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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달 Apr 10. 2023

진심으로 감사하지 못하는 찌질함

가난을 이야기하다 06 자기비난


시부모님은 경조사 등을 정말 잘 챙기시는 분이셨다. 많던 적던 때만 되면 돈을 보내주시거나 밥을 사 주신다고 하셨는데, 친정 부모님은 그런 것은 잘 못 하는 분이셨기에 처음에는 신기하기도 하고 또 너무 좋아 보이기도 해서 남편이 부러워 보이기도 했었다.


'나도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이렇게 해야겠다.'


시부모님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었는데. 주는 것도 받는 것도 마냥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시간이 쌓이고서야 알았다. 





아이의 생일날, 아이가 원해서 이번에는 몇몇 친구들에게 밥을 사주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셨나 보다. 시어머님은 "돈 조금 보내 줄게 보태서 써"라고 하시면서. 


늘 비슷한 패턴으로 '우리는 요즘 이런저런 일들로 돈이 많이 나가서..'라는 소식을 같이 전하셨다.


...


나는 이런 상황에 습관처럼 '괜찮아요(안 주셔도 돼요)'라는 말을 먼저 했었는데, 결혼 초 몇 년은 나 자신이 받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진심이었고. 몇 년 지난 뒤부터는 남들도 다 그러하듯 그냥 예의상 하는 빈말이었다. 


씁쓸하긴 하지만 외벌이 결혼 생활을 하다 보니 돈 몇 푼이 간절하게 필요한 것도 사실이었고, 그분은 언제나 거절은 거절하시는 분이었기 기도 했다. 심지어 '뭐 먹을까?'라는 질문에도 그저 편안하게 하시는 '질문'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한참 뒤에야 알았으니. 


나는 도대체가 눈치가 없는 것인지 머리가 나쁜 것인지. 






현실적으로 그렇긴 하지만.. 언제나 그분 눈에 우리는 늘 부족하고 모자랐던 것 아닐까. 진심으로 우리를 위해서 돈을 써 주시면서 동시에 지금 그분이 어디에 돈이 많이 나가고 있는지, 혹은 요즈음은 시아버님 수입이 줄어들었다던지 하는 말씀도 같이 하셨다. 


간혹 나에게 무엇을 사주신다고 쇼핑하시면서 시어머님 친구분은 자식에게 무엇을 받으셨다, 그러나 나는 명품에는 관심이 없다는 말씀도 같이 하셨다.


아마도 '그러니 욕심 내지 말고 분수에 맞게 열심히 살아라' '너희도 나처럼 명품 같은 것은 부러워하지 말아라' '너(며느리)에게 더 좋은 것을 사 주고 싶지만 나(시어머님)도 현재 상황이 거기까지는 안 된다'라는 좋은 의미와 설명을 주고 싶으셨던 것이라 생각한다. 


어른들이 다 그러하듯, 나도 내 아이들에게 그러한 것을 가르치고 싶은 마음처럼. (지금은 욕심은 가져보라고 가르치고 싶지만)


결혼 후 처음 몇 년은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며느리인 나에게만 그러신 것이 아니라 본인 아들에게도 남편에게도 손주들에게도 비슷한 화법으로 말씀을 하시는 분이시기에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으신 마음은 충분히 잘 알고 있다.


처음에는 나도 진심으로 조언을 듣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나중에 꼭 갚아드리고 싶다.. 등의 생각을 했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도 반복되는 패턴에 언제부터인가 시어머님께서 사주시는 것들이 다 불편하게 느껴졌었다.


도대체 나는 좋은 마음으로 주시는 것들이 왜 불편하다 못해 힘겹게 된 것일까.






돈도 못 버는 주제에, 착하신 분이 좋은 마음으로 주시는 그거 하나 감사하지 못하고 사는 못나고 나쁜 인간. 그분의 가벼운 수다 조금(?) 가볍게 들어주지 못하는 속 좁은 인간. 


그게 내가 생각하는 나 자신이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감정들은 점점 더 크게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 어느 날엔가는, 이런 것들이 아주 작은 충격에도 뻥 하고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뭘 주신다는 것이 무엇이 문제였을까. 그걸 좋은 마음으로 못 받아들이는 나 자신이 문제였겠지.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런 순간순간마다 나는 나 자신을 비난했었다.


그렇다고 해결 하지도 못 할 거면서.




그래도 지금은 "네 감사합니다"라고 조금은 속 편하게 받는다. 무겁게 주셨는지 가볍게 주셨는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받았던 돈은 그냥 돈이고 더해진 숫자일 뿐 아닐까.


..라고.. 노력하는 중이고,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돈이 많았으면 다른 상황이 찾아왔을까? 글쎄.

내가 돈이 많았으면 괜찮았을까? 그럴지도.



나도 돈도 선물도 돈 많이 쓰면서 드리고 싶다. 

마음과 현실 사이의 엄청난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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