이 있다고 하니, 관심이 있다면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마을 초입부터 데낄라 투어의 호객꾼들이 있었다. 일인당 200페소(약 12,000원), 거기에 초등학생인 사촌동생은 무료로 해주겠다 하니, 우리는 고민 않고 그곳에서 투어를 하기로 했다. 차를 주차하고는 뒤에 세워져 있는 술통 모양으로 개조한 투어 카로 옮겨 탔다.
데낄라 투어는 이런 투어 카를 타고 공장으로 이동해, 데낄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구경하는 투어이다. 처음에는 요란한 모양의 투어 카에 올라타는 것이 부끄러웠는데, 시내로 나가니 비슷한 투어 카들이 워낙 많이 다니는 것을 보고는 그냥 받아들였다. 공장에 다다를수록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술이 발효되고 있는 냄새였다.
투어 카를 운전하고 있는 사람이 가이드를 해주는 줄 알았는데, 투어사의 역할은 우리를 공장까지 데려다주는 것이 전부다. 데낄라 투어는 해당 공장에 있는 전속 가이드가 진행한다. 이런 식으로 투어를 오는 사람들이 워낙 많은지, 공장 입구에는 투어 시작 전 대기하는 사람들을 위한 휴게 공간까지 마련되어있었다. 어느 정도 사람들이 모이면 드디어 투어가 시작된다. 우리가 신청한 투어는 orendain사의 데낄라 투어로, 먼저 브랜드의 연혁에 대해 가볍게 설명하며 시작했다.
이것들은 전부 데낄라를 만드는데 쓰이는 마게이 들이다. 이와 같이 커다란 마게이는 적어도 10년은 넘게 기른 것들이라 한다. 산더미같이 쌓인 마게이를 뒤로 잠시 포토 타임을 가진다. 가이드가 데낄라 병을 비스듬히 세워 사람들이 그 병을 머리에 이고 있는 것처럼 나오는 사진을 찍어 준다. 이 사진은 투어가 끝나고 난 뒤 판매를 하는데, 한 장 당 100페소씩(약 6,000원) 받는다.
앞쪽의 위치한 기계들이 대부분 마게이를 손질하기 위한 거였다면, 포토존 이후에 이동한 곳은 만들어진 데낄라를 발효, 공정하기 위한 곳이었다. 이곳에서의 설명을 끝나면 갓 나온 데낄라를 시음하는 시간이 주어진다. 이 시음을 끝으로 공식적인 투어는 끝이 난다. 그 뒤에는 기념품 가게에 들르는 것이 전부였다. 투어는 약 1시간 정도로, 조금 허무할 정도로 짧게 끝났다. 패키지 투어에는 6, 7시간이 소요되는 프로그램이라 나와있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투어시간 자체는 비슷하고 나머지는 전부 이동시간이란다.
기념품 가게에서도 시음이 이어진다. 커피맛 데낄라, 모과 맛 데낄라 등등 다양한 종류의 데낄라를 원하는 만큼 시음해 볼 수 있다. 처음 들렸던 기념품 가게에서는 향수병 만한 크기의 세 종류의 데낄라만 팔고 있었다. 작은 병 하나에 60페소(약 4,000원). 3병을 사고 나왔는데, 그 뒤에 기념품 가게에는 더 다양한 종류를 팔고 있어서 금세 후회하였다. 그래서 결국 그곳에서 친구들에게 선물할 미니어처 세트를 또 구입하였다. 약 250페소(약 15,000원)로, 8병의 한 세트를 팔고 있다. 나중에 내가 마실 모과 맛 데낄라도 한 병 샀다. 오늘 산 것 중에서 제일 큰 병이었는데도 40페소(약 2,400원) 정도밖에 안 했다.
멕시코에 오면 맨날 데낄라를 마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그렇지도 않았다. 내가 잘 못 찾은 걸 수 도 있지만, 마트에 가도 주류 코너에 있는 것은 대부분이 한국에서도 흔한 양주들 뿐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오니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데낄라들을 살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았다.
데낄라 투어는 스페인어로 진행된다. 그러기 때문에 나 역시 거의 대부분 알아듣지 못했다. 간간히 이모가 통역해주는 것을 듣는 것이 전부였다. 그나마 저렴한 가격에 온 것이라 딱히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안 들었지만, 만약 시간이 없고, 비싼 가격을 내야 한다면 굳이 추천하지 않는다.
투어가 끝나면 다시 공장 밖에서 대기 중인 투어 카에 올라타 데낄라 마을로 간다. 마을에는 수공예품을 파는 천막들이 줄지어져 있어 구경하며 놀기에 딱 좋았다. 천막 바로 옆에서는 멕시코 전통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기둥 위에 줄을 묶고 빙글빙글 돌면서 땅으로 내려오는 춤이다. 볼 기회가 드문 춤인데, 운이 좋네, 라며 이모가 말했다.
조금만 더 걷다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데낄라, 호세 꾸엘보의 가게가 나온다.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이 호세 꾸엘보의 데낄라 투어를 이용하는 것 같았다. 호세 꾸엘보 가게는 제품과 관련된 각종 굿즈들을 판매하고 있다. 위 사진처럼 브랜드의 역대 디자인들을 전시해 놓기도 하고, 데낄라부터 티셔츠, 열쇠고리 등등 관련 상품들을 다양하게 판매하고 있으니 한 번쯤 구경할 만했다.
이모 친구의 추천으로 가게 된 cholula 식당. 트립어드바이저에도 나오고, 유명 핫소스의 원조인 식당이라 그런지 웨이팅이 상당했다. 이미 한참 돌아다녀 배가 고팠던 우리에게 40분 웨이팅은 고역 그 자체였다. 그런데 이 식당 외에도 근처 다른 유명 식당들도 사정은 비슷해 보여 어쩔 수 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데낄라 마을에 간다면 알아둔 식당은 미리 대기를 걸어두자.
기다림 끝에 드디어 입장. 식탁 위에는 나초, 리몬, 각종 살사들이 준비되어있다. 핫소스 원조 집답게, 핫소스는 3 종류가 제공된다. 나는 미첼라다와 타코를 시켰다. 고기 요리가 유명한 집이라더니, 저렴한 타코 안에도 소고기가 듬뿍 들어 있었다. 가게 분위기 역시 상당했다. 바깥쪽 테라스 좌석은 특히 예뻐; 앉으려는 사람이 많았다. 식당 안으로 끊임없이 마리아치(멕시코 야외 연주 악단)들이 들어와 연주를 했다. 마치아치를 사진을 찍거나, 신청곡을 말하면 돈을 지불해야 한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데낄라 마을을 한 바퀴 돌며 마저 구경을 했다. 데낄라 마을답게 길거리 곳곳에서 술통 모양 컵에 술을 팔고 있었다. 마을 중앙에는 곧 있을 죽은 자의 날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도 한창이다. 데낄라 마을은 전반적으로 한적하고 아기자기한 동네라 걸어 다니며 구경하는 맛이 제법 있다. 비록 데낄라 투어 자체는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데낄라 마을 구경 자체만으로 꽤 즐거웠다.
우리는 데낄라 마을에서 가까운 과달라하라 외곽에 있는 숙소를 잡았다. 숙소까지 오는 길에 곯아떨어져, 잠이 덜 깬 채로 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그 잠은 금세 다 달아나 버렸다. 우리가 묵을 호텔은 도로 외곽에 덩그러니 있는 곳이었는데, 주차장에는 경찰차들 뿐이고, 사방에 총으로 무장한 경찰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놀란 나는 이모에게 여기 무슨 잠복수사 중인 거 아니냐, 살인사건 난 거 아니냐며 호들갑을 떨었다.
나중에 이모가 물어보니, 그냥 외곽이라 위험해 경비를 서고 있는 것뿐이고, 싼 호텔이기 때문에 경찰들이 집결지로 이용하는 것뿐이라 했다. 이모는 경찰들이 지키니 오히려 안전하고 더 좋겠네. 하고 웃으며 넘어갔지만, 멕시코 초심자인 나는 심란하기만 했다. 숙소의 열악한 잠금쇠와 창문은 자다가 총격전 같은 게 일어나면 어떡하지 하는 망상을 부추겼다.
내일의 첫 일정은 이곳 멕시코에서 가장 큰 호수인 차팔라 호수에 가는 것이다. 과달라하라가 아닌 그 외곽의 숙소를 잡은 것도 다 그 호수에 가기 위함이었다. 새벽부터 나가야 하니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이런저런 걱정에 쉽게 눈을 붙일 수 없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