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랑천 한 바퀴
올 봄은 유난히 맑았다.
아니, 사실 여름까지도 유난히 맑은 것 같다.
비가 오는 날이 드물었고,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질리도록 볼 수 있었다.
덕분에 야외활동을 하기는 좋았던 것 같다.
얼굴에 주근깨가 늘어났지만, 산 위에 올라 도시와 자연의 풍경을 바라보며 해방감을 느끼는 나날이 많았었다.
우리 동네에는 중랑천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 스스로 정해놓은 시간에 중랑천을 따라 걷는다.
운동을 목적으로 걷는 사람, 강아지 산책을 위해 걷는 사람, 출퇴근 경로로 사용하는 사람...
나는 하루의 운동량이 적어 건강을 깎아먹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날 일말의 양심을 위해 산책하는 용도로 걷는다.
그날도 날씨에 감탄하며 가족과 함께 중랑천을 걷고 있었다.
천변의 새로 심은 산딸나무가 잎이 축 처져 매우 볼품없어 보였다.
"아니, 저건 올해 심었는데 왜 이렇게 관리를 못 했냐."
내가 말했다.
"올해 가물긴 했어."
공장에서 텃밭을 하는 아빠가 말했다.
"그래, 어쩐지 올해 날씨가 너무 좋더라."
식물 키우는 것을 좋아하는 언니가 말했다.
순간 머릿속이 철렁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가뭄이었구나.
날씨가 마냥 좋아서 기뻐했는데 그건 그냥 나의 편협한 시선이었구나.
뭐든 좋은 것도 정도껏 해야지, 비가 오는 날이 없으면 화창한 날은 지옥의 불구덩이일 뿐이다.
나는 문명의 이기에 그런 것을 알지 못하고 살아왔구나.
생각해보면 이런 편협한 시선은 비단 자연뿐만이 아니라 사회에서도 많이 나타난다.
우리가 만날 탁상공론을 한다며 정치인을 욕하는데,
그런 욕을 하는 우리도 남을 이해하지 못하는 시선을 많이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현상을 봐도 다르게 해석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늘 걱정이 되는 것은, 알고리즘의 발달로 인해 나에게 맞춤형 자료들이 추천되면서
내가 원하는 자료, 의견만 받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다.
또 걱정이 되는 것은, 바이럴과 광고산업의 발달로 인해 날 것의 자료들보다는
원하는 대로 해석되고 가공된 자료만 받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다.
그런 문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러 시선을 듣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내가 '와 날씨 맑다~'라고 단순히 생각하고 있던 와중에
아빠와 언니가 '올해는 가뭄이 심하군...'이라는 식으로 알려줘서
이 날씨가 마냥 좋은 게 아니라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처럼 말이다.
한편으로는 그런 말을 해줘도 못 알아듣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늘 세상에 대한 관심을 잃지 말고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귀를 막고 자기 주장만 내세우고 탁상공론을 하는 사람,
요즘 느끼기에는 세상에 그런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은데,
그 느낌이 심각한 편견이길 바랄 뿐이다.
내가 앞으로 그렇게 되지는 않겠지?
가끔은 두렵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