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엄마의 시어머니
엄마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스물셋에 시집와 지금 칠순을 넘었으니 역사가 깊다.
엄마가 시집올 때 할머니는 마흔을 조금 넘긴 내 나이쯤 되셨나 보다.
이제는 좀 벗어날 때도 되었건만 할머니는 여전히 정정하시다.
겉으로 볼 땐 정정하신데 모든 화와 화장실 문제, 불편한 뒤치다꺼리는 집에 함께 있는 엄마의 몫이다.
'치매'를 증명하는데도 어려움이 많아 나라의 도움을 받기 전까진 하루 종일 엄마가 시달리셨다.
노인들을 돌보는 센터에 다니게 된 후 엄마는 이렇게라도 돼서 '살 것 같다' 하셨다.
엄마는 편하게 아들, 딸이 사는 곳에 마음대로 올라오지도 못하는데
할머니와 반나절 떨어져 있을 수 있음에 '이게 어디야' 하신다.
엄마는 속병이 깊다. 할머니가 정정하신 이유를 간단히 정의하신다
'할머니는 속병이 없잖니.'
자신을 우선으로 두고 산 사람은 속병이 없다. 엄마도 그걸 배웠으면 좋겠다.
엄마는 도리를 다하는 것을 중심으로 두는 사람 같다. 마음이 불편한 일은 하지 않는다.
"어머니~"하고 살갑게 부른 적은 없어도 도리를 저버린 적은 없다.
'내가 하고 말지~'의 마음으로 평생 인내하며 살림과 육아를 했다.
작은 키에 45킬로가 안 되는 작은 몸으로 딸 셋, 아들 하나를 낳았다.
임신을 하고 잠깐 낮잠이라도 잘까 하면 할머니가 배에 손을 쓰윽 대며 아들일 거라 압박하셨다.
셋째인 나를 낳고 목놓아 울었단다. "이 짓을 또 해야 하다니." 하며
(할머니가 앓아 누우신건 말할 것도 없다 하하.,,)
아이가 방학을 맞으면 나는 삼시 세 끼에서 벗어나고자 고향으로 내려갔다.
느지막이 일어나 엄마가 찬이 없다며 꺼내준 반찬들을 먹으면 집에서는 밥 한알도 먹기 귀찮은데
한 공기는 뚝딱이다. 엄마는 별다를 것 없다지만 엄마의 음식이 늘 그립다.
주말에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치매 센터에 다니시는 할머니가 코로나에 걸리셨다고 했다.
엄마는 내가 내려올까 봐 서둘러 전화를 하셨다.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엄마가 걱정됐다. 지난 팬데믹의 악몽이 떠올랐다.
무증상의 할머니를 간호하다 엄마의 약한 기관지가 폐렴으로,
급기야 숨시기가 곤란해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입원을 하셨고
면회도 되지 않고 목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매일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엄마의 문자를 기다리거나 묵주알을 돌리는 것뿐이었다.
겁이 많이 났다. 이대로 엄마가 사라진다면 정말 많은 것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는 엄마를 사랑하고 미워한다.
(신혼 없이) 어린 나이에 시작된 시집 살이, 맏며느리의 고충을 겪어낸 엄마.
그런 엄마가 몹시 가여우면서도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한 데서 오는 애증이 있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 순응하고 희생한 여성에 대한 안타까움과 '왜 나를 보호해주지 않았나'하는 원망이
엉겨서 돌덩이처럼 내 속을 짓눌렀다.
조금 덜 아픈 것이 조금 더 아픈 것을 돌본다는 것.
조금 더 아픈 것이 조금 덜 아픈 것을 살게 한다는 것.
- 이제니, <새벽과 음악> 중에서
할머니와 엄마 중에서 조금 덜 아픈 사람은 누구일까.
과연 서로는 서로를 살게 하는 관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