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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한 Dec 20. 2023

자아성찰할 시간이 없어요.



나이가 먹는다고 해서 통찰력이 엄청나게 늘어나는 것도 현명해지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매일 출근하고 퇴근하고 자고 - 하루에 12시간을 자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다! - 다시 또 머리를 쓰고. 그런 매일이 계속되고 있다.



스스로를 들여다볼 시간이 없으니 나라는 사람의 뿌리가 단단해질 수가 없다. 

기운이 쭈욱 빠진다 - 당장 앞에 있는 데이터들을 쳐내는 것만으로도 급급한데 지금 자아성찰이고 뭐 할 시간이 어딨단 말인가. 쉬는 날에는 푹 쉬어야 한다.

요새는 글 쓰는 사람들이 전업인 이유를 알 것 같다. 뇌를 쉬게 해 줘야 새로운 아이디어와 통찰이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라는 거센 바람, 사람들의 시선이라는 폭풍에서 살아야 하는 부가 퀘스트가 있다. 이 부가퀘스트를 해결하려면 자아성찰을 해야 하는데.... 방구석 호랑이였던 시절에는 만나는 사람은 정해져 있고 대부분 온라인으로 업무를 처리했으니 성찰할 시간도 스스로를 들여다볼 시간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방구석 호랑이에서.... 종이호랑이가 된 것 같다. 끊임없이 스스로의 능력과 존재에 대해서 의심하게 된다.



근데 사실 스스로의 대해서 의심한다고 해서, 뭘 할 수 있느냐. 물어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어차피 죽지 않는 이상 계속 굴러가야 한다. 닳고 없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도 그냥 굴러가야 한다. 죽기 전까지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롭고 싶다고 생각해도 내가 능력이 어마어마하게 뛰어난 사람이 아니면 그 조차 힘들 거고 보통의 사람들은 그렇게 뛰어난 사람이 되기 힘들다. 

고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능력치를 최대한으로 끌어당기거나 아니면 종이호랑이의 프라이드를 갖고 사는 수밖에 없다. 종이호랑이도 종이호랑이로 열심히 살고 있다! 호랑이가 될 날이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이호랑이만의 소소한 행복과 프라이드를 소중하게 지키면서 살아가야 - 그나마 살아갈 수 있겠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속한 세계가 다른 사람의 노력을 함부로 비웃지 않고 적당한 거리감을 지키는 곳이라는 것이다. 너무 가까워서 실망하거나 상처받을 일도 없고 내 일만 열심히 하면 되니까. 

지난 몇 년간 인간관계라는 부질없는 것으로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고 멍청한 짓을 반복했나 생각해 보고 - 그 인간관계들이 살아있냐고 물어보면 그것도 아니다. 계속 스스로 그 시간들이 쓸데없지 않았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마음속 깊은 곳의 나는 알고 있다. 그 시간들은 아주 쓸데없는 짓이었다. 인정하기까지 아직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천천히 연착륙하듯이. 인정하는 날이 올 거고 - 나이가 좀 더 먹으면 그 시간들의 교훈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종이호랑이는 종이호랑이의 행복을 찾으려고 열심히 노력해야지.

분명 어딘가에 있겠지.




*



아니 근데, 이런데 어떻게 애를 낳고 집안일을 하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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