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불행이 되었던 우울이 되었던 인간의 의지와 벗어난 어떠한 외부의 부정적인 작용은 마음의 힘을 빼앗고 축 늘어지게 만든다.
지난 몇 개월간 내 마음은 축 늘어지고 낡아 빠져 어떤 것도 하지 못했다. 글에 대해서 길게 생각하는 것도 무척 어려웠으며 - 그리고 쓰고 싶지도 않았다 - 고작 한 줌 밖에, 아니 한 줌도 되지 않는 네트워크에서 대대적인 단절을 감행했다. 사람들을 만나지도 않았고 음악을 듣지도 않았으며 축 늘어져 명상음악을 듣거나 운세를 매일매일 돌려보며 예기치 못한 위협을 예상하려고 바둥거리는 말 그대로 암흑기 그 자체였다.
2.
세상에 모든 일에 장단이 있다고 하지만. 말을 좀 바꿔야 할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장단은 있지만 장단의 비율이 정확하게 5:5라고는 안 했다. 장 9 단 1 일 수도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단 8 장 2의 몇 개월 간의 암흑기에서 내가 건진 것은 내가 술을 거의 안 마시고 시가를 태우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미 머리가 뜨끈뜨끈해질 정도로 머리는 과도하게 미래의 불행에 대한 예측을 하고 그에 맞춰 마음은 불안으로 덜덜 떠는데 거기다가 카페인과 알코올, 니코틴을 처박는다는 것은 불난 집에 기름칠을 하는 것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만나는 사람이 없으니 마실 술도 없다.
시가를 태우려면 집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나는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는다.
3.
세상과의 단절을 감행하자,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것들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정신과 의사들은 내가 무쾌감증을 앓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거고 - 사실이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는 내 인생을 너무 많은 것들로 채우고 그것에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사람들, 부모, 형제, 책 그리고 약간의 사치품과 술들 - 가득할 때는 내가 좋아하는 세상에 속했다는 기쁨에 그 깊은 본질을 생각하지 않는다만 모든 것을 떠나보내고 나면 그 본질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밖에 남지 않는다.
4.
백아가 되었던 종자기가 되었던 수어지교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사람들을 애정했던 순간들
부모의 뒤틀린 정서적 폭력과 변덕스러운 감정 앞에서 사실은 나를 사랑하고 있어 같은 자위로 대부분의 평생을 낭비했던 나의 감정과 노력
알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아주 긴 시간과 수많은 재화들을 낭비하고 난 지금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5.
긴 시간 동안 살아왔던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기에 사실 지금 와서는 앞으로가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관성이라는 것이 한순간에 내가 바꾼다고 해서 바뀌는 것도 아니고.
안타깝게도 너덜너덜하게 낡은 마음은 더 이상 뭔가를 해낼 의욕도, 힘도, 공간도 없어서
얻은 깨닫음을 얼마나 마음에 오래 새길지, 새길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