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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조 Nov 01. 2019

소비의 고단함

첫 번째


<굿바이 쇼핑(Not Buying It)>을 열심히 읽었다.


직관적인 제목대로 이 책은 일 년 동안 생필품을 제외한 쇼핑을 스스로 금한 작가 주디스 러바인의 개인적 경험담을 담고 있다. 물론 작가의 결단과 우직함에 찬사를 보내는 바이지만, 나로 말하자면, 나는 절대 그런 극단적 반소비주의를 시도할 만큼 스스로를 과신하진 않는다. 러바인은 책이나 영화에조차 돈을 지불하지 않기로 결심했는데, 만약 내가 그런 규칙을 지켜야 한다면 사흘 내로 자살이나 그 비슷한 조치를 취하고 말 것이다. 넷플릭스, 왓챠, 신문, 애플뮤직, 그리고 저스트 댄스로 이루어진 내 엔터테인먼트 구독 리스트는 더 이상 뺄 것이 없다. 나는 한 달에 평균 여섯 번 이상 영화관에 간다. 책은-말해 무엇하나. 이런 것들은 내게 필수재이다. 그 누구도, 심지어 가장 고상한 민주주의 정신조차 내가 이것들을 즐기는 것을 방해할 순 없다.


이 책은 절판되어 중고로만 구할 수 있는데, 제목과 취지에 어울리게도 1200원이라는 염가에 구매할 수 있었다(배송비가 2500원이었던 것은 논하지 말기로 하자). 이 얼마나 현명한 소비인가. 자찬하며 책을 열심히 읽기 시작한 것이 9월 말이었고 마침 10월로 넘어가기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4분기를 맞이하며 할 법한 새로운 다짐을 찾던 시기에 잘 맞물렸다.

쓸데없는 소비를 되도록 줄이자!


훌륭하다. 소비주의에 쿨한 이별을 고하고 나면 좀 더 정신적인-소위 말하는 성숙한 민주주의의 시민이 되는-것에 집중할 수 있을 거라는 그런 거창한 다짐은 아니었다. 그냥, 조만간 큰돈이 들어갈 곳이 생겼고, 마침 나는 옷과 신발과 온갖 잡동사니를 사들이는 것에 아주 지쳐있었을 뿐이었다.


소비. 나는 돈 쓰는 일을 사랑한다. 평균적인 사람들보다 조금 더(정확히는 많이) 좋아하는 편이다. 가장 애호하는 품목은 옷과 신발, 그리고 책이다. 대표적으로 부동산을 잡아먹는 품목들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는 그리 크지 않은 집에서 그것들에게 아주 많은 자리를 내주며 살고 있다. 사실 모든 것이 이미 포화상태라는 걸 인정한 것도 최근의 일이다. 책장을 새로 사고 신발장을 더 촘촘히 채우는 식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다. 그걸 인정하고 나니 슬슬 소비를 줄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나는 너무 많은 일에 빠른 피로를 느낀다. 그중에는 돈 쓰는 일도 당연히 포함된다. 내 근력은 이제 내리막을 타고 있고 인내심은 더 가파르게 추락하고 있다. 물건을 세심하게 고르는 것은 아주 피곤한 일이고 그 피로가 싫어 대충 물건을 고르고 나면 남는 것은 처치곤란의 못생기고 쓸모없는 물건뿐이다. 그건 피곤함보다도 더 견딜 수 없다. 더 예쁜 것, 더 내 이상에 가까운 것, 더 재밌는 것을 찾아내야 한다. 가격도 적당해야 하고. 돈을 지불하고 물건이나 서비스를 사는 것은 고도의 전략을 요하는 일이다. 가끔은 그 일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다른 일들은 사소하게만 느껴질 정도로.


못 생긴 물건들과 함께 사는 것과, 예쁜 것을 사기 위해 많은 시간을 열심히 일하는 것 중에 무엇이 더 나쁜지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러니 아예 물건을 사지 않으면 그 딜레마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한 번 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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