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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랑 Jan 25. 2020

4일차, 추워서 그랑 플라스는 다음에

Stockel(Stokel)에서 장보기

역시나 오전 7시에 눈이 떠졌다. 한국에서는 한참 꿈나라일 시간인데 그렇게 잘 깰 수가 없다. 일어나자마자 전날 쓴 글을 마무리해서 브런치에 올리고 배가 고파 빵을 토스트기에 넣었다. 온도 조절 실패로 빵 두 개가 너무 딱딱하게 구워져서 결국 버리고 새로운 빵 두 개를 더 구웠다. 한국에 비해 빵을 되게 얇게 썰어준다. 혼자 먹을 건데 너무 큰 식빵을 산 것 같아 걱정이다. 열흘 안에 다 먹어야 하는데. 안되면 버려야지 뭐. 같이 사 온 딸기잼을 발라먹었는데 한국에서 먹었던 것보다 덜 달다. 그렇게 빵 세 조각을 먹고 다시 침대로 들어갔다. 이 집 침대가 너무 푹신해서 오래 앉아 있거나 누워있으면 허리가 아프다. 그래서 책상에 앉고 싶은데 그러면 추워서 어쩔 수 없이 침대에 있게 된다. 빨리 계속 살 집으로 이사 가고 싶다. 거기 침대는 적당히 푹신하길.

오전에는 샤워를 하고 잉여롭게 보내다가 점심을 먹고 나가려고 했는데 집에 모르는 사람이 있었다. 식탁 의자를 다 올리고 청소기를 돌리는 것을 보니 대청소를 하는 것 같은데 집주인한테 아무 말을 듣지 못해서 좀 당황스러웠다. 알려주는 걸 까먹은 건지, 내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 건지. 집에는 나 밖에 없어서 물어볼 사람도 없었고, 청소하는 사람 옆에서 뭘 먹기도 좀 그래서 그냥 나왔다.


오늘은 Stockel에 가서 장을 보고 그랑 플리스에 가서 감자튀김을 먹어보려고 했다. 사진으로만 봐도 야경이 너무 예쁘고 감자 튀김집이 정말 유명했다. 근데 장을 보려고 나가니까 밖이 너무 추웠다. 어제랑 그제만 해도 한국보다 안 추워서 패딩을 입으면 꽤 돌아다녀도 딱히 춥다는 생각이 안 들었는데 오늘은 정말 추웠다. 그래서 장만 보고 그랑 플리스에 가는 건 내일로 미뤘다.

첫날 빼고 매일 흐림

Stockel에 가는 길은 이제 익숙하다. 좀 걸어서 트램을 타도 되고 집 앞에 있는 버스를 타도 된다. 추워서 걷기 싫어서 버스를 타러 갔더니 12분이나 뒤에 버스가 온다고 했다.(ㅠㅠ) 어쩔 수 없이 기다려서 버스를 탔다. 한국 버스와 마찬가지로 이번 정류장이 어디인지 알려주는데 지금까지는 불어라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근데 이제 Stockel은 '스떠켈'이라고 발음하는 걸 들을 수 있다. 좀 익숙해져서 귀가 열린 것 같다. 처음 버스 탈 때는 정류장 안내 멘트도 없는 줄 알았다. 한국 버스랑 다른 점은 유모차를 끌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뒷문으로 유모차를 끌고 타며 아무도 눈치를 주지 않고, 유모차를 끄는 사람도 눈치 보지 않는다는 점이 너무 마음에 든다. 적어도 내가 탄 버스는 다 저상버스이고 휠체어나 유모차를 주차(?)할 공간이 있다. 아직 유모차 끌고 트램을 타는 사람은 못 봤는데 그것도 별 문제없을 것 같다. 전용 공간은 없는데 칸과 칸 사이를 연결하는 곳에 공간이 있다.

휠체어랑 유모차 놓을 수 있는 공간. 의자 때문에 가려졌는데 원래 바닥에 휠체어랑 유모차 모양이 다 있다. 유모차 모양은 벨기에 와서 처음 본다. 한국 분발해야 한다.

Match라는 마트에 가서 장을 봤다. 저번에 슬리퍼 사는 걸 까먹어서 오늘은 꼭 사야겠다는 생각에 슬리퍼부터 뒤졌는데 없었다. 휴지, 양말, 생리대, 손톱깎이 정말 웬만한 거 다 팔던데 슬리퍼가 없었다. 집 안에서도 신발을 신고 다니는 문화 때문에 나도 신발을 신고 다니는데 불편하고, 특히 씻으러 갈 때 도대체 뭘 신어야 할지 모르겠다. 신발 신고 다니던 곳을 그냥 맨발로 다니나? 씻고 나서 더러운 바닥을 맨발로 걷고 싶지 않다. 현지인들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 같이 사는 사람들이 씻으러 갈 때 본 적이 없다. 위생개념이 한국과 다른 것 같기도 하다. 수건을 5-7일에 하나씩 쓰는 것 같은데 하루에 하나씩 쓰던 내가 이상해진 기분이었다. 빨리 이사해서 내 수건 사고 싶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정도의 마트 MATCH

슬리퍼를 포기하고 물, 사과주스, 고기를 담고 돌아다니다가 파스타면을 발견해서 오늘 저녁을 파스타로 해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 똑같아 보이는 면인데 가격이 달라서 구글 번역기로 한참을 들여다봤다. 그냥 한국처럼 브랜드가 다른 것 같기도 하다. 아, 좀 특이했던 점은 글루텐 프리인 면이 있다. 가격은 조금 더 비쌌던 것 같다. 문득 계란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계란이 없었다. 서툰 영어 못 알아들을까 봐 물어보지도 못하고 열심히 찾다가 그냥 나왔다. 슬리퍼는 그렇다 쳐도 계란은 왜 없지.


집에 오는 길에 집 근처 다른 은행에 혹시 VISA카드가 되는지 알아보려고 했는데 거기도 Paribas였다. 벨기에에 ING랑 KBC라는 은행도 있다고 해서 다음에는 두 은행을 찾아가 봐야겠다. 브뤼셀에서 교환했던 친구한테 물어서 어디에 슬리퍼를 팔 것 같은지도 알아냈다. HEMA라는 곳이다. 한 블로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케아 축소판이라고 하는데 내일 가봐야겠다. HEMA 근처의 ING 은행도 가봐야겠다. 내일은 날씨가 좀 풀리고 해도 떠서 그랑 플리스랑 HEMA, ING 은행에도 다 가고 싶다.

저녁으로는 토마토소스랑 파스타면, 진짜 방울토마토를 넣고 파스타를 해서 먹었는데 너무 맛이 밍밍했다. 피클 사는 걸 까먹어서 아쉬운 대로 김치라도 꺼냈는데 나름 잘 어울렸다. 밍밍한 파스타 대신 김치가 맛을 살려줬다. 오히려 추가로 넣은 진짜 방울토마토가 구우니까 너무 맛있어서 남은 것도 그렇게 해먹을 예정이다. 부엌에서 마주친 집주인이 오늘 'house wife'가 오는 날인 걸 까먹고 말하지 못했다고 했다. 다음 주에는 목요일에 온다고 혹시 청소하고 싶으면 말하라고 했는데 토요일에 나갈 거라 굳이 안 해도 될 것 같다. 의식의 흐름대로 생각을 좀 덧붙여보자면 'house wife'라는 말도 참 빻았다. 집+아내라니..'아내=집에 있는 사람'을 뜻하는 것 같기도 하고, 집안일은 아내만의 몫이라는 걸 포함하는 것 같아서 불편한 단어다.


밥을 다 먹고 방에 올라와서 쉬는데 너무 졸리다. 오늘도 일찍 자게 될 것 같다. 그리고 여기 와이파이고 데이터고 너무 느리다. 사진 하나 전송하는데 한참 기다려야 한다. 답답해 죽겠다. 이것도 적응이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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