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스트랜드가 쓴 <빈방의 빛>을 다시 읽었다. 이 책은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에 대해 서술한다. 매 챕터마다 호퍼의 그림이 있고, 그 그림에 대한 감상 및 해석을 전달한다. 주로 호퍼 작품의 구도와 분위기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사각형 구도와 공허한 분위기에 대한 것이다. 괜히 책 제목이 아닌 <빈방의 빛>(1963)은 이 책 전체를 아우른다.
내가 느끼는 바에 의하면 호퍼의 그림은 대체로 단단하고, 공간을 묘사하고 있으며, 계획된 느낌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차곡히 쌓아 올린 듯 보이는 붓질과 얕은 공간, 천천히 그린 대상이 내가 느끼는 호퍼의 그림이다. 반면, 나의 그림은 호퍼의 그림과 아주 대조된다. 한 번에 끝내버리는 붓질, 평면성, 빠르게 그려나가는 대상. 그래서 호퍼의 그림은 정적이고 고요한 반편, 나의 그림은 율동이 느껴진다.(물론 움직이려는 대상을 포착하는 게 나의 목적이긴 하다)
전혀 다른 두 스타일임에도 깨닫게 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구도’에 대한 것이었다. 주로 공간을 그리는 호퍼의 구도는 아주 파격적이진 않지만 적당한 균형을 가지고 있다. 대체적으로 안정감이 들고 정적이다. 그의 구도는 캔버스 화면의 분할한다기보다는 공간의 분위기를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캔버스 화면을 확대하면 색면처럼 보이겠지만, 전체를 보았을 때는 색면 보다 그 공간이 먼저 눈에 띈다.
그렇다면 나의 구도는 어떠한가. 나는 화면 위의 면들이 최대한 비슷한 영역으로 남지 않게 하려고 한다. 위 작품으로 설명하자면 빨간 영역과 초록 영역, 피부색의 영역 등 각 색의 영역들이 모두 다른 비율로 있어야 한다. 나는 캔버스 위를 하나의 색 덩어리로 보고 그 영역들의 분할에 신경을 쓰는 편이다. 그래서 하나의 물리적인 공간을 그려내는 느낌보다 색면을 그려내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나도 호퍼처럼 공간을 그려보고 싶은 욕구가 있다. 이전에 시도했었고, 최근에 다시 시도 중이다. 어떠한 상황을 연출하고 싶을 때 공간을 그리고 싶어 진다. 주로 상황을 숨겨서 그리는 걸 선호하지만 꼭 상황을 그려야 할 것 같은 것들이 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공간을 그리게 되면 웬 걸,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다. 전체적인 밸런스도 흐트러질 뿐만 아니라 최초에 표현하고 싶었던 것 마저 잃게 된다. 연습 중이라 수많은 망작의 탄생이 당연한 것이겠으나 속상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이전에 지도 교수님께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림을 그려야 해.” 이 말의 뜻을 알기까지는 꽤 몇 달이 걸렸다. 이후 교수님이 “이제 너는 그림을 그리고 있어.”라고 하실 때 묘한 쾌감을 느꼈던 걸로 기억한다. 다시 돌아가서, 내가 공간을 그리기 시작하면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된다. 그저 캔버스에 이미지를 옮기는 것에만 집중하게 된다. 대학원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어느 순간에는 공간도 ‘그리고’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