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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조 Oct 24. 2019

미국대륙횡단 기차여행기

혼자 여행하는 여성동지들을 위한 가이드

# 암트랙 미국대륙 횡단기




이 여행기는 오롯이 여성 여행자들에게 바치는, 내가 경험해보고 안전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쓰는 여행기다(남자들의 안전까진 걱정하지 않는다. 남자들은 알아서 가시던지 말던지.) 나의 오랜 꿈은 시베리아 횡단열차였는데, 내 상상 속에선 험하디 험한 러시아를 아시아인 여성으로 혼자 여행한다는 것은 생명을 반쯤 걸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포기하기엔 너무나 대륙횡단이 하고 싶었다. 그것도 꼭 침대칸에서. 왜인지는 콕 찝어 말할 수 없었지만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찬찬히 생각을 해봤다. 대륙횡단. 땅덩어리가 있으면 거길 가로지르는 운송수단인 철로가 있기 마련이니 유라시아가 아니라면 북아메리카 대륙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미대륙 횡단 열차’를 검색했고 역시나, 미국 대륙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암트랙 기차가 있었다. 조금 더 구글링을 해보니 다음 글이 걸렸다. 내가 기차여행을 결심한 계기가 된 글이다.


<혼자 기차여행하는 여자를 위한 가이드>라는 제목이 붙은 글은 암트랙의 California Zephyr노선을 타본 경험기이다. 여기에는 진한 글씨로, “당신은 기차안에서 강도를 당하거나 강간당할 위험이 거의 없다.” 고 쓰여있었다.

안전! 여성 여행자들이여, 안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 않은가. 나는 드디어 결심했다. 암트랙으로 미국 동부에서 서부로 가는 미대륙 횡단 기차여행을 말이다.


먼저 중요한 것은 일정이었다. 어느 도시에서 시작해서 어느 도시로 갈 것인지를 정해야 했다. 나는 뉴욕에 가야했고(나는 제이크 질렌할의 열렬한 팬이고 그가 마침 브로드웨이에서 연극을 하고 있었다), 또 언제나 마음속 로망이었던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를 보고싶었다. 그래서 시작은 시작은 뉴욕, 끝은 샌프란시스코가 되었다.


암트랙 사이트에서 서치를 하니 뉴욕-샌프란시스코 직통 기차는 없고 시카고에서 한번 갈아타야 했다. 노선도 여러종류가 있어서, 뉴욕-시카고로 가는 노선도 여러개중 고를 수 있었다. 내가 고른 것은 Lake shore limited로, 이리 호수와 미시건 호수를 따라 북쪽으로 치우친 노선을 따라가는 19시간정도의 노선이었다. 특별히 그 노선이어야 한다는 이유는 없었고 단지 호수를 따라간다길래 막연히 풍경이 좋겠지, 정도의 이유로 선택했다(결국 호수는 밤 사이 지나쳤는지 코빼기도 못봤지만). 그 외에도 여러 노선이 있는 걸로 안다. 원하는 노선을 아무거나 골라도 시작과 끝만 정확하면 상관없다.


다음은 좌석의 종류인데, 암트랙에는 크게 두가지 선택지가 있다. 일반 코치좌석(Coach seat)과 침대칸(Sleeper)이 그것이다. 코치좌석은 무궁화호나 KTX처럼 의자좌석을 생각하면 된다. 식사, 음료, 샤워시설등이 일절 포함되어있지 않다. 그냥 좌석만 있고, 심지어 지정석도 아니고 먼저 탄 사람이 임자다.

코치석의 풍경. 어딘지 무궁화호 생각이 난다.


침대칸은 여러 형태가 있는데, 내가 탔던 2인용 single roomette처럼 두명까지 들어갈 수 있는 곳, 또는 더 큰 세명, 네명용 bedroom도 있다. 공통적으로 침대칸은 식사, 음료, 샤워시설이 제공된다. 식사는 아침점심저녁 매 끼니 가격이 표값에 포함되어있으며, 음료는 커피와 오렌지쥬스가 침대칸 복도에 항시 구비되어있다. 샤워시설이나 화장실이 방안에 있는 형태의 침대칸도 있지만 보통 single roomette의 경우는 공용 화장실과 샤워시설을 사용한다. 2인용 침대칸을 혼자 끊으면 혼자 하나의 객실을 독차지하고 갈 수 있고, 두명이 같이 끊으면 한명은 벙커침대를 사용하면 된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두명이 이용하기엔 좀 좁고 한명이 쓰면 딱 적절했다.

2인용 single roomette. 두개의 마주보는 의자를 펴면 침대가 된다. 문이 따로 있어서 독립된 방이나 다름없다.


나는 뉴욕-시카고 구간은 코치 좌석을, 시카고-샌프란시스코 구간은 single roomette을 끊었다. 왜냐면 전자는 오후에 출발해 다음날 아침에 도착하는 비교적 가벼운 1박2일 일정이고, 후자는 52시간짜리 2박3일 일정이었기 때문이다.


의자에서 구겨져 자는 것도 하룻밤정도는 괜찮겠지 하고 갔는데 의외의 복병이 있다. 바로 코치석은 식사가 제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식당칸에서 사먹을 수도 있는데 그땐 그걸 몰랐다. 또 나중에 알고보니 식당칸에서 사먹는 식사도 만만치 않게 비쌌다. 그래서 나는 뉴욕 탑승지인 Penn station에서 산 매그놀리아 바나나푸딩으로 일박이일을 연명해야 했다. 참고로 기차에 먹을 것이나 음료를 들고 타서 자기 자리에서 먹는 것은 자유다. 술은 예외인데, 알콜 종류는 침대칸 안에서만 음용이 가능하다.


뉴욕-시카고 구간은 그래도 코치석으로 버틸만 하다. 물, 약간의 식량, 담요나 겉옷(은근히 춥다), 목배게, 읽을 책이나 볼 영화, 칫솔치약과 세면도구(화장실에서 대충 양치나 세수는 가능하다), 안대(밤에 열차 내부 불이 꺼지지 않는다) 정도를 챙기면 된다. 나는 어디서든 잘 자는 편이고, 밤이 되면 승객들이 대부분 중간역에서 내린 시점이기에 옆자리까지 두 좌석을 차지하고 편하게 자면서 갈 수 있었다.


사실 뉴욕-시카고 구간은 별로 얘기할 거리가 없다. 풍경은 옥수수밭을 정말 자주 볼 것이라는 점, 자다 깨면 거의 도착해있다는 점 정도? 유심을 가져간다면 네트워크는 거의 다 터질것이고, 와이파이도 느리지만 제공된다. 구간내내 별다른 특이한 사항은 없다. 중간중간 여러 역에서 서는데 어차피 시카고까지 쭉 갈거라면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끝도 없는 평지를 몇시간씩 보게된다.


시카고 Union station에 도착하면 아마 오전일 것이다. 나는 시카고에서 숙박하지 않고 바로 그날 샌프란시스코 행 열차를 끊었기 때문에 오후에 다시 기차를 타야했다. 그래도 중간에 서너시간정도 비는 시간이 생겨서 밥도 먹고 시내 구경을 하러가긴 했다. 만약 나처럼 당일에 바로 또 기차를 타는 경우, 그리고 침대칸을 끊은 경우 시카고 union station 내의 암트렉 라운지를 찾아가자. 라운지에서는 무료로 짐보관도 해주고 간단한 샐러드와 커피등을 제공한다. 거기 앉아서 쉬면서 기다려도 되고, 짐을 맡기고 시내구경을 좀 하다 기차시간 전에 돌아와도 된다.





이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시카고-샌프란시스코 구간이다. 내가 선택한 것은 California zephyr로, 아이오와, 콜로라도, 네바다, 유타 주 등을 지나며 로키산맥을 통과해서 캘리포니아 에머리빌까지 가는 노선이다(에머리빌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는 연결버스편이 제공된다).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지나기로 유명한 노선이라고 한다. 나는 미국 중서부의 국립공원들을 가보고싶긴 한데 운전면허도 없고, 그렇다고 운전면허가 있다 한들 렌트카를 빌려 혼자 용감하게 미국 국도를 달릴만큼 용자도 아니다. 그러니 국립공원을 여러개 통과하는 이 노선만큼 내 필요를 완벽하게 충족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52시간의 광활한 자연이라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었다.


이쯤에서 대륙횡단 열차같은 걸 혼자 타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의 종류는 아마 다음 중 하나일 것이다.

    1. 광대한 자연을 사랑한다(그러나 그걸 차로 보러갈 여력은 안 된다)

    2. 기차여행을 너무 좋아해서 오래오래 기차여행을 하고 싶다

    3. 나는 혼자 있고 싶다

    4. 내 인내심을 시험해보고 싶다

    5. 네트워크 없이 며칠 지내보고 싶다

    6. 날 찾지마라 나는 자아를 찾으러 간다


무엇이든 응원한다. 저 여섯가지 전부 충족가능하다. 나는 저 여섯가지가 조금씩 섞인 복합적인 이유에서 선택한 여행이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몹시 만족했다.


    1. 자연: 52시간동안 보이는 도시나 마을은 아마 한시간 거리도 안될 것이다.

    2. 기차여행: 52시간짜리 기차여행을 논스탑으로 즐겨보세요!

    3. 객실문만 닫으면 정말 완벽히 혼자다. 이 세상 혼자된 기분을 다 느낄 수 있다.

    4. 대체 언제쯤 도착하나??? 하고 시계를 보면 아직 멀었을 것이다.

    5. 네트워크: 찾아봐야 부질없을 것이다.

    6. 자아는 바로 내안에 있음을...



조금 더 현실적인 세부사항은 다음과 같다.



가격

이건 시기에 따라 달라 뭐라고 딱히 말할 수가 없다. Single roomette기준으로 어떤 날은 600달러 대이다가, 어떤 날은 또 800달러까지 치솟기도 한다. 예매 시기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것 같다. 나는 두달쯤 전에 끊었고 약 700달러정도였다. Single roomette은 매진되기도 하니 적당히 시기를 잘 봐서 예매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결제

암트랙 사이트에서 하면 된다. 해외결제되는 카드만 있으면 홈페이지 안내에 따라 진행하면 된다. 그리고 결제가 끝나면 메일로 티켓을 보내준다. QR코드가 있는 이 티켓을 직원에게 보여주면 된다.(따로 뽑아갈 필요는 없고, 바로바로 핸드폰으로 띄워서 보여줘도 된다.)


준비

칫솔치약, 세면도구, 겉옷(계절 불문 객실 내가 추운 편이다), 갈아입을 옷, 편한 잠옷, 슬리퍼(있으면 돌아다니기 편하다), 충전기, 책이나 영화 등 시간을 보낼만한 거리 등을 챙기면 된다. 기차 내에는 수건, 베개, 담요, 비누가 구비되어있다. 의외로 기차 내가 몹시 건조하니 인공눈물이나 로션, 립밤같은 걸 챙기면 좋다. 그리고 또 하나. 선크림을 챙겨가서 꼭 바르자. 간과하기 쉽지만 창가에 내내 앉아 해를 받으면 탄다(실제로 나는 별생각 없이 갔다가 긴팔 소매 아래 손가락부분만 탔다).



시카고 유니온 역에서 이제 출발할 시간이 됐다. 침대칸 여행자는 라운지에서 직원을 따라가면 된다. 표에 적힌 칸 번호, 방 번호를 보고 가서 맞는 칸을 찾아 들어가면 된다. 직원이 상냥하게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주니 너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참고로 짐은 공지사항으론 대략 2개의 큰 짐, 2개의 개인소지 가방을 가지고 탈 수 있다고 하는데 딱히 체크하는 것 같진 않다. 캐리어를 들고 탄다면 그대로 가지고 타서 각 칸의 화물용 선반에 올려놓으면 된다.


방에 들어가면 일단 먼저 놀란다(아니 이렇게 작다고?). 그리고 잠시 서먹하게 방과 적응하는 시간을 갖다보면 그 칸의 담당자(attendant라고 칭한다)가 칸마다 인사를 하러 올것이다. 담당자는 보통 그 칸의 청소나 여러 편의를 담당한다. 저녁 9시 전후로 침대를 준비해주는 것도 담당자의 몫이다. 그 외에 모르는 것이 있으면 편하게 물어도 된다.


짐을 대충 풀고 방에 앉아 끝도없는 옥수수밭을 감상하다보면 슬슬 기차여행의 감이 온다. 그리고 곧 방송으로 식당칸 담당자가 저녁 예약을 받는다는 공지를 할 것이다. 그러면 그의 안내에 따라 저녁식사 시간을 예약하면 된다. 저녁식사는 예약제로만 진행하고, 아침점심은 그냥 정해진 시간에 식당칸에 가면 선착순으로 착석시켜준다. 저녁식사는 시간이 5시, 5시 반, 7시 이런식으로 선택지가 있고 원하는 시간을 예약하면 되는 방식이다. 아마 식당칸 담당자가 돌아다니며 직접 예약을 받을테니 굳이 식당칸까지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 담당자에게 예약하면 시간을 적은 표를 줄것이고, 그걸 들고 정해진 시간에 식당칸으로 찾아가 저녁을 먹으면 된다.


식사

아침, 점심, 저녁은 메뉴가 몇가지 선택권이 있다. 그 중 먹고 싶은걸 뭐든 골라도 된다. 알콜을 제외하면 다 표값에 이미 포함된 것으로 돈을 더 안내도 된다. 식사는 어떤 메뉴를 골라도 평균이상은 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밥을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식당칸이 4명단위로 앉게끔 되어있고, 절대 혼자 앉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생판 모르는 남과 무조건 동석을 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아마 90프로의 확률로 동석자는 은퇴한(즉, 더 싸고 빠른 비행기 대신 기차여행을 할만큼 시간이 넉넉한) 미국인 노부부일 확률이 높다. 의외로 미국 외의 외국인은 많지 않았다. 앉기 무섭게 인사와 자기소개, 출발도시와 내리는 역으로 시작하는 스몰토크의 굴레에 접어들게 되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가면 좋다. 그래도 대체로 사람들은 친절하고, 어차피 밥먹으며 할일도 없는데다 수다떨다보면 한시간이 지나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결국 당신의 건강, 커리어, 가족의 안녕까지 빌어주고야 식사를 끝낼 것이다. 조용히 입다물고 있기란 불가능하니 그냥 같이 그들의 안녕을 빌어주자.


사실 스몰토크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으로 과묵하게 자라와서, 대체 그런 식의 친밀함을 흉내내는 게 처음엔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그러나 기차여행이 계속되고 그런 식사자리를 반복하면서 친밀함을 흉내내는 것으로도 정말 친밀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식당칸이 아니라면 누군가와 만나 이야기를 할 일 자체가 없는 여행이다보니 더 그렇기도 했다. 가끔 외로울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느낌을 거의 못 받은 것도 아마 식사시간 덕분이었지 않을까 싶다. 언제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나눠보겠나.

만약 그래도 스몰토크고 뭐고 정 싫으면 그냥 식사를 안해도 상관없긴 하다. 그래도 식사는 맛있으니 먹기 위해서라도 식당칸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첫날 저녁을 먹고 밤이 되면 담당자가 침대를 펴줄 것이다. 의자를 쭉 밀면 두개가 연결되며 침대가 되는 형태로, 그 위에 매트리스를 깔아준다. 그러면 거기 누워서 잠을 청하려고 노력하면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기차 흔들림이 좀 요람같은 느낌이라 잘 잤는데 얘기 들어보니 잠을 설쳤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마 개인차에 따라 다를 것 같다.


흔들림

이것은 중요하다. 기차여행 내내 승차감이 몹시 안좋을 것이기 때문에, 만약 기차 멀미를 한다면 여행자체를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멀미약을 지참하거나 하는 대비가 필요할 수도 있다. 기차는 매우 흔들려서 똑바로 서있기가 어려운 정도다. 그 와중에 씻고 화장실가고 샤워하고 밥먹고 자고 다 해야한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정도 승차감이라 생각하면 된다.


객실의 불을 끄고 누우면 어두운 밖에 별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방 불을 끄고 밖을 보는 시간이 좋았다. 그러다 잠들어서 새벽에 깨면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간에 여전히 하늘엔 별이 총총하고, 희끄무레하게 보이는 들판이 밤의 어둠 속에 끝도 없이 펼쳐진 풍경이 보인다. 그러면 해가 뜰 때까지 하염없이 창밖만 봤다. 기차가 떠나온 동쪽에서부터 타는 것같은 해가 떠오르고 하늘이 어슴푸레해질 때까지. 그걸 보기 위해 일찍 일어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침대는 아침에 다시 담당자가 의자로 돌려놔준다. 아침식사는 보통 6시쯤 시작하는데, 방송으로 전날 밤 시간을 알려주니 잘 귀기울이고 있자. 아침과 점심은 시간 맞춰 일찍 가서 먼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좋다. 보통 아침 점심시간엔 식당칸이 미어터진다. 밥을 먹고, 나머지 시간엔 풍경을 감상하며 느긋하게 기차여행을 즐기면 된다.


샤워

만약 뉴욕에서 출발했다면 분명 샤워를 해야할 타이밍이 한번은 온다. 드라이샴푸를 가져가는 것도 추천하는 바이지만, 물로 샤워하고싶다면 샤워실로 가는 것도 괜찮다. 흔들리면서 샤워실 벽에 사정없이 부딪히긴 하겠지만 따뜻한 물도 나오고 깨끗한 수건도 있다. 다만 헤어드라이기는 없으니 고려할 것.




이렇게 이박삼일이 흘러간다. 별것 없지만, 여기 적은 것은 그저 기초적인 정보일 뿐 여행하는 본인이 어떤 여행을 할지는 전부 스스로의 선택이다. 풍경만 온전히 감상하며 갈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영화를 볼 수도, 음악을 들을 수도, 경적소리에 다만 귀를 기울일 수도, 일기를 쓸 수도, 무언가 고민하며 갈 수도 있다. 가장 개인적이고 내밀한 시간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것만은 확언할 수 있다. 그러니 좋아하는 것을 챙기자. 재미있는 책, 좋아하는 영화, 즐겨듣는 음악,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몸만 타도 좋다. 무엇을 해도 자기 자신과 함께 하게 될 것이다.


여자여서 혼자 먼 길을 떠나는 것이 무섭다면 기차여행은 좋은 선택지이다. 일단 미대륙 횡단열차는 안전하고, 객실의 보안은 철저하다. 담당자가 상주하고 각 역마다 경찰도 따로 딸려있다. 객실 안에는 잠금쇠가 있어서 잘땐 잠그고 잘 수 있다. 물건을 도난당하는 일도 없다. 아마 보면 알겠지만 지갑이나 핸드폰, 노트북을 아무렇게나 놓고다니기도 한다. 그러니 걱정은 좀 덜어도 좋다.


기차가 종착역인 에머리빌에 도착하면 거기서 내려 샌프란시스코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로 갈아타면 된다. 역을 나오면 바로 앞에 버스가 기다리고 있고, 다시 거기에 짐을 싣고 표를 보여주면 목적지까지 데려다준다. Fisherman's wharf(pier39), Financial district등 처음 표를 살때 정한 목적지에 도착하면 기사가 여기가 어딘지 알려주니 듣고 자기 목적지에 내리면 된다. 그러면 여행은 끝나는 것이다.


한평도 안되는 작은 골방에 앉아서 광막한 땅을 여행하는 일, 그런 아이러니한 여행이 바로 대륙횡단 기차여행이다. 혼자지만 혼자가 아니고, 아주 많은 것을 보게 되겠지만 여행 후 말할 것은 그리 많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 기차 안에서 보낸 시간은 오로지 나만의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누구와도 나누지 않은 오로지 나만의 시간이 남는다. 52시간은 평생에서 짧은 시간이지만 그 기억마저 짧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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