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심하게 싸우던 날,
울면서 5년 만난 남자친구와도 헤어졌다고 말했다.
아빠는 그러면 이제 가족한테 돌아와야 하는데, 어떻게 할 거냐고 했다.
그 말이 웃겼다. 없었던 공간에 어떻게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건지 싶었다.
그래도 묘하게 그 말이 좋았다. 모르는 공간이 있는 것도 같았다.
내 마음엔 아빠의 공간이 없었는데, 아빠의 마음엔 내 공간이 있는지도 몰랐나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잘 모르는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보다는 아는 공간을 찾는 것이 편했다.
파도가 거센 바다의 한 모퉁이에 있는 것보다는 잔잔한 호수의 한가운데 있는 것이 편했다.
이제는 내 삶에 잔잔하고 따사로운 호수가 필요할 때, 혼자 그가 써줬던 편지를 읽고 차에서 같이 듣던 음악을 듣는 게 전부다.
많이 힘든 날에는 문득, 그가 있을지도 모르는 곳에 혼자 가서 멍하니 앉아있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난 지도에도 찍히지 않는 그 모르는 곳에 찾아가는 방법도 모른다.
그냥 지도를 펼쳐 그 모르는 곳과 비슷해 보이는 곳에 좌표를 찍고, 아무 택시기사님한테 그곳에 내려 달라고 해볼까 생각해 본다.
벼가 천천히 흔들리고, 문득문득 어느 할아버지가 주변을 거니는 내 고향에 좀 데려다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