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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조 Nov 14. 2019

당연한 사실: 로또를 사야 당첨이 된다

열두 번째


로또 1등에 당첨된다면? 


이 생각은 종종 불량식품처럼 즐기는 백일몽이다. 자주 하는 생각은 아니고 내가 가장 할 일도 고민할 것도 없을 때—밥을 뭐 먹을지 오늘은 무슨 책을 읽을지 청소를 할지 말지 다 결정하고 심지어 그것들을 시행에 옮기고도 시간이 남을 때만 그런 상상을 한다. 길을 걷다가 로또 명당이라는 현수막을 내다붙인 가판대를 봐서 문득 로또 생각이 났다.


로또 1등은 요즘 한 10억쯤 받던가? 사실 10억이면 큰 돈이지만 당장 일을 때려치고 놀고먹기만 하기엔 좀 빠듯한 감이 있다. 심지어 노후자금으로도 썩 만족스러울만큼 충분치는 않다. 하물며 강남권엔 아파트 하나 사기에도 부족한 금액이고…그러나 10억이면 인생이 그렇게 대단한 방향까진 아니라도 조금은 궤도를 틀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평소에 기분이 나쁠 때 떠올리면 가슴이 벅찬 행복감을 줄 수 있는, 그 정도의 기쁨말이다.


예전에 친구에게 로또 얘길 하면서 일단 한 1억정도는 단 한 번의 여행에 쓰겠다고 장황한 계획을 늘어놓은 적이 있다. 당시에 난 미국여행을 너무 가고 싶어 미쳐있을 때였다. 한 한달쯤 거기 눌러앉아 호사스러운 호텔 스위트룸을 빌리고, 당연히 왕복은 비즈니스석으로 해야지(와중에 일등석은 아닌 것이 실로 서민적인 소심함이라 할 수 있다). 맨해튼 5번가의 버그도프 굿맨과 삭스 피프스 에비뉴같은 백화점들을 순례하면서 맘에 드는 옷과 가방을 쓸어담고 식사는 미슐랭 스타가 붙은 식당에서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 달정도 석유부자처럼 살다가 와야지. 잠깐, 그런데 저 모든 것이 1억으로 감당이 되나?


있지도 않은 돈으로 주판알을 튕기는 상상은 짜릿한 부분이 있다. 어쨌든 내 돈이 아니고, 상상은 상상일 뿐이지만 잠깐 단꿈에 젖는 것도 인생의 믹스커피같은 것이니까. 그러나 그 상상의 끝이 도달하는 지점—미국에서 만수르같은 생활을 영위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인천공항에 내리는 그 지점이 되면 나는 한없이 차가운 현실감각을 되찾는다. 그리고 그 뒤에는? 남은 9억으론 평생 그런 삶을 유지할 수 없다. 그러니 분명 9억이 든 통장을 쥔 채로 꿈같은 1억짜리 여행을 영원히 그리워하며 살게 되겠지(물론 9억짜리 통장도 행복을 주긴 한다). 


오늘날 로또 1등의 복잡미묘함이란 이런 지점이 아닐까. 평생을 윤택하게 해주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라는 점. 분명 사치를 어느 정도는 즐길 수 있게 해주겠지만 그게 죽을 때까지는 아닌 애매모호한 금액. 하지만 사람은 한 번 사치를 즐기고 나면 그 뒤론 그 이하의 삶엔 만족할 수 없기 마련이다. 그러면 잘 분배해서 10억을 야금야금 나누어 평생 가늘고 길게 써야 한다는 뜻인데…그러면 로또 1등에 당첨된 상상을 하는 재미가 없어지지 않나. 상상은 역시 허무맹랑하게 스케일이 커야 제맛이다.


이런 복잡한 마음이 되어 오늘도 로또 명당을 로또 한 장 사지 않고 지나치게 될 것이다. 로또를 사겠다고 늘 마음은 먹지만 현금이 없어서, 귀찮아서, 줄이 너무 길어서 등등 여러가지 이유로 늘 로또사기를 미룬다. 그러니 당첨은 고사하고 10억은 영원히 내 것이 아닐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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