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치료 02
병원 예약을 하고 기다리면서 나는 계속 무언가에 쫓기듯 불안했다. 스스로도 '이젠 정말 너무 지쳤어, 나는 도움이 필요한 상태야 그것을 인정해야 해'라고 생각을 했다가, '그냥 의지가 약한 것 아닐까 조금 더 노력하면 되는 일 아닐까?'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왔다 갔다 했다.
여러 책을 읽었고, 이런 감정 상태일 때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이 잘 안 되어서 그렇지.
나는 그동안 아주 오래도록 무엇이든 잘 못 하고 한심한 모습을 보였던 이유에 대하여 '우울증이 심해서 그렇습니다'라는 진단을 받고 싶기도 했다.
나도 열심히 했다고. 더 열심히 하고 싶었다고.
그런데 그게 잘 안 되었을 뿐이라고.
게을러서 안 한 것이 아니라고.
나 스스로 우울감과 머릿속이 시끄러운 것들, 그리고 심각해 보이는 집중력 부족으로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은 맞다.
하지만,
물론 아이 셋을 잘 키워내긴 했지만, 사회적으로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이뤄낸 것 없이 돈도 못 벌고 있는(지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긴 하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나에 대한 변명, 혹은 설명을 조금 더 합리적으로 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결국은 이것도 인정받고 싶어서 발버둥 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 안의 억울함, 미움, 불안 모두 어쩌면 대부분은 아마도 인정욕구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그런데.
막상 진단을 받았는데 다 괜찮다고 나오면 어쩌지? 그럼 그때에는 이 나이 먹도록 아무것도 이뤄낸 것 없는 이유가 단지 나의 게으름이나 한심한 것이라는 뜻인데, 그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차라리 그냥 병원을 가지 말까.
이렇게 머릿속이 시끄러우니 아무것도 못 하고 있지.
의사는 나에게 우울증 지수가 아주 높다고 했다. 현재 진행한 검사로는 거의 최고점이며, 이 병원에서 우울증으로 약물치료를 하고 있는 보통 환자들보다도 높은 편이라고 했다. 스트레스 지수도 마찬가지였으며, 사회적 불안에 관한 부분도 보통은 한쪽만 있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불안도 민감도 모두 다 높다고 했다.
나에게 "위험한 안 좋은 생각은 한 적 없나요?"라고 질문을 하기도 했다.
좋아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하루에 맥주 한 캔을 마셔야 잠이 드는 습관이 있었는데(조금 힘든 날은 두 캔), 그것도 알코올 중독이기 때문에 끊어야 한다며 수면제도 같이 처방해 주신다고 했다.
"일을 하는데 집중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사실 일 뿐만이 아니라 내 일상의 모든 부분에서 나는 집중을 하고 기억을 하는 것을 힘들어했으며, 그게 공식적인(?) 나의 문제점이었다.
의사는 이미 스트레스 등으로 나의 그릇이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뭐든 잘 못 할 수밖에 없는 상태라고 했다. 추가로 뭐든 집어넣어 봤자 다 밖으로 넘쳐흘러내릴 거라는 것.
그래도 그동안 내가 뭐든 잘 못 하던 것에 대한 합리적 이유가 생긴 것 같아서 조금은 속 시원하기도 하고, 다시 불안해지기도 한다.
그렇게 약을 먹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었다.
내 머릿속에서 시끄러운 녀석들은 언제쯤 나가게 되는 것일까. 여전히 나는 마음만 급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