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도 10년이면 변한다지만.
영원을 바라는 것은 어린 아이나 하는 짓이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추억이 있던 장소들이 사라지는 것은 언제나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지난 몇 년간 교통이 불편한 지역에 살다 보니 근처의 대중교통이 편한 장소 말고는 다른 장소로 이동할 엄두도 내지 못했고, 올해 여름의 폭염이 나에게 알레르기라는 새로운 병을 가져다주면서 이번 여름은 꼼짝없이 집에 있어야만 했다. 원래도 잡병들이를 자주 하는 체질이었기에 놀라운 일은 아니었지만, 밖으로 나갈 때마다 피부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것은 차라리 어디 다른 곳이 아팠으면 좋겠다고 바랄 정도였다.
그런 나에게 마포 나들이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2년 만인가... 집에서 교통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만날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뭐 어쨌든 여러 가지 이유로 마포는 갈 일이 없게 되었다. 그러다가 오늘 - 몇 개월 만에 밖에 나온 기념으로 마포에 있는 연필가게를 찾아가기로 한 것이다.
서울에는 다양한 번화가들이 있지만 그들의 분위기는 조금씩 다르다. 홍대를 위시한 '연'그라운드 일대도 그렇다. 홍대입구-합정-연희, 연남 일대는 각기 다른 색을 띠고 있다. 나는 그중 대부분 시간을 연남 일대에서 보냈다. 몇 년 전까지 연남은 개성 있는 작은 가게들과 화교들이 운영하는 중국 요릿집으로 가득했다. 집이 강남쪽임에도 불구하고 한 시간이 안 되는 거리를 매주 무언가를 배우고, 놀러 갔었다. 작고 개성 있는 그 동네는 정감 있는 것이 강남의 거대한 흐름에서 비틀거리던 나에게 최고의 위로였다.
그러던 것이 연남동은 연남동 나름대로 젠트리피케이션을 겪어 내가 사랑하던 풍경이 흐려지고 나는 나대로 생활권이 옮겨가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다. 단순하게 방문이 아닌 사람들과 어울렸던 시기는 이미 5년 6년은 훨씬 넘었다. 그만큼의 시간이 우리 사이에 있다.
오랜만에 방문한 연남동은 전체적인 분위기는 비슷했지만 디테일한 가게들만 좀 바뀐 느낌이었다.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던 경의선 철길의 산책로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특히 그 일대에 사시면서 산책 나오신 중년의 어르신들이 제법 많았는데 그것은 연남이 핫플레이스가 아닌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산책로 그 옆에 예쁜 담장을 가진 카페, 추로스 가게들이 늘어선 것도 신선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사랑했던, 나의 잃어버린 추억들과 함께한 장소들은 전부 사라져 있었다.
사거리 근처에 있던 큰 양꼬치집. 살짝 뒤로 빠지면 있던 교포들이 운영하던 작은 중화요릿집. 편백나무 찜을 전문적으로 했던 밥집, 사랑했던 꽃집. 나 같은 뜨내기들을 상대로 장사하던 저렴한 와인바. 매일 시간을 때우던 작은 찻집. 동네에서 알음알음 유명하던 초밥집. 젠트리피케이션은 작은 가게보다는 큰 가게들이 견디기 어렵고, 어쩌면 그 일대에서 경쟁력이 없기에 그 가게들은 사라진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때 그 시간을 함께했던 사람들은 이제 없다. 기억조차 이제는 살살 희미해지려고 한다. 기댈 수 있는 것은 그때 그 장소에서 남아있던 희미한 흔적들로만 더듬어야 하는데 세상이 바뀌는 속도는 언제나 나의 기억보다 빠르다. 어릴 때부터 수많은 이별들로 인해 단련되어 지나간 인연들에 크게 후회하지 않는 성정을 가진 나지만 이젠 점점 좋아했던 것들이 사라지는 속도가 새로운 애정의 것들을 채우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이게 나이를 먹는 건가요..라고 하기에는 상실에 무슨 나이가 있나.. 그냥 이유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거겠지. 이젠 점점 미래를 멀리 내다보고 미래를 기대하는 것보다는 지금 현실 한 번을 성실하게 견디고 받아들이는 게 더 중요한 인생의 시기를 보내는 게 아닌가 싶다. 모든 것의 영원을 바라던 내 속의 어린아이 - 어쩌면 긍정적이고 순수한 - 는 이제 슬슬 갉아 없어지는 시기가 온 것이겠지.
언제나 무엇인가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것이 금방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지만 이젠 그런 것도 버리고 고요한 고독을 견뎌야 하는 때라는 것을 말하는 듯하여 돌아오는 연남동 나들이의 마음이 약간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