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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e Jun 06. 2021

달에는 나물이 있을까

늦은 나물 입덕기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도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영월을?”

친구들에게 영월 한 달 살기를 통보하니 나온 반응이다.

친구들의 반응


내 삶의 녹색은 카페테리아의 샐러드, 도시에 구획된 공원의 작은 나무들이 전부였는데 그런 내가 갑자기 첩첩산중, 한반도의 중부내륙 – 어쩌면 오지라고도 할 수 있는 영월에?


내 녹색의 동기는 굉장히 뜬금없는 ‘먹고사니즘’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먹는 것이 삶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해준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이 “밥 먹었냐”가 인사인 것처럼. 먹고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그렇게 곁을 내주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노력과 정성이 필요한 일이고 그 과정을 보내면서 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


원래 입맛은 전형적인 도시의 초등학생, 거기에 약간의 서양 영향을 받은 그런 식이었다. 당연히 비건은 아니었고 밥과 국물은 잘 안 먹고, 파스타나 고기, 그리고 나물보다는 생채소 샐러드 – 서양 허브 종류를 더 좋아한다. 원래는 고기’만’ 먹어도 되는 줄 알았는데 나이를 한 두 살 먹다 보니 채소가 없으니 속이 영 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샐러드를 의무적으로 ‘살기 위해’ 먹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꽤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하루에 채소 5종류는 자의적인 ‘강박’에 의해 먹는다.

 다만 집 앞 3분 거리에 있는 재래시장보다는 대형 마트의 온라인 서비스나 스마트팜, 혹은 농장에 전화해 바질을 사고 루꼴라를 먹고, 딜과 타임, 오레가노, 파슬리를 집에 사다 놓고 먹는 게 차이라면 차이랄까. 집에 간장은 없지만 폰즈 소스는 있고 된장은 없지만 발사믹은 종류별로 챙겨 놓는 그런 전형적인 도시의 회색 인간이었다. 이런 내가 대형 마트는커녕 읍내 장을 가야 하는 영월에? (물론 영월에서도 충분히 장을 볼 수 있고, 제천이나 원주에 가면 마트가 다 있다.)


시작은 나물이었다.

‘나물’ 하면 물커덩, 흐물흐물하고 간장+참기름+마늘 다진 것으로 버무려져서 뭔가 이도 저도 아닌 그런 맛이라는 생각을 했다. 엄마가 주면 먹지만, 굳이 내가 챙겨 먹어야 하나?


한식과 대척점을 두던 입맛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건 국내 여행을 조금씩 해보면 서다. 사실 여행=비행기를 타고 나가는 것, 이라는 생각이 컸고 스무 살 초중반부터 해외를 오가며 살다 보니 국내에서 안 가본 곳이 더 많았다.

코로나에 의해 강제로 한반도 섬 생활이 길어지니까 국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게 됐다. 처음에는 유명한 베이커리, 외곽의 큰 카페를 찾아다녔다. 집에서도 안 먹는 산채 비빔밥, 된장, 청국장을 굳이?

그러다가 저점 내가 먹는 음식만 찾아다니는 것에 질리기도 하고, 그 찾는 수고로움을 더는 견디기가 힘들어서 소위 말하는 향토 맛집에 내 마음과 입을 열기 시작했다.


냉장고에 남아있던 남은 제사용 나물의 물커덩함과는 다른 신선한 맛들이 재밌었고, 발사믹 비네거의 섬세한 맛들처럼 한식의 장에서도 다양하고 세밀한 맛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처음 맡아본 냉이에서는 봄의 알싸하면서 싱그러움이 담겨있었고, 달래는 식욕의 부스터인 건지, 달래만 들어가면 먹는 양이 배가 되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 '나물'을 사본 강화도

취미가 또 요리라 먹은 것들을 이것저것 따라 하더니 국내여행 두어 달 만에 나물을 농장 ‘직구’하는 지경까지 올랐다. 특히 작년에 감자와 아스파라거스로 대란이었던 강원마트에서 올해는 나물을 팔기 시작했다. 곰취, 곤드레, 두릅, 눈개승마? 같이 나와는 거리가 좀 있거나 (급식에서 취나물을 먹을 때 코 막고 꿀꺼덕 삼킨 기억들 다들 있지 않나) 아예 처음 보는 것들 (어수리와 눈개승마는 도대체 뭐지, 맛이 상상되지 않는다), 그리고 텔레비전에서 보던 것들 (한국인의 밥상이랑 여섯 시 내 고향에서 강원도편을 보면 곤드레는 꼭 나오고 봄만 되면 다들 그렇게 두릅을 튀겨먹더라)이 구매 가능 목록에 올라와있었고, 맥시멀 리스트인 나는 모조리 사봤다. 나는 세상에, 나물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고기 1kg과 나물의 1kg은 그 부피가 달랐고, 1인 가구가 나물 1kg을 먹기에는 영겁의 세월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나물을 산지에 가면 직접 뜯어볼 수 있지 않을까?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예쁜 라탄 바구니에 조금씩 담아온 나물을 조물조물 먹는 삶.


영월에는 5일장도 있고, 산이 지척이니 거기 가면 내가 온라인으로 보던 나물이 라이브러리처럼 차곡차곡 다 정리되어 있을 ‘줄만’ 알았다. 영월에서 시장을 가면 도시에서 간간히 열리는 파머스 마켓이나 마르쉐처럼 예쁘게 정리되고 다듬어진 나물들이 크래프트지나 예쁜 포장에 담겨 팔리고 있겠지.


이 환상이 깨진 건 첫 5일장에서였다. 영월에 도착하고 나서 일주일 정도 지나서였나. 5일장을 갔다. 첫 답사 때는 늦게 가서 부꾸미와 전병에 그쳤지만, 그날은 뭔가 많은 것을 사겠다는 굳건하고 결연한 의지를 담아, 서울에서 고심해서 사온 에코 메쉬백 두 개를 들쳐 메고 장에 갔다.



이른 시간에 갔지만, 내 장보기는 더 이르게 끝났다. 살 게 없었다.


내가 아는 나물들의 대부분은 초봄부터 나오는데, 5월 말은 이미 봄의 끝자락이다 보니 시장에는 나물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정말 필요한 건 대동소이해서 특이한 나물보다는 무, 배추, 양파, 마늘, 이런 것들이 주요 품목이었다. 오히려 온라인 마트에서 한 자리에 모은 것들이 더 종류는 다양한 것 같았다. 여름이 다가오다 보니 시장 매대의 나물의 놓여있었을 법한 자리에는 기다란 마늘종이 켜켜이 누워있었다.


또 하나의 변수는, 과연 사람들은 나물을 사 먹을까? 였다.

나물 입문 초반에 내가 쑥을 어디서 사야 하냐고 하자, 주변 친구/혹은 요리 선배인 동네 언니들은 “그거 북한산 초입 가서 캐다 먹어”라는 반응이었다. 내가, 나물을, 캘 수 있다고?


생각해보면 우리가 먹는 나물들은 다 산에서 자라고, 산에 올라갈 체력과 나물을 구분할 수 있는 눈썰미만 있다면 – 굳이 나물을 사 먹기보단 필요할 때 산을 찾아 캐다 먹으면 되는 일이었다.


영월에 와서 이 산, 저 산을 (차 타고) 돌아다니면서 생물 교과서에 담긴 고생대 식물 그림과 똑같은 고사리가 지천에서 자라고 있었고, 늦은 봄이라 이미 억세 졌지만, 쑥도 꽤 보였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명이나물은 산마늘이니 산 어딘가에 자라고 있겠지.

군청에서 주신 말린 곤드레로 태어나서 첫 나물.


그렇게 영월! 나물! 을 외치며 왔건만, 식당의 밑반찬을 빼고는 나물을 보지 못하다니. 게다가 이미 시간도 지나서 나물은 다 억세서 먹을 수가 없는데, 내년에 또 와야 하나.


나물을 찾다 보면서 배운 게 하나 있다. 모든 건 다 때가 있다는 것이다.

인생을 체크리스트처럼 살면서 “나는 – 해야 해”라고 몰아붙이더라도, 지금 나물을 찾는 내 모습처럼 한여름에 노지 두릅을 캐러다닐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적절한 때를 알고 그때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삶. 짧은 봄과 함께 사라지는 나물은 나한테 그런 ‘때’의 중요성을 알려줬다.


(+) 여전히 나물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은 죽질 않아, 오늘은 영월에서 나물 수업으로 유명한 산사에서 1일 템플스테이를 하러 간다. 나물 말고도 여러 채소를 다루는 법을 배우기 위해 사찰음식 요리 수업을 등록했다. 때는 놓쳤지만, 다음에 다시 나물의 ‘타이밍’을 맞이하면,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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