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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한 May 08. 2024

정말 한국은 살기 좋은 나라인가?



전적으로 내 잘못이긴 했다. 종교 정치 가족 이야기는 꺼내는 순간 지옥을 맛보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어제의 나는 택시 기사 선생님께 “동네가 대통령으로 시끄러워서 오시기 불편하셨죠?”라는 말을 꺼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10분 남짓한 거리를 택시로 타고 가는 거라 그분이랑 길게 대화(를 빙자한 일방적인 설교 비슷한 무언가)를 길게 할 필요는 없었다는 점이다.



젊은 사람들은 세상에 불만을 갖고 - 나이 든 사람들은 젊은 놈들에게 불만을 갖는 것은 고대로부터 이어진 인류의 지혜라지만 살면서 격렬하게 부딪힐 경우는 없었다. 일단 인터넷 밖을 벗어나면 정치 이야기와 세상 이야기에 열 올리는 사람은 바보 취급받는 시대에 살고 있고 그런 이야기는 중도적이지 않아 내가 별로 좋아하는 주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제는 무척 달랐다.


기사님은 자기 평생 삶이 힘들지 않다, 물가가 비싸지 않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으며 다른 나라들의 물가는 더 하다! 복지 비용 퍼주는 이런 나라가 어딨 나 한국은 살기 좋은 곳이다.


너는 월급 더 받고 싶어 하지 않느냐? 월급 더 받고 싶어 하면서 물가가 오르는 것은 너무 당연하지 않냐? 시골 가봐라. 외국인 노동자의 일당이 17만 원이다! (난 아직도 이 문장의 앞뒤 상관관계를 이해 못 하고 있다. 이는 젊은 한국 놈들이 고생은 안 하면서 돈만 밝힌다는 이야기일까 물가 상승률과 임금 상승은 비례한다고 말씀하시고 싶었던 걸까?)


요새 젊은 친구들이 살기 힘들어서 애 안 낳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외국인 이민자로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 옛날을 생각해 봐라. 옛날에 비하면 이민자들에 대한 대우는 매우 훌륭하다.


무엇보다 - 지금의 나라는 점점 발전하고 있으며 미래 세대가 살기 아주 좋은 나라가 될 것이다.



기사님의 이론에서 논리적인 반박을 하려면 한도 끝도 없이 할 수 있지만 내가 기사님의 이야기에서 제일 마음에 남았던 것은 “지금의 한국이 정말로 살기 좋은 나라냐고 생각하시나요?”라는 내 질문에 그는 “지금 같이 살기 좋은 나라가 어딨 다고!”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살기 좋은 나라.

지금의 한국 살기 좋은 나라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는구나.


뭐 나 역시 젊은 놈이기에 젊은 놈 특유의 시니컬로 내 시대가 먹고살기 힘들다는 생각을 비관적으로 할 수도 있으니까. 또한 기사님 개인의 주관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살면서 (특히나 요즘) 한국이 경제적으로 살기 좋다고 하는 분은 처음 봐서 좀 놀랐다.



살기 좋은 나라란 무엇일까? 내가 너무 거창하게 - 그리고 너무 바라는 게 많은 건가?라는 생각을 좀 했다.


기사님 말씀대로 그냥 김치에 밥이라도 굶지 않으면 아 다행이다.라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미국 같이 총 맞지 않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가? 아니 논리적으로 틀린 말은 아닌데 어딘가..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자본주의의 망령에 찌든 인간이라, 전쟁의 참사를 겪지 못한 세대라 그런 건지.



그러기에는 종로 3가에서 노숙하시는 분들도, 음식물 쓰레기를 드시는 분들도 봤다.

주변에 삶을 비관 자살을 시도하여 반신 불구가 된 친구도 있었다.

나 역시 삶을 비관하여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

최저 임금으로는 서울에서 국밥 한 그릇 먹기 만만치 않은 세상에 살고 있다.

외식이 문제가 아니다. 마트에 가도 앵겔지수가 무척이나 높다. 적어도 만 원짜리 한 장은 있어야 과일을 사 먹을 수 있다. 단순하게 옆나라 일본이랑 비교해도 장바구니 물가는 정말 두 배다.

남자로 여자로, 어느 지방 출신이냐로, 부자냐 가난하냐로 뭐가 되었던 편을 가르고 서로 혐오하기를 멈추지 않는 나라에 살고 있다.



진짜 밥이랑 김치만 먹을 수 있다면 전쟁 없고 총기가 없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나라라면 - 맞는 말이긴 한데. 여기서 더 많은 공공선을 바라는 것이 욕심인 건가? 아니면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은 내 비뚤어진 시선으로 인한 한국의 극단적인 경우인 것일까?



어렸을 때 제3국에서 어렵고 힘들게 사는 친구들에 비하면 니 팔자는 나은 줄 알아라라고 했던 엄마의 말이 계속 떠오른다.

왜 더 좋은 것을 욕심내면 안 되지? 더 좋은 사회 - 공공선의 극대화를 바라면 안 되지? 왜 더 안 좋은 경우와 나를 비교하며 자위해야 하지? 그렇게 치면 그냥 신의 장난으로 나는 인간으로 태어나고 누군가는 동물로 태어난 건데 동물이나 다른 사람에게 관대할 수 없는 거지?



밥이랑 김치를 먹으면서 이것도 복 받은 줄 알아라라고 하는 나라를 내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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