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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달 Jun 15. 2023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것일까?

중년 그리고 사회 초년생 05 내향인의 인간관계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주인공 '염미정'은 내 모습과 많이 닮았다. 집단 속에서 텅 빈 눈동자를 하고 있으면서 적당히 대답만 하고,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게 되면 자동적으로 미소를 짓는 모습 같은 것. (물론.. 주인공의 너무 예쁜 외모나 능력은 나와 정 반대이지만.)


누구와도 갈등을 만들어내진 않지만 그렇다고 일정 거리 이상 가까워지지도 않는. 그러면서 온전히 독립적이라 혼자 막 씩씩하고 행복한 것도 아니어서 매 순간순간 혼자 지쳐하는 장면 등. 다시 보아도 사람들 속 주인공은 볼수록 내 모습 같기만 하다.



특히 여자들은 모여서 수다를 떨면서 친해지고 가까워지는 시간이 중요한데, 나는 그런 시간들이 조금만 길어져도 버겁게 느껴지곤 한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것일까? 손톱 모양이나 서로의 수영복 색깔 등이 어떻게 그렇게도 중요한 것일까. 




내가 일하는 곳은 조금 늦게 출근해서 조금 일찍 퇴근할 수 있어서, 아이를 돌봐야 하는 아이엄마들이 많았는데 심지어 나는 아이를 셋이나 키운 사람임에도 좀처럼 대화에 끼어들지 못했다. 질문에는 대답도 잘하고 같이 맞장구치면서 호응도 잘하면서 잘 웃었지만 그것에서 끝이니 주고받아야 하는 대화가 길어질 수가 없는 것.


뒤돌아 보면 나는 아이 친구 엄마와의 관계에서도 좀처럼 가까워지지 못했었다. 소소하게 뭘 해서 먹었는지, 어느 식당 맛이 어떤지, 아이들이 오늘 어떤 글자를 어떻게 썼는지 등등 그런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무엇을 궁금해하고 무엇에 흥분을 해야 하는 것일까.


그때에는 사람들과 만나고 시간을 보내려면 돈이 필요한 데 나는 그 돈이 부족하고 아까웠고, 아이가 셋이라 바쁘다는 이유로 시간도 아까워서 그랬던 것이라고만 생각을 했었는데. 


최근 일을 하면서 집단 속에 있는 나 자신을 관찰해 보니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같이 밥을 사 먹지 않으니 수다 떨 시간이 없어서'라는 핑계도 있었으나, 그 외의 시간에도 나는 좀처럼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하는 법이 없었다. 


다들 좋은 사람들이었는데.

어떤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왜 그들에게 궁금한 것들도 없고 관심도 없을까?

나는 인간들을 싫어하는 것일까? 





나는 매일 혼자 자리에 앉아 간단하게 끼니를 때웠다. 처음에는 그 공간이 낯설었으나 '오늘 뭘 먹을까?' '오늘 어떤 대화로 함께 있는 시간을 채워야 할까?'라는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편한 마음이 훨씬 더 컸었는데. 


하루는 우연히 휴게실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이 많았고 대표도 음식을 많이 싸왔다며 같이 먹자고 했던 날, 함께 모여 평소보다 오버스러운 수다 소리가 자리에까지 크게 들려왔다.


갑자기 만들어진 상황이라 굳이 혼자 앉아 있는 나를 불러서 같이 먹을 정도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나 역시 새삼스럽게 뒤늦게 그 자리에 끼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는데. 혼자 있는 공간 속 혼자서도 항상 괜찮았던 그 시간이 그날따라 유독 불편하게 느껴졌다. 


나는 무엇에 불편한 것일까. 그 속에 섞이고 싶지 않으면서.

혹 나는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고 눈치를 보는 것인가. 

그렇다면 무엇을, 누구를 위해서? 



다음날 조회를 빙자한 잔소리가 많은 편인 대표께서 '그래도 사회생활은 직원들끼리 서로서로 친하게 밥도 같이 먹고 그렇게 지내야 서로 좋다.'라고 또 빙빙 돌려 말이 길어진다. 나 들으라고 하는 이야기인데. 


나의 경우에는 하루 꼴랑 몇 시간 회사에 있으면서 점심시간 제외하고는 옆 사람 얼굴 볼 틈도 없이 일을 하고 일찍 나오는데. 언제 친해지는 것까지 하란 말인가. 무엇보다 할 말이 없는 걸 어쩌라고. 



아니.

언제? 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가 문제인 건가.






사람들 틈에 쉽게 섞여 들어가 지도 못 하고 그렇다고 그들 사이에서 온전히 나 혼자여도 편안하지도 않은 나 자신이 이상하면서 껄끄럽기도 하다. 나는 스스로 '낯가림이 심한'사람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몇 달이나 지나도 그대로이니 단순히 그런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여전히 저 아래 어느 늪에서 혼자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고작 그 정도 사람들과 함께 있다 들어오는 것조차 버겁다고 징징거리는 나약하기 짝이 없는 무능력한 인간인 것일까. 아니면 오롯이 혼자이고 싶지도 않으면서 동시에 같이 있기도 싫은, 너무 이중적이고 욕심이 많은 것일까. 



드라마 속 미정이는 마지막에 재능을 살리지는 못 했지만 혼자 조용하게 일을 할 수 있는 마음 편안한 직장으로 옮겼다. 어쩌면 계속 나도 나와 맞지 않은 공간만 찾아다니면서 스스로 못났다 자책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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