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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가 싫은 파리지엔느

From Seoul to Paris

브런치를 첫 오픈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2014년 여름으로 가는 타임머신을 타고 생각에 잠겨본다. 인생에 계획을 세운다고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더라. 대한민국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가 전세계인의 여행지 파리에 살게 될 줄이야.



대학교 휴학을 하고 영어 배우러 간 미국에서, 프랑스 노르망디의 한 배나무골에서 온 순박한 청년을 만났다.



나는 배나무골의 알수없는 마력에 빠져 그에게 예스를 날렸다. 2014년 여름, 그가 있는 프랑스로 이주했다. 파리에 오자마자 나름 긍정적으로 현지 생활의 포문을 열었다. 미리 지원해둔 학교에서 영어로 국제 개발 전공 수업을 따라가며 프랑스 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 이듬해부터는 프랑스에서 두 번의 결혼식을 하고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기 위해 평생 익숙한 시공간을 떠나는 결심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같이'의 가치는 생각보다 꽤 대단한 일이어서 결국 마레지구의 한 작은 아파트에 캐리어를 풀었던 것이다.



만약 파리에서 단 1주일만 여행하는 여행자였다면,
지금보다 파리를 조금은 더 좋아하게 되었을까?



처음 내가 프랑스에 간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렸을 때 꽤 엄청난 호응이 있었다.


"세상에, 파리라니... 너무 부럽다. 너무 좋겠다."


꽤나 일관된 반응이었다. 겉으로는 "사람사는 데가 다 똑같지 뭐"라며 사실 무덤덤했지만 나도 내심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에게 프랑스 중에서도 꼭 파리에 자리잡아야 하며, 그중에서도 꼭 시내 중심가에 살고 싶다고 더 어필했었다(!) 집 구하기 어렵기로 소문난 파리의 아파트난 속에서 그는 운좋게도 '마레지구'에 월세로 들어갈 아파트를 구할 수 있었다. 캐리어를 펼치면 꽉 차는 작은 스튜디오에서 함께 있었지만 한 공간에서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고 행복했다.


그러나 사는 것과 여행하는 것은 다르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명제다. 현실과 맞부딪히면서 산산이 깨지고, 그 깨진 거울을 조각조각 모아 다시 간신히 이어붙이면서 살아나가는 생활은, 상상하는 것처럼 장밋빛 인생만은 아니었다.




한 도시에 짐을 푸는 순간, 그 도시는 무거운 무게로 다가온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된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느끼는 공간이 된다. 멈춘 곳에서의 또다른 일탈을 꿈꾼다. 그러나 떠나지 못하는 사람, 파리가 싫은 파리지엔느!
 



가끔은 파리의 여행자이고 싶었다. 전세계의 여행자들이 북적이는 파리에서 맨 얼굴로 집 근처 마트에 감자와 대파를 사러가는 것이 아니라, 한껏 꾸미고 바람에 살랑이는 원피스를 입은 채 설렘으로 파리를 대면했다면 달랐을까 하는 상상을 했기 때문이다.


벌써 햇수로 4년을 지나왔다. 한국을 왔다갔다 한 시간을 빼면 3년 정도 파리 생활을 다. 파리에 오기 전 가져야 할 필수 덕목인 에펠타워에 대한 로망조차 없던 사람이, 해안가에서 참 멀리도 떠나왔구나 싶다.


처음에 같이 있는 것만으로 행복했던 우리만의 그 작은 스튜디오는 이내 감옥이 되었다. 세계적인 여행지 도시의 중심가에 산다는 건 마치 광화문 광장을 마주보고 있는 건물에 세들어 산다는 것과 같은 이치였기에, 매일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파리 중심가의 생활환경은 생각보다 거주지로 적합하지 못했다. 낭만은 떠나고 현실이 남았으며 희로애락에 웃고 울었다. 그래도 삶은 흘러갔다. 파리는 내게 단짠단짠이다. 멈추지 못하는 진동추처럼 매일 어떤 감정들의 극점을 왔다갔다 하며 살았다.


자유와 방종, 꿈, 환호, 광란, 이기심과 이타심, 성공과 좌절, 꿈과 희망, 낭만, 혐오, 차별, 슬픔, 기쁨... 모든 감정들이 폭죽놀이를 하며 나를 시험에 들게 다. 파리에서 힘들었던 건 그저 나의 마음이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어서였을까. 어쨌든 파리는 내가 가장 힘든 순간과 행복한 순간을 지나보낸 곳이었다.


브런치에는 현지인과 이방인의 경계에 선 누군가의 시선으로 글을 쓰고 싶다. 가끔은 파리의 낭만을 잠재울지도 모르는 현지 이야기를 들려주다가도 때로는 파리의 낭만을 이야기할 것이다. 파리만이 프랑스가 아니듯 프랑스에 대해 새롭게 알고 경험하는 것들을 이 공간을 통해 나누고 싶다.


파리  그 무언가를 발견하기 위해,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오늘도 나는 파리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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