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는 귀로만 소음을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란 것을 배우고 있다.
커뮤니티를 좋아하진 않지만 가끔 정보를 구하려고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는 아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드는 글이 많다. 서로 소리로 의사표현을 해야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글이 더 심하다. 흘러가버리는 말 대신 조금이라도 튀어나온 가시에 죽일 듯이 달려드는 것이 가능하고 말하는 사람들에 비해 글을 쓰는 사람들은 자기가 꽤나 배운 사람 또는 옳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논쟁은 끊임이 없다.
소음의 시대에 조금은 외로운 기분이 든다. 사람들은 더 이상 통찰에 대해서 큰 관심이 없다는 안타까움. 별로 인생에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저렇게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에게 죽일 듯이 달려들어야 한다는 고통. 아무리 눈으로 구경하는 것이라지만 여기에 계속 발을 담갔다가는 나 역시 저런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사회 전체적으로 사람들이 하는 말은 똑같고 날이 서있다는 것을 느낀다. 사람들에게 여유가 없기 때문에 남에게도 여유가 없는 것 같다.
그러는 나 조차도 어쩌면 이 글이 하나의 소음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듣는 사람은 없는데 확성기를 켜놓고 계속 말하는 꼴은 사실, 그리스도를 믿읍시다 하면서 명동에서 확성기를 켜는 것과 별반 다른 것이 없다. 그러기에 점점 글을 쓰는 것도 말을 하는 것도 많이 망설여진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글에 냉소적인데 어떻게 내 글에 냉소적이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쓰면서도 나 역시 세상을 향해 하나의 쓰레기를 던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니.
지금 당장 머릿속에 들어오는 성찰을 형태로 남기기 위해서 글을 쓰긴 하지만 어쩌면 내 성찰들은 내 머릿속에서 - 내 입속에 있을 때 가장 큰 성찰이 되는 걸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굳이 이 소음의 시대에 내가 소음 하나를 얹을 필요가 있을까? 너무나 쉽게 찍어내는 매체 속에서 예전보다 더 양질의 무엇인가를 건지기는 힘들어진 것 같다. 세상은 팔리는 것을 만들고 팔리는 것을 만들기 위해 짜깁기 하기 바쁘다. 짜깁기 한 -그러니까 우라까이 한 - 것들은 점점 본질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우라까이 한 것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어떻게 양질의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단 말인가?
근데 사실은 그렇게 치면, 모든 역사는 각색과 첨언을 통해서 발전해 왔다. 내가 짜깁기 하네.라고 말하는 책들 조차 원래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이것은 내가 공대에 맨 처음 들어갔을 때 교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이다. 이미 개발해서 망했거나, 아니면 남이 개발했거나 둘 뿐이라고. 나 역시 내가 새로운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 생각조차 남들이 한 번쯤은 해봤을 생각일 것이다.
그렇게 치면 나는 이제 정말로 - 받아들여야 하는 때가 온 것 같다. 사실 본질보다 중요한 것은 포장하는 능력이라고. 내가 글을 쓰는 것조차 사실은 포장하는 스킬에 지나지 않으며 그 포장이 어설프거나 사람들의 마음에 안 들 수록 소음에 가까워지는 것이라고. 팔리는 것들에는 분명 의미가 있고 본질이 어찌 되었던 포장을 잘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능력이라고. 촌스러운 포장지로 감싼 것은 결국 - 반짝이는 포장지에 비하면 소음에 불가할 수 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