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누리달 Apr 28. 2024

여기서 좀 나가줄래

우울증 치료 02


병원 예약을 하고 기다리면서 나는 계속 무언가에 쫓기듯 불안했다. 스스로도 '이젠 정말 너무 지쳤어, 나는 도움이 필요한 상태야 그것을 인정해야 해'라고 생각을 했다가, '그냥 의지가 약한 것 아닐까 조금 더 노력하면 되는 일 아닐까?'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왔다 갔다 했다.


여러 책을 읽었고, 이런 감정 상태일 때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이 잘 안 되어서 그렇지. 


나는 그동안 아주 오래도록 무엇이든 잘 못 하고 한심한 모습을 보였던 이유에 대하여 '우울증이 심해서 그렇습니다'라는 진단을 받고 싶기도 했다.


나도 열심히 했다고. 더 열심히 하고 싶었다고. 

그런데 그게 잘 안 되었을 뿐이라고. 

게을러서 안 한 것이 아니라고. 




나 스스로 우울감과 머릿속이 시끄러운 것들, 그리고 심각해 보이는 집중력 부족으로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은 맞다. 


하지만,

물론 아이 셋을 잘 키워내긴 했지만, 사회적으로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이뤄낸 것 없이 돈도 못 벌고 있는(지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긴 하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나에 대한 변명, 혹은 설명을 조금 더 합리적으로 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결국은 이것도 인정받고 싶어서 발버둥 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 안의 억울함, 미움, 불안 모두 어쩌면 대부분은 아마도 인정욕구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그런데.

막상 진단을 받았는데 다 괜찮다고 나오면 어쩌지? 그럼 그때에는 이 나이 먹도록 아무것도 이뤄낸 것 없는 이유가 단지 나의 게으름이나 한심한 것이라는 뜻인데, 그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차라리 그냥 병원을 가지 말까. 


이렇게 머릿속이 시끄러우니 아무것도 못 하고 있지. 




의사는 나에게 우울증 지수가 아주 높다고 했다. 현재 진행한 검사로는 거의 최고점이며, 이 병원에서 우울증으로 약물치료를 하고 있는 보통 환자들보다도 높은 편이라고 했다. 스트레스 지수도 마찬가지였으며, 사회적 불안에 관한 부분도 보통은 한쪽만 있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불안도 민감도 모두 다 높다고 했다. 


나에게 "위험한 안 좋은 생각은 없나요?"라고 질문을 하기도 했다. 


좋아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하루에 맥주 한 캔을 마셔야 잠이 드는 습관이 있었는데(조금 힘든 날은 두 캔), 그것도 알코올 중독이기 때문에 끊어야 한다며 수면제도 같이 처방해 주신다고 했다. 


"일을 하는데 집중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사실 뿐만이 아니라 일상의 모든 부분에서 나는 집중을 하고 기억을 하는 것을 힘들어했으며, 그게 공식적인(?) 나의 문제점이었다.


의사는 이미 스트레스 등으로 나의 그릇이 가득 있기 때문에 뭐든 수밖에 없는 상태라고 했다. 추가로 뭐든 집어넣어 봤자 밖으로 넘쳐흘러내릴 거라는 것.


그래도 그동안 내가 뭐든 잘 못 하던 것에 대한 합리적 이유가 생긴 것 같아서 조금은 속 시원하기도 하고, 다시 불안해지기도 한다. 


그렇게 약을 먹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었다. 

내 머릿속에서 시끄러운 녀석들은 언제쯤 나가게 되는 것일까. 여전히 나는 마음만 급한가 보다.



 



작가의 이전글 겨울 패딩과 비 오는 날 우산이 필요 없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