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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e Jun 07. 2021

바쁜 달, 한 달

직장인의 한 달 살기

한 달 살기를 한다고 하자 친구들은 대부분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좋겠다"

혹은

"공기 좋은 데서 잘 쉬고 와"


라는 반응이 다수였다.


여기에서 1)의 반응은 맞지만 2)는 사실과 다르거나 틀렸다.


영월에 사는 것=퇴사가 아니고, 나는 영월에 살면서 원래 회사 일을 그대로 하는 직장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새로운 공간에서 일을 하려다 보니 기존 생활보다 더 일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여기 와서 내 주요 일상을 보면


5:30 기상 후 업무 이메일 처리, 업무 관련 뉴스 클리핑

6:30 (날씨가 허락하면) 운동, 아니면 유튜브나 영상 시청

8:00 아침 준비

8:30 아침 식사

9:30 업무 - 하면서 빨래해서 야외에 널기, 설거지 하기, 청소하기 등등

12:30 점심 식사 준비

13:30 점심 식사

14:00 점심 식사 정리

15:00  업무 처리, 전화 통화

16:00 휴식, 기사 확인, 남은 통화나 메시지 관리

17:30 저녁 식사 준비

19:00 저녁 식사

20:00 치우고 산책


우선 매일 새벽부터 오전에는 나도 현업의 일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자유롭지 못한 몸이다. (물론 다행스럽게도 지금 바쁘지 않은 시기라 오프를 쓰긴 쓴다) 집안일을 하면서도 옆의 노트북이나 전화는 계속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업무와 퇴근이 명확히 구분되진 않는다.


집안일도 내 공간이 아닌 곳에서 뿌리를 내리려니 평소보다 곱절의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빨래를 공용 세탁기를 이용해 야외에 널다 보니 날이 좋을 것 같으면 아침부터 부리나케 빨래를 정리해 돌려 야외에 널어야 한다. 읍내에 세탁방은 있지만, 그러면 두 시간은 꼼짝없이 거기에 메여야 하니 한 번 해보고 번거로워서 친환경 '태양광' 건조를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또 너무 늦게까지 걸어놓으면 풀벌레가 끼고, 강의 습기를 머금기 때문에 반나절 이상 넓러 놓으면 안 된다. 계속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신경을 써야 한다.



벌레는 또 왜 이렇게 많은지. 맨입에 거미줄은 치지 않을 수 있어도 시골집에는 매일 거미줄이 쳐진다. 사실 거미가 있어야 파리나 잔 벌레들이 안 들어온다고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부엌이나 집안 거미줄을 그대로 놓고 볼 수는 없으니까. 반나절 귀찮아서 치우지 않으면 그 거미줄들이 점점 커지고 커져 거의 비단 마냥 촘촘하게 쳐진다. 지금 살고 있는 펜션은 나무로 되어 있어 군데군데 틈이 있는데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거미줄을 최소 집안 -부터 해서 올라오는 문, 계단 초입까지는 정리하려고 하는데 매일 두, 세 번 확인해도 거미줄은 또, 쳐져 있다. 거미뿐 아니다. 파리도 왜 이렇게 많은 걸까. 나는 파리는 더러운 곳, 이를테면 쓰레기통이나 부패된 오염물질이 있는 곳에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 집안 곳곳에 파리가 날린다. 강가라 그런가? 공기를 바꾸려고 문을 살짝 열어놓기만 해도 파리가 줄줄이 들어와 부비며 성가시게 한다.


식재료 장을 한 번 보려고 해도 편의점이 10분, 장은 그보다 더 먼 읍내에서 '압축적'으로 봐야 한다. 가끔 뭐 하나 빠뜨리고 돌아올 때면 그렇게 짜증이 날 수가 없다. 뭔가 많이 사려는 게 아니라 물이 떨어졌거나, 계란, 두부 같은 것을 사려고 해도 시간과 품을 꽤 들어야 하는 '일'이 되는 거다.



게다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인 남타커, 남이 타주는 커피도 여기서는 사치일 수 있다. 서울에서 발에 치이는 별다방부터 각종 프랜차이즈는 없고, 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데 그 마저도 일찍 닫는다.


영월에 와서 놀란 건 많은 음식점, 카페가 다 일찍 닫는다는 점이었다. 식당은 대부분 7시, 카페도 그 사이에 닫는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수칙을 너무 잘 준수하는 거 아니냐, 하며 농담 삼아 친구들한테 메시지를 보내지만 정말 7시가 넘으면 어디 딱히 가 곳도 없고 할 것도 없고, 정말 밥 하기 귀찮아서 뭐라도 먹을까 하고 6시쯤 시계를 보면 갈 곳을 찾기가 어렵다.


업무를 좀 빨리 마치고 나가려고 해도 가끔 식당에 전화를 하면 왜 이렇게 '재료 소진'이 빠른 건지. 영월에 인구가 그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물론 이렇게 써놓으니 여기 생활에 불만투성이인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생활인으로 재택 하면 서울 집에서도 비슷하게 힘든 건 마찬가지다. 다만 사람들이 여기 와서 일하는 걸 '신선놀음'이라고 오해하는 게 조금 서운하기도 하고. (나도 힘들다!)


힘든 건 힘든 거지만, 그래도 새벽에 나가 '내가 내린 커피' 한 잔 들고 강을 바라보며 이메일을 처리하는 것은 도시에서는 누릴 수 없는 호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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