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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레티아 Oct 08. 2021

학습의 실체화: 약제 부작용까지 알고 싶진 않았는데

돌발성 난청과 이명과 스테로이드 부작용

추석 첫날, 귀가 먹먹했다. 괜찮아지겠지 생각하고 전도 부치고 성묘도 가고 그랬는데, 좋아지지 않아서 연휴 마지막 날에 문을 여는 이비인후과를 찾아갔다. 의사에게 딱 두 마디 했다. '귀가 먹먹해요. 양쪽 모두 그런 느낌이지만 왼쪽이 더 심해요.' 바로 청력검사를 시행하였다. 이비인후과를 아직 안 배워서 뭐가 어떤 원리로 진행되는지는 몰랐지만, 골전도 검사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청력 저하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진단명은 좌측 귀에 (저음역대 청력 저하가 동반된) 돌발성 난청. 고용량 스테로이드 치료를 한다고 하였다.

의학을 배우다 보면 약간 만병통치약이냐 싶을 정도로 애매하면 쓰는 약제가 있다. 그게 바로 스테로이드다. 우리 몸의 면역력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염증을 억제하며 자가면역질환, 피부질환 등 매우 많은 질병에 쓰인다. 간혹 근거가 완벽하게 뒷받침되지는 않지만 발병 원인상 스테로이드를 쓰면 호전될 것이라 기대되어 사용하는 질병들도 있다. 물론 스테로이드는 굉장히 주의해서 사용해야 한다. 우리 몸에는 신장 위쪽에 부신이라고 스테로이드 호르몬을 만들어내는 기관이 있다. 외부에서 스테로이드를 주게 되면 부신이 '어? 스테로이드가 많네? 나 일 적게 해야겠다.'라는 식으로 기능이 억제되고, 약을 끊었을 때도 그것이 지속되어 부신기능 저하증이 생겨서 사람이 무기력해질 수 있다. 따라서 고용량 스테로이드를 사용하게 되면 약을 한 번에 끊지 않고 천천히 용량을 줄여가면서 끊어야 한다. 그 과정을 '테이퍼링'이라고 하고, 나도 테이퍼링 때문에 근 1.5주 동안 스테로이드를 먹었다.

치료를 시작한 첫날,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고 딸꾹질이 나기 시작했다. 그때 마침 신장학을 배우던 때였는데 'BUN이 상승하는 경우: 이화 상태, 부신피질호르몬, 쫑알쫑알' 뭐 이런 걸 배웠기 때문에 스테로이드 부작용인가, 하고 찾아봤더니 그렇다고 했다. 다행히 딸꾹질은 심하지 않았고, 배고픈 건 더 먹으면 되었기에(... 근데 의외로 몸무게를 재보니 포동포동해지진 않았다) 그냥저냥 버텼다. 지금 이렇게 사소한 스테로이드 부작용이 문제냐, 귀가 안 들리게 생겼는데....

그러다가 스테로이드 테이퍼링이 끝나기 며칠 전부터 상반신의 피부가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울긋불긋하게 여드름 같은 것이 올라왔다. '이상하다, 여드름 치료제가 스테로이드인데, 그러면 이건 여드름이 아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찾아보니 스테로이드성 여드름, 영어로는 Steroid acne으로 자가진단 내렸다. (사실 자가진단은 하면 안 된다. 그런데 나 같은 경우는 피부 트러블이 정말 없는 축복받은 피부였기에... 원인이 너무 스테로이드밖에 없었다.) 이는 스테로이드로 인해 면역력이 약해져 피지샘이 감염에 취약해져서 생기는 것이라 한다. 찾아보니 어차피 자연 치유된다고 하고, 심하면 원인이 균인지 곰팡이인지 파악한 후 항생제나 항진균제를 처방한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약을 처방받을 정도로 심한 것 같지 않았다. 사실 원래 얼굴에도 났었는데 양치할 때마다 세수하고 로션 바르고 그러니까 몸에 비해 훨씬 증상이 괜찮아졌으므로... 조금만 관리하면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속상하지만 빨리 다시 초강력 튼튼한 나로 복귀하길 기대할 뿐이다.

여드름이 날 때쯤 또 다른 증상이 나타났는데 그건 바로 다뇨였다. 마침 그때쯤 신장학에서 야간다뇨의 진단 방법 등을 배웠는데 자꾸 새벽에 방광이 빵빵한 걸 보니 다뇨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경구 스테로이드의 또 다른 부작용이 다뇨다. 흑... 찾아보니 해당 증상이 있으면 당뇨 검사를 해보라는데 장기간 사용이 아니니 설마 당뇨겠어? 하면서 일단 버티고 있다. 몇 주 뒤에도 호전이 안 되면 내분비내과 교수님과 친해지러 가야겠다.

어쨌든 약을 먹음에 따라 귀가 먹먹한 증상은 점점 호전되었고 청력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시험기간에 다시 한번 악화가 있었지만 시험을 포기하고 자니까 나아졌다.) 하지만 저음의 이명이 생겼다. 아니, 원래 이명이 있었는데 귀가 먹먹한 증상 때문에 몰랐던 것일 수 있겠다. 처방해주시는 약을 보니 이명에 도움이 된다는 놈들이 많은데 딱히 효과는 없었다. 안타깝다. 이렇게 그냥 평생을 살아야 하는 건가. 아직도 하루 종일 귓속에서 작은 요정들이 큰 북을 치고 있는 느낌이다. 

하여간 만날 수업시간에 듣던 고용량 스테로이드 치료, 테이퍼링 등을 실제로 해보니 참 새로웠다. 아프면서 하나 배운다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세세하게, 이렇게까지 당하면서 알고 싶지는 않았는데. 아직도 한참 남은 약봉투를 보면서는 의대를 졸업해도 이렇게 막힘없이 처방하려면 공부가 더 필요하겠지, 하는 생각도 든다. 뭐가 상호작용을 안 하는 약인지, 비슷한 약을 얼마나 처방해도 괜찮은지, 환자의 몸무게에 따른 약 처방은 어떻게 되는지, 정말 배울 게 많다. 그리고 가끔 스테로이드를 툭하면 처방하는 의사 선생님들이 있는데 왠지 난 앞으로 그런 의사는 못 될 것 같다. 내가 너무 부작용을 심하게 당해서 처방하기 전 다시 한번 고민, 또 고민하지 않을까. 

그런데 너무 가이드라인상 스테로이드 처방해야 하는 질환이 많다! 아 물론 고용량 말고 저용량은 부작용이 덜하겠지만 말이다. 제발 몇 주 뒤에는 몸 상태가 원상 복귀되기를.... 제발 내분비내과에 담임교수님도 있고 학장님도 있단 말이야....

Cf. 추가 - 피부과 수업을 들었는데 정확한 질환명은 여드름모양발진(Acneiform eruption)이라고 한다. 스테로이드 뿐 아니라 표적항암제에서도 많이 나타나며, 심지어 표적항암제 치료를 했는데 이 병변이 안 생기면 효과가 없나벼....라고 생각하기도 한다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암은 정말 걸리고 싶지 않은 질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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