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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센스 May 28. 2024

마라탕 먹기 싫어서 친구 안 만나는 사람

내가 바로 믿고 걸러야 하는 그 회피형인가

심리상담실에서 나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말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먼저 나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뭐냐고 물었다. 안 그래도 친구와 대화하며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미리 생각해 봤다.


친구에게 ”억눌린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선생님이 재밌다고 했다. 원래는 밝고 눈치 하나도 안 보는 성향인데, 일부러 조용하게 있고 눈치 볼 때가 있어서 그렇다고 했다. 대학생 때까지는 낯가려서 자리에만 있고 사람들하고 재미있게 못 어울렸는데 원래는 술도 잘 마시고 지금은 사람들하고 어울려서 노는 게 너무 재밌고 좋다고 했다.


그런데 부모님이 술 좋아하는 것 보고 자라서 술 많이 마시면 나중에 좋은 아내나 엄마가 못 될까 봐 거의 처음 술 마실 때부터 절제했다고 했다. 아주 가끔을 빼고는 술 마실 때 카운팅 해가면서 마시고, 폭탄주는 카운팅하기 힘드니까 거의 안 마시고, 술자리에서 딱 한두 잔만 마시려고 한다고 했다. 그리고 노는 시간이 너무 적은 것 같고, 평소에 주로 자기계발하거나 미래에 대한 준비 한다고 했다.


나의 장점은 1) 섬세하다 2) 꾸준하다 3)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 준다 가 있고, 단점은 1) 예민해서 거슬리는 것이 많다 2) 호불호가 심하다 3) 이따금씩 의도한 것은 아닌데 필터 없이 말할 때가 있다라고 했다.


주변의 변화 감지 잘하고 사람들에 대해서 관찰을 잘해서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잘 파악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뭐 하나를 시작하면 꾸준히 계속하고, 성격이 유하고 사람들을 관찰해서 성향 파악을 해서 대하려고 해서 보통 편안하게 해 준다고 했다.


선생님이 예민한 것은 단점이라고 생각 안 한다면서, 예민한 사람치고 예의 없는 사람은 못 봤다고 했다. 본인이 불편함을 많이 느끼니까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잘 안 한다고 했다. 나도 꼭 예민한 것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예민함 + 호불호가 심한 것 때문에 사람들하고 두루두루 잘 못 지내고, 평소에는 상관없는데 직장에서처럼 조직 생활 할 때는 한 명이라도 잘 못 지내는 사람 있으면 그 사람이 괴롭힐 수도 있고, 안 좋은 것 같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너무 좋고, 어떤 사람은 너무 싫다고 했더니 어떤 사람이 좋고, 어떤 사람이 싫냐고 물었다. 솔직하고 순수하고 유머러스한 사람이 좋고, 가식적이고 특별한 콘텐츠 없는데 관종끼 있으면 싫다고 했다.


원래 연애 상담을 받고 싶다고 했으니, 선생님이 그러면 솔직+순수+유머 있는 사람 만나고, 가식+관종끼 있는 사람은 안 만나면 되겠다고 했다. 그런 상담이라면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상담을 받다 보니 꼭 연애 상담이 목적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해서 잘 파악할 수 있는 기회라서 최대한 선생님의 의도와 방향대로 상담을 쭈욱 따라가고 싶었다.


베프 오빠 역시 솔직+순수+유머러스하고, 결국 마음의 상처를 심하게 입게 되었던 전남친도 그랬다. 베프 오빠는 이성적 끌림이 하나도 없고, 전남친은 할 말 안 할 말 다하고, 자기 마음에 솔직한 만큼 자기중심적이어서 그런 사람은 나와 잘 안 맞겠다 싶었다. 그때는 좋아했으니까 내가 다 맞춰주고 싶었었는데, 다시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필터 없이 말하는 부분에서 선생님이 조금 의아해했다. 예민하고 섬세하면 필터 처리를 할 것 같은데 의외라는 눈치였다. 예를 들어서 어떻게 하냐고 묻길래 최근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모임에서 어떤 동생이 보드 게임을 가져와서 몇 명이서 같이 하는데, 내가 다 세팅하기도 전에 자기는 다 준비됐으니 먼저 시작하겠다고 했다. 기준에서는 모두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 것은 예의나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이었다. 그 때 웃으면서 너무 심각하지 않게 “왜 이렇게 급해”라고 핀잔줬으면 될 것을 그 친구에게 “넌 나랑 성격 정반대인 것 같아”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 친구에 대한 생각을 너무 직접적으로 드러낸 것 같아서 좀 그랬다고 했다.


물론 그 상황에서 바로 난 준비 아직 안 됐다고 모두에게 말하기는 했고, 다른 사람이 나보고 천천히 세팅하라고 하기는 했다.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완전히 선을 긋고 고도로 회피하는 화법이라고 했다.


그전에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대처하냐는 질문에 무조건 회피한다고 답했다. 절대로 괴롭히지는 않는데, 무조건 피하려고 한다고 했다. 주변에 오면 피한다고 했다. 그러면 그 사람 입장에서는 무시당한다고 느끼고, 안 좋아한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인간관계에서 보통 문제가 시작되었던 것 같다고 했다.


어머니의 단점으로 말한 극단적이고 소통을 차단해 버리는 점이 이렇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다.


친구는 다시 사귀면 되니까 친구관계에서는 그렇게까지 문제가 안될 수도 있지만 연인 관계에서는 이런 것이 크게 문제가 된다고 했다. 연인이란 갈등이 있으면 해결해 나가고 그러면서 더 돈독해지는 것인데, 그럴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해 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공감했다. 연인 관계에서는 회피형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수많은 관계에서 연애가 시작되자마자, 또는 시작하기도 전에 문을 닫아버렸던 내 모습을 돌아보니 맞는 것도 같았다. 어떤 관계에서는 내가 본 일부의 모습에 너무나도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어서 전혀 후회나 미련이 없지만, 어떤 관계에서는 이 사람이 정말 괜찮은 사람 같았는데라며 확실히 후회하기도 했다.


아주 오래된 친구를 마라탕이 같이 먹기 싫어서 안 만난다. 꼭 마라탕이 아니라도, 친구는 그런 자극적인 류의 음식을 좋아하고 나는 정반대다^^. 마라탕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마라탕이 먹기 싫다고 도저히 말을 못 하겠다. 한 번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같이 먹어봤는데 친구 눈치가 보여서 불편했다. 그래서 그냥 식성이 잘 안 맞으니 잘 안 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섣불리 관계의 문을 닫아버리지 말고, 그 자리에서 그 사소한 하나가 싫다고 당당하게 말을 하는 연습부터 해야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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