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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한 Apr 26. 2024

고립





헤겔의 말에 따르면 모든 것은 정반합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던데, 요새의 나로 이야기 할 거면 반에서 합을 거쳐 다시 정으로 돌아가는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이상한 말이라는 것은 나도 잘 안다. 그냥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내가 원래 태어난 - 나 스스로의 천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데 3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언제나 나는 내가 원하는 것과 정 반대로 움직이고 했다. 나는 예기치 않게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에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새로운 조직에 적응하는 것을 앞두고 언제나 많이 걱정하고 긴장하는 사람이다. 나는 내 예상을 벗어나는 -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들을 가장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나의 본성을 거스르며 영혼 끝까지 끌어당겨 외향적이려고 노력하고 언제나 어디에 속하고 싶어 했다. 언제나 외로웠고 사랑받고 싶어 했기에 진짜 나를 어디에 구겨 넣고 사회적으로 나에게 기대되는 역할들에 충실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헌신적이었다. 발작적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데 집중했다. 세상과 소통하고 싶고 내가 있을 곳을 찾으려고 집착했다.



하지만 수많은 파도를 타고 - 난파선 마냥 온갖 대미지를 입고 해변에서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지금은.

글쎄 너무 넝마짝이 돼서 그런지 이젠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고 나만 남아서 그런지, 내 모든 일생 중에서 가장 나에게 충실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는 있는 그대로 나를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나를 비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냥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더 이상의 사교모임 -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도 없다.

정말 좋아하지만 어느 의미로는 반쯤은 쓰러지듯 기대듯 마셔대던 술들도 더 이상 없어졌다. 가끔 답답한 일이 있으면 시가 한대를 태우며 와, 술은 끊어도 시가는 못 끊지 않을까 생각한다.

강박적으로 미친놈처럼 엄청나게 많이 사대던 책들을 사는 것조차 다른 것을 많이 사면 비난의 대상이 될 텐데 책이라는 이유로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게 아닐까 라는 이유로 더 이상 사지 않게 되었다.

고기를 끊었다. 원래 육식이 몸에 잘 맞지도 않고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는데 최근 몇 년간 지나치게 많은 육식을 해왔다.

인간관계에서 제노사이드에 비견되는 죽음을 경험했고 그. 시체 무더기 사이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냥 지금은 썩는 냄새를 풍기는 시체가 된 언젠가는 친근했던 인간관계 일 뿐이다. 죽은것에 어떠한 의미도 없다.



근데 재밌게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한다는 것이 있는 그대로 나를 사랑한다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내 삶에 있는 그대로 나를 사랑하는 날이 올까? 그건 정말로 모르겠다. 다만 내가 강박적으로 갈구했던 바깥 세계와의 링크를 나 스스로 포기함으로써 적어도 나는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으려는 노력은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나에게 자유를 선사했다. 이런 식으로 조금씩 원래의 내 조각들을 찾게 되면 정말로 내가 있는 그대로 나를 사랑할 수 있는지 답을 찾을 수 있겠지.



등의 피부를 찢어 발기는 듯한, 뼈가 전부 뒤틀리는 듯한 - 그런 느낌이다. 30 중반이 되어야 진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인정한다는 것은 아 조금 너무 늦지 않았나. 생각하면서도 모든 것은 때가 있으니 지금이 그런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엉망진창에 얼룩이 가득한 10대 - 애정을 갈구하던 뒤틀린 낭만 가득한 20대를 넘어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리는 30대를 보내고 있다. 이제 겨우 한 걸음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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