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을 끌어당기고 있었다니.
몇 년 전 일이다. 나름 이 갑갑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유명하다는 자기 계발서 한두 권 즈음 끄적이며 읽어보려고 하기도 했었다. 누구누구는 그러한 책들을 읽고 변화하기도 했다는데, 왜 나에게는 그렇게 갑갑하고 효용성 없는 잔소리처럼 느껴지는 건지.
안갯속에 갇혀있는 기분이었지만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하는 것 인지 감도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밖에 나가서 뭐라도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니,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 하는 것 이기도 했지만 당시 코로나19라는 좋은 핑곗거리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핑곗거리가 있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거나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결국 난 뭐라도 해야 하고 현실을 바꾸어야만 하니까.
어떤 책을 읽어야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도 모르는 채 막연하게 답은 찾고 싶어서 도서 목록만 뒤적거리고 있던 때였는데, '더 해빙'책이 오래 베스트셀러로 있어서 호기심 반 불신 반으로 구입을 했다.
유명하다는 책들 읽어봐야 뭐 결론은 '그러니까 뭐든 무조건 도전해 보고 열심히 하라는 것 아닌가'라는 삐딱한 마음이 있던 때였는데(그러면서 또 자꾸 기웃 거기리만 했다), 그 책은 나에게 '빚'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가지고 있는 몇 푼'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아니, 어떻게 매달 갚아나가야 할 빚이 잔뜩 있는데 거기서 내가 오늘 쓸 수 있는 고작 몇 푼에 집중하고 감사하라는 것인가. 빚에 신경을 계속 써야 빚을 갚아나갈 수 있는 거 아니야?
당시 나는 내 삶과 내 부모님의 삶을 자꾸 되돌아보고 있던 중이었다. 아버지는 돈을 많이 버는 것과 거리가 있는 생활을 하셨지만 그렇다고 살면서 엄청 큰돈이 들어가는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어머니는 뭐가 되었든 하루도 빠짐없이 일을 하셨지만 늘 대출이자에서 벗어나지 못하셨다.
그런데 어느 날 나 역시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을 깨닫고 나름 충격에 빠졌다. 처음 몇 년이야 그럴 수도 있지.. 힘들 때도 있지.. 싶었지만, 결혼생활 15년이 넘었는데 그럼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이 계속 수렁에 빠져 있는 기분이라면 그건 분명 내가 무언가를 잘못하고 있을 것.
결혼 후 단 하루도 마음의 여유 없이 전전긍긍하며 삶을 살았다. 육아에 지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조차 할 여유가 없는 날들도 많았지만 돈 걱정에 한숨 쉬는 날들도 참 많았고 그것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육아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었다.
남편이 쉴 때도 있었고 돈을 너무 조금 벌어올 때도 있었다고는 하지만 시댁에서 지원을 받기도 했고. 그래도 결혼 후 오랜 기간 동안 멀리 여행 한번 가지 못 하고 사치 한 번 하지 않고 살아왔는데 왜 삶이 이렇게까지 팍팍해야 하는 것일까.
남들처럼 맞벌이를 하지 않아서? 내가 과연 세 아이들을 기관에 맡기고 최저시급을 받기 위해 하루종일 일을 하고 와서 집안일을 해냈다면 그만큼 돈을 모을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건 아닐 것이다.
아니, 생각해 보면 과로사할지언정 우울증에 빠져 살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네.
아무튼, 여기서 뭐라도 하지 않는다면 나는 분명 우리 부모님처럼 되겠지. 혹은 더 나빠지거나. 거기까지 생각하니 무서워졌다.
뒤돌아보면 나는 늘 걱정이었고 많이 불만이었다. 직전 2~3년은 남편이 안정적인 수입이 있었지만 그 이전에는 늘 불안정했고 나는 그것에 계속 휘둘리며 감정이 요동쳤다.
한 달 내야 할 돈을 잘 내고 나면 그날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잠깐 편해졌지만 며칠 뒤부터는 또 걱정이었다. 그런 시간이 10년이 넘었는데. 그게 다 내가 '가난'을 끌어당기고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오래전 베스트셀러였던 '시크릿'과 같은 맥락이다. 예전에 그 책을 읽었을 때에도 글자를 이해는 한다고 생각했는데 말 그대로 그냥 글만 읽었었나 보다. 아니면 그저 '말도 안 돼, 가만히 앉아서 생각만 하면 이루어진다고?'라는 부정적 생각이 더 많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내가 그것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렸던가, 아님 간절함이 부족했던가, 아님 전달 방식이 나와 안 맞았던 것일까. 잘 모르겠다. 그게 뭐가 중요할까.
지금의 나는 내가 그동안 가진 것에 집중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뭐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그것이 내가 가난한 이유 중 하나는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
아쉽게도, 이런 나름의 깨달음을 얻은 것이 벌써 3년 전인데 나는 여전히 가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