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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splay Nov 12. 2018

모두 다 사라지지는 않은 달

핑크빛에 물든 춘천의 가을, 겨울 그 사이


 옷장을 열어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하는 것은 일상이지만, 요즘 같은 모호한 계절에는 결정하기까지 시간이 배로 걸린다. 패딩을 입기에는 과하고, 트렌치코트만 입기에는 으슬으슬 춥다. 가을이라고 하기에는 쌀쌀하고, 겨울이라기에는 조금은 포근한, 이도 저도 속하지 않는 아슬아슬한 계절의 경계. 


 옷차림만큼이나 11월은 모호하다. 딱히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는, 1년 중 가장 개성 없는 달인 듯 싶다. 울긋불긋 단풍이 물든 10월과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이 가득한 12월 사이에 껴있어서 더 그렇게 느껴진다. 첫째와 막내 사이에 낀 둘째 같달까. 한 달 밖에 남지 않은 한 해를 아쉬워하듯 11월이면 허무해진다. 특히 주말을 제외하고 공식적인 휴일이 없는 황량한 11월의 달력은 마음을 더욱 쓸쓸하게 한다. 


 이 시기의 들녘에는 추수를 마친 볏짚들만 외로이 쌓여있곤 하지만, 요즘 춘천에는 새로운 풍광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람에 일렁이는 핑크빛 물결, '핑크뮬리'가 그것이다. 춘천 시내에서 소양 2교를 건너 사농동 인형극장을 지나 논밭을 달리다 보면 이국적인 핑크빛 들녘이 눈에 들어온다. 



 '핑크뮬리'는 미국에서 들어온 여러해살이 식물이다대략 9~11월 가을 시즌에 만개한다고 한다. 몇 년 전 제주도의 한 생태공원에 들여온 핑크뮬리 군락이 SNS를 통해 유명해지면서 전국 각지에 핑크뮬리 밭이 조성됐고, 이 곳 춘천의 작은 마을까지 들어오게 됐다.


 우리말로는 '분홍 쥐꼬리새'라 불리는데 가까이에서 보면 안개꽃처럼 줄기가 가늘고 꽃도 작아서 색은 물론 존재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멀리서 무리를 지어 핀 모습을 보면 핑크빛이 두드러지면서 이국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햇살이 비칠 때 선명한 핑크 빛으로 반짝이는데 그 모습이 참 예쁘다. 그 아름다움에 관광객들이 몰리고, 저마다 사진 찍기 바쁘다.  


유기농카페 입구


 춘천의 핑크뮬리 밭은 '팀 파머스'라는 농업회사법인의 '유기농카페'에서 운영 중이다. 옥수수나 고구마를 심던 2,500여 제곱미터의 밭에 봄에는 유채꽃, 여름에는 해바라기, 가을에는 핑크뮬리 등 계절에 맞게 다양한 색깔의 정원을 가꾸고 있다. 이번 가을에는 2만 5천여 본의 핑크뮬리가 장관을 이룬다.


 이렇게 가꾼 정원은 주말이면 주차요원이 나와서 안내할 정도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새로운 명소가 되었다. 단순히 밭에서 키운 농작물을 내다 파는 1차적인 생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체험과 볼거리, 놀거리를 제공하면서 농가 소득 향상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핑크뮬리 밭과 유기농카페 전경 (2018.11.10.)

 

 하지만 유행처럼 번지는 핑크뮬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유해성 검증이 안 된 외래종이라는 이유에서다. 무서운 속도로 번질 경우 황소개구리처럼 우리 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부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그래도 이 애매한 계절에, 들녘에 물든 핑크빛은 새로운 즐거움을 주긴 하나 보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마다 웃음 꽃이 활짝인 걸 보면.



 '아라파호'라는 인디언 족은 11월을 '모두 다 사라지지는 않은 달'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많은 것들이 다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한 해를 헛되게 보낸 것은 아닌지, 괜히 조바심이 드는 나에게 조금은 위로가 된다. 그리고, 새삼스럽지만 그래도 아직 시간이 남아 있음을 깨닫는다. 




 [TRAVEL TIP] 유기농카페
  춘천 신북읍에 위치한 농장형 카페. 지내 저수지를 배경으로 봄에는 유채꽃, 여름에는 해바라기, 가을에는 코스모스나 핑크뮬리 등을 심어 계절마다 다양한 색깔의 정원을 조성하고 있다. 카페 곳곳에는 손님들을 위한 배려가 돋보인다. 햇볕을 피할 수 있는 야외 파라솔은 물론, 바람을 피할 수 있는 텐트도 있다. 또, 핑크뮬리 밭의 비눗방울 기계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더욱 북돋는다. 고소한 맛의 유기농 커피가 대표 메뉴. 직접 기른 농작물로 만드는 토마토 쥬스나 단호박 쉐이크도 맛있다. 가격은 6천 원 부터.
 * 1인 1음료 필수. 음료를 주문/결제한 이후에 농장 출입이 가능하다. 사실상 입장료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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