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ㄲㄲㄲ Oct 24. 2018

한국귀신나잇


많은 사람들은 우리 팀을 ㄲㄲㄲ 라는 유난스러운 이름보다도 '한국귀신나잇'으로 기억하곤 해요. 물론 저희에게도 여러모로 자식같은 프로젝트랍니다. 생뚱맞지만 주섬주섬 한국귀신나잇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볼게요. 한국귀신나잇 Ⅰ을 빼놓고 Ⅱ 를 말할 수는 없겠죠?      


한국귀신나잇 Ⅰ


한국귀신나잇 Ⅰ은 한국 내지는 서울의 할로윈 문화에 대한 다소 회의적인 질문에서 시작되었어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하는 파티 문화에서 단편적인 이미지나 비즈니스 컨셉으로 소비되기에는 '귀신'이라는 소재가 동아시아 특히 한국에서는 꽤나 흥미롭고 무거운 주제라고 생각했거든요. 때문에 늘 기획에 있어서 시의성과 문화적 의미를 추구하(려고는하지만좀처럼되지는않)는 우리로써는 '한국의 귀신을 주제로 하는 할로윈 파티' 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아요.

서낭당

사실 가장 먼저 고민했던 건 장소였어요. 저희가 기반으로 하고 있는 수원 지역은 파티 씬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로컬에서 이런 실험적인 기획을 진행할만한 장소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저희에게는 당장의 영향력이나 파급력보다는 방향성이 더 중요했기에 장소에 대해서는 까탈스럽게 굴지 않기로 했어요..


한국귀신나잇 Ⅰ에서는 가장 대중적인 귀담 중 하나인 '장화홍련전'을 주제로, 파티가 진행되는 동안 곳곳에 특정 인물로 분장하고 있는 npc들을 찾아 장화홍련전의 스토리를 완성하면 리워드를 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돌이켜보면 주제를 담은 '스토리'를 파티라는 '형식'으로 푸는 데에 시간을 많이 쏟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음악과 주류에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죠! 한국귀신나잇만의 유니크한 분위기를 위해 전통주를 베이스로하는 칵테일과 샷을 준비하고 날카롭고 긴장감 있는 사운드를 위해 acid music을 메인 장르로 하는 디제이 크루와 믹셋을 작업했어요. 현장에서의 반응도 좋았고 이후에 피드백도 좋았어요. 저희 스스로에게도 여전히 중요한 레퍼런스로 작용하고 있다고 느껴요.

 

한국귀신나잇 Ⅰ을 계기로 경기상상캠퍼스에서 지금까지 여러 작업들을 하게 되었고

마침 다음 해에 경기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광 프로젝트'에서 한국귀신나잇으로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한국귀신나잇 Ⅱ'를 기획하게 되었어요. 한국귀신나잇 Ⅱ에서는 한국귀신나잇 Ⅰ에서 했던 시도와 이야기들을 조금 더 다듬는 과정이 있었어요. 단순히 지금의 할로윈 문화의 대안으로써가 아니라 동아시아와 한국 문화의 어떤 기조와도 같은 '귀신'이라는 주제를 파티와 또 다른 형식을 통해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자는 것이었죠.


그렇다면 어떤 형식이 스토리를 전달하는 데에 가장 효과적일까에 대한 길고 긴 논의가 있었어요. 그 때 '방탈출'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왔죠. 스토리 안에 참여자가 직접 들어가는 것! 그래서 2016 한국귀신나잇 Ⅱ를 '방탈출'과 '파티' 두 가지 형식의 프로젝트로 진행하게 되었어요. '한국귀신나잇'이 더이상 한 가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확장가능한 복합적인 프로젝트으로 발돋움을 시작한 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장소에 대해 고민하던 차에 마침 경기상상캠퍼스에서 연례로 기획하던 '청년문화페스티벌 2016 청년불판'에서 한국귀신나잇 Ⅱ의 형식을 실험할 기회가 생겼어요.


서낭당2

'한국귀신나잇 Ⅱ : 방탈출' 의 입구에요.

방탈출은 난이도에 따라 두 개의 스토리로 나누어 진행했어요. 리서치를 하면서 생각보다 '귀신'이라는 주제로 체계적인 연구가 이루어 지거나 아카이빙된 자료가 적어서 아쉬웠어요. 대부분 문학 작품이나 대중매체에서 다루어지는 귀신에 대한 자료가 많더군요. 방탈출에 필요한 스토리를 만들면서 전설의 고향 TV시리즈 전편을 정주행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무서워서 고역이었던 기억이 나네요.



사실 방탈출이라는 프로그램은 초기에 세팅하는 비용과 재원이 많기 때문에 비상설적인 페스티벌에서 진행하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었어요. 더군다나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폐건물에서 말이죠.


'한국귀신나잇 Ⅱ 방탈출' 은 소기의 성공을 뒤로하고 '한국귀신나잇 Ⅱ 애프터 파티' 로 이어집니다.


화장실 앞 흡연장

한국귀신나잇 Ⅱ 의 파티에서는 '할로윈'이나 '전통'과 같이 한국귀신나잇Ⅰ에서 다루었던 내용들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귀신이 소비되는 방식을 '베이퍼웨이브' 라는 문화 현상의 관점에서 이해해보기도 하고, '전시'나 '영화', 'VR'같이 지금 파티 문화를 선도하는 세대가 문화를 향유하고 소비하는 방식에서는 '한국귀신'이라는 소재가 어떻게 다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었죠. '공간' '음악' '영상' '포스터' 와 같이 당연히 해야할 것만 같은 형식들에 대한 반문도 있었고 '대담' 을 통해서 한국에서 귀신에 대한 생각이나 인식을 공유할 수 있었던 실제적인 교류도 시도했어요.      


지금은 깨지고 없는 네온..

그래도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공간이었어요. 주제야 어찌됐건 좋은 파티가 되려면 양질의 분위기와 음악은 필수죠. 본격적인 파티가 시작되기 전에는 작은 전시를 했어요. 그동안 리서치 했던 내용들을 텍스트와 오브제, 영상으로 정리해서 플로어 한복판에 늘어놓았죠. 전시대로 사용한 우유 박스는 파티가 시작되면 사이드 벤치와 테이블로 바꿔줍니다!      


오오

한국귀신나잇Ⅰ과 달리 Ⅱ에서는 시그니처 이미지도 작업했어요. 다음 한국귀신나잇을 생각할 때도 그렇고 고정된 이미지가 하나 있으면 여러모로 수월하기 때문이죠.

      

부다 피스

KGN은 한국귀신나잇의 영문표기인 Korean Ghost Night의 약자에요. 시그니처 이미지는 홍보에도 사용했고 스티커랑 네온이랑 풍선도 만들었어요.      

디제이부스

공간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실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의 묘한 감성이 느껴지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한국귀신나잇' 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공포를 원했죠. 애초에 참고할 만한 레퍼런스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3D로 스케치 작업을 하면서 구상을 했어요. 무수한 디테일에도 불구하고 가장 많은 피드백을 받았던 건 한국귀신나잇 네온 사인과 병풍이었어요. 지나치게 원론적인 이야기라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 부분에서는 '베이퍼웨이브' 라는 컨셉이 주효했다고 생각해요. 설화나 민담 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떠도는 괴담 속에서 가공되고 변화하는 귀신의 이미지가 베이퍼웨이브의 그것과 닮아 있다는 점에 흥미를 느꼈거든요. 베이퍼웨이브라는 문화 현상이 하나의 장르가 되기까지의 과정에서 문화의 소비자가 곧 새로운 창작의 주체가 되는 지점이 재미있었어요. 사실은 우리 사회에서의 '귀신'도 그렇다고 생각했거든요. 웹툰이나 영화, 드라마와 같은 매체에서도 가공되어 많이 다루어지지만 학교나 군대와 같은 집단 내에서 계속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퍼지는 것처럼요. 그래서 장소 전체가 일종의 베이퍼웨이브스러운 꼴라주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형식 뿐만 아니라 내용까지도요.  


다들 어디서 뭘 하고 계실까

늘 그렇듯 정신없이 파티가 지나가고.. 디제이 플로어가 끝나고는 아침까지 시네마 라운지를 진행했어요. 컵라면 끓여 놓고 전형적인 한국의 귀신영화 한 편과 사회의 불안과 미스테리에 관한 영화 한 편을 봤어요. 그렇게 한국귀신나잇Ⅱ도 끝이 났네요.      


저희는 언제가 될지 모를 다음 한국귀신나잇을 준비하고 있어요. 예전만큼 가리지 않고 뛰어들 용기는 없지만 더 많은 사람들과 좋은 주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일들을 위해서 느리지만 밀도 있게 만들어 나가려고 해요.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들을 너무나도 좋아해서 아마 잘될 것 같아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