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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달 Jul 03. 2023

거절해도 괜찮아.

관계 _ 사소한 일은 사소한 일로 넘기는 연습. 


저녁을 다 먹었을 때 즈음 시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우리 지금 고깃집 왔는데, 혹시 안 먹었으면 와서 같이 먹으라고..."


 '보통의 저녁 시간'이라는 것이 참 애매해서 어려운 말이긴 하지만 그때가 저녁 8시가 다 되어가던 시간이었고, 시어머님 계신 근처로 가려면 옷만 바로 갈아입고 나간다고 해도 30분은 걸릴 것이었는데. 


물론 그분께서는 이런 상황을 전혀 모르셨겠지만 주말 내내 처박혀 있던 다 큰 아이들은 나가기 전에 샤워도 해야 했으니 준비시간만 1시간은 걸릴 상황이었다.


만약 우리가 식당으로 간다면.. 그때 즈음이면 벌써 다 드시지 않으셨을까? 그럼 우리는 멍하니 기다리고 계시는 그분들 옆에서 허겁지겁 먹어야 했을지도. 


며칠 전에도 비슷했는데, 그때에는 오후 9시가 거의 다 되어가던 시간이었다. 저녁 먹지 말라고 미리 말씀하신 것도 아닌데 그 시간이면 그래도 좀 늦은 시간 아닐까. 


시어머님은 무계획적이고 즉흥적이신 편이었다. 어느 날엔가는 맛있는 음식을 갑자기 사주시기도 했지만, 어느 날엔가는 본인이 드시려고 샀는데 못 먹고 있다가 유통기한이 다 되었는데 아깝다며 급하게(?) 가지고 오시기도 했다.


나 역시도 계획적이지 못 한 성격이라 그저 문득 맛있는 것을 보면 자식들도 같이 먹이고 싶은 마음이야 너무 잘 알고는 있는데. 


가끔이었지만 내가 하고 있던 것들을 멈추고 갑자기 그것을 먼저 해야만 하는 일이 반복될수록 무언가 불편한 감정들이 쌓이기도 했었고, 거절을 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만들어진다는 것이 힘들었었다. (우리 집에, 내가 허리 아파서 사용하지 못하는 딱딱한 돌침대가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왜 나는 좋은 마음으로 주시는 것들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갖는 것인가?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는 내가 나쁜 사람이었고, 죄책감으로 차곡차곡 쌓이기도 했었다. 


그분의 좋은 마음이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니다. 주신 음식 못 먹겠으면 버리면 되고 못 가면 거절을 하면 될 일. 그중에서도 분명 내가 선택을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을 텐데, 나는 모든 상황들이 꼭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이 나를 끌고 가는 것처럼 느껴졌었던 것 같다. 


그렇게 끌려다니다가 어떤 것들은 거절을 해 놓고도 한참을 마음이 무거웠다. 일상에서 아주 소소한 사건들 하나하나가 각기 큰 무게로 얹어져서 내 하루에 끝에는 '지쳤다'라는 기분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니 다른 것들을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전혀 없었던 것이었을지도.






"저희 저녁 방금 먹었어요, 맛있게 드세요!"

"오늘은 애들 밥 먹어서 그것 안 먹겠대요."


거절을 하고 나면 간혹 그분의 서운한 마음이 전달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것이 사실인지 아님 그냥 눈치 보는 내 기분인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몇 년 전까지는 "그게 왜 싫으니"라던가 "그래도 필요할 거야"와 같은 말씀으로 나의 "괜찮아요"라는 거절을 거절하시곤 하셨는데, 최근 몇 년 물리적 심리적 거리감이 생기면서 그것도 많이 줄어드시긴 했지만.


평소에도 전화 한 번을 안 하는 며느리가 요즘은 가볍게 밥 한 끼 사다 준다는 것까지 거절을 해대니 엄청나게 화가 나셨거나 서운하셨을지도 모르겠다. 


자동화된 무의식적 사고방식인지.. 나는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고 싫어하지 않을 말을 하기 위해 애를 쓰다가 그런 나를 발견하고 멈칫한다. 


그전에는 이런 상황이었으면 거절을 하고도 한 참을 나 혼자 죄책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려서 거기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을 치고 있었을 것 같기도 한데. 


이제는 그냥 그렇게 전화를 끊고 바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나 역시도 최근 몇 년 물리적 심리적 거리감이 생기면서 조금은 안정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걸 신경 쓰고 스트레스받아하던 과거의 내가 이상했던 거다. 


아무것도 아니야.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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