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간밤엔 또 악몽을 꿨다. 나는 시험과 관련된 오래된 악몽을 가지고 있다. 꿈속에서 나는 아주 큰 시험, 내 운명이 달렸을 만큼 대단한 시험을 보러 간다. 그러나 시험지를 펼치는데 분명 자신 있었던 과목임에도 푸는데 이상하리만치 오랜 시간이 걸린다. 답안지를 마킹하려 할 때 시험 종료 벨이 울리고 나는 등이 식은땀으로 흥건한 채 이도 저도 못하고 멍하니 앉아있는다. 이런 꿈을 시험을 앞두면 랜덤으로 꾸곤 한다. 깨어나면 '프로이트도 코웃음 칠 개꿈이다, 하!' 하고 자조하지만 악몽은 이제 필수교육과정을 졸업한 후에도 나를 여전히 괴롭힌다.
역시나, 오래간만에 어학시험을 보러 가기 전날 밤에도 악몽을 꿨다. 한밤중에 깨서 프로이트에게 가운데 손가락이라도 치켜주고 싶은 찝찝한 기분이 됐다. 대체 시험은 왜 끊이지 않는지, 왜 세상 사람들은 그토록 점수와 증명을 좋아하는지 맘속으로 저주하다가 도로 잠이 들었다. 시험이 너무 싫다!
나는 남들보다 시험복이 많다고 자부한다. 여기서 시험복이란 시험을 잘 치는 복이 아니라 그저 시험이 인구집단 평균보다 자주 있었다는 뜻이다. 온갖 시험을 다 본다. 오지선다, 서술형, 단답형, 종이 시험, 컴퓨터로 보는 시험, 세상엔 시험이 많기도 많다. 어떤 것은 덜 중요하고 어떤 것은 인생경로를 가를 만큼 중요하다. 그러나 내가 잘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는 점에서 모든 시험은 거기서 거기다. 시험은 본질적으로 성과의 문제고 어디까지나 문제는 혼자 힘으로 풀어내야 하지만 경쟁은 다 함께 한다는 아이러니를 가진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시험의 미덕이 하나 있다면 거기엔 답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점수를 매기는 기준이 있고 그 기준은 확고하게 정해져 있다. 세상에 그런 정교한 설계란 흔하지 않다는 걸 점점 깨닫게 될수록 차라리 인생이 일련의 시험이기를, 정답이 어딘가엔 존재하기를 바라게 된다. 그러나 세상만사는 시험처럼 명확한 답이 있지도 않고 심지어는 질문이 무엇인지조차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 점이 종종 시험복에 겨운 나를 미치게 만든다.
비록 빵점을 맞을지언정 가끔은 매일매일이 그냥 몇 장의 시험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공부한 것들의 안전한 경계 내에서 출제되는 오지선다였다면 편했을 텐데 그렇지 않아 나는 매번 열등생이 되는 기분이다. 오랜만에 시험을 치러가서 다섯 개의 답 가지들을 보는 동안 문득 내가 시험을 마음 깊이 그리워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앞으로 있을 수많은 시험들을 생각하면 역시 미리 공부할 범위가 없는 인생이 더 낫지 싶은 마음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