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세상을 사랑할 힘은 없어서.
안타깝게도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번뇌를 떨구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특히 요새같이 어디든지 이어져있는 세상에는 더욱 그렇다. 실시간으로 그 사람의 인생의 하이라이트와 내 인생의 바닥을 비교하는 게 쉽게 가능하고, 수많은 정보와 광고가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즈음에는 더욱.
뭐 하나 내세울 건 없지만 확고한 취향 하나만으로 어찌어찌 파도를 타왔다. 신께서 개성 대신 예쁜 얼굴을 주셨으면 더 감사할 뻔했지만.
취향이라는 것은 나름 유용해서, 안목이 좋은 사람들 사이로 나를 이끌기도 하고 보통 사람은 잘 모르는 곳으로 날 데려가주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좋은 점은 확고한 취향과 스타일이 있다는 것은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법을 어쩔 수 없이 배운다는 점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한 줌이고 - 그 한 줌, 거기서도 코드를 맞는 사람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면 전적으로 감동이나 울림 등 무형의 가치에 마음을 기대게 된다. 우울할 때는 위로가 되어주는 것들, 길 가다 나를 설레게 하는 것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나만의 의미들을 잔뜩 모으는 것이다.
지금이야 덤덤하게 외로움을 받아들여야지.라고 말하지만 몇 년 전, 아니 바로 얼마 전만 해도 쉽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유난스러운 아이란 꼬리를 달고 부모도 이해 못 하는 자식으로 자란 탓인지 끊임없이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을 찾아 헤매었다.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너무나 애타게 그리웠다. 세상 어딘가에는 나와 연결되어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사람이란 결국 자기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 누군가를 만날 수는 없는 법인가 보다. 신께서든 - 누가 되었던 우연이라는 이름 아래서 누군가를 만나지만 결국은 내가 속해있는 사회적 조직을 벗어나는 것은 아주 어렵다. 어쩌면 - 여행이라는 것을 통해서 그 조직을 벗어나 볼 수 있지만 사실 보통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쉬운 일은 아니니까.
이 외로움은 평생 가고 내가 속한 작은 세계를 받아들이기로 - 정확히는 내 삶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기대를 포기하고 - 결정하고 난 다음에는 뭔가, 나란 사람의 알몸을 보고 있는 듯하다. 어떠한 것으로도 감출 수 없는 나. 여러 가지 경험과 시간이 남긴 나. 나라는 사람의 내면에 뭐가 남았는지 살피는 과정을 겪고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럴수록 나를 평생 외롭게 만들었던 내 취향을 좀 더 발전시켜서 완벽하게 나만의 정원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외로울 것은 각오했다면 - 이 마음을 극대화시켜서 완벽하게 내 것으로 가득 찬 나만의 것을 만들어보자. 어설프게 여기도 저기도 아닌 누가 이해하지 않아도 내가 나로서 편하게 있을 수 있는 세계 말이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다고 이해받고 싶다고 생각하면 어쨌든 나는 남의 생각을 볼 수밖에 없다. 가끔은 맞지 않는 옷을 내 옷처럼 입어야 하는 순간들도, 내가 갖고 있는 주관들이 흔들리는 순간들이 온다.
사람은 사람 사이에서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그게 나에게 맞는 옷인지 생각하기도 전에 휩쓸리듯이 꾸역꾸역 먹기 싫은 것을 먹듯이 살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1000만 명 중 1만 명이 사랑해 줄까 말까 한 삶을 살고 있다면, 그냥 나의 취향과 비전 마음을 소중히 해 더 크게 키워보고 싶다고.
바깥바람에 흔들리는 날들이 있어도 다시 나의 중심을 잡아야지. 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