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힙과 출판사의 시장경제
SNS에서 먹어주는 책팔이가 되어보자.
언제나 손을 조심하자. 입을 조심하자라고 생각하는 나이지만 이것만큼은 삐딱한 시선을 어김없이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바로 텍스트힙이다.
사실 난 텍스트힙이라는 단어를 얼마 전에 알았다. 한 4일 전인가?
맨 처음 보자마자 든 생각은 '저게 뭐야?'였다. 그래도 나름 독후감 블로그도 운영하고 교보를 부지런히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어쨌든 내가 모르는 주류의 세상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나 보다.
아직도 뭔지 잘 모르겠다만, 대충 책을 소비하는 나 또는 타인을 멋지다고 생각하여 책 그러니까 텍스트를 이미지화시키고 그것을 인증하는 일종의 놀이라는 것이 개요라는 것은 대충 파악했음.
문제는 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어떠한 주류의 흐름을 만들고 있는지는 잘 알지는 못했는데 이걸 경험한 최근의 사건이 하나 있었음.
인스타그램이 나에게 독서 인증을 남기는 사람들 계정을 알고리즘으로 추천해 주면서 시작된 텍스트힙 체험.
일단 인스타그램에서 먹어주는 독서가가 되려면 이런 과정이 필요하다.
1. 양으로 승부한다.
나의 독서 세월 몇 년, 또는 몇 년에 몇 개의 책을 읽은 등 일단 양으로 승부해야 함.
사실 이게 의미 있나 싶은데 정규 교육을 받은 한국인이라면 초등학생 때부터 책 읽기 교육은 다 받았을 거임. 대부분 한국인의 독서 경험은 저학년 때부터 시작됨.
저런 경험을 내세우려면 어디를 나의 독서 경력의 시작으로 잡을 것인가가 중요한 것 같은데 사실 그게 의미가 있나도 모르겠다. 뭐 사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아닌가?
또한 책을 권수만 많이 봤다고 해도 책의 장르나 두께 등에 따라 속도는 너무나 천차만별이기에 그것도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예로 들면 300페이지 이하의 소설책은 5시간이면 읽을 수 있는데 300 페이지의 양자역학 책은 시간이 좀 필요하다.
그런 것을 생각해 보면 - 정말로 양으로 승부하는 것이 의미가 있나? 의문이 들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하는 것 같더라. 그러니까 그런 주제가 스펙이 되지...
2. 일단 책을 주르륵 늘어놓고 인증숏을 찍는다.
캬. 이거는 좀 신박했다.
일단 대충 한 5권에서 10권 남짓한 책이 준비물이다.
책은 읽을 필요는 없다. 어차피 독후감 따위는 아무도 보지 않고 관심도 없다. 쓴다고 해도 별 몇 개 또는 한 줄로 쓰면 된다.
그리고 책을 모아두고 사진을 찍는다. 이때 사진을 찍는 이유가 중요하다.
가령 이번달 제가 구매한 책! 또는 무슨무슨 출판사 책! 아니면 자기 계발서 모음! 같은 이유들 말이다.
3. 책은 트렌디해야 한다.
대에충 살펴보니 나는 나로서 살기로 했다 같은 뭔가 힐링 에세이, 마음의 끌어당김으로 부자가 되어보자 같은 사이비 종교 경전 같은 경제학 껍데기를 뒤집어쓴 책, 대충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은 비합리주의 철학자의 글을 전체적인 흐름과 관계없이 밑도 끝도 없이 편집하여 내놓은 책 같은 게 요새 출판계에서 팔리는 책.
그런 장르 위주로 책 소개 구성을 짠다.
니체의 인생수업 이런 책 같은 것은 소개할지 몰라도 정말 역사적으로도 니체 저작에서 여러 의미로 논쟁이 되는 권력에의 의지 같은 책은 소개하지 않음..
뭐 이해한다. 노잼이고 이해하려면 너무 많은 배경지식을 갖고 가야 하니까.
다만 나는 거기서 두 가지 의문이 생겼는데.
1. 본인의 얼굴을 내놓고 하는 계정인데 저 책들이 양질의 책들이라는 것을 보장하는가?
2. 저 책을 모두 자신의 선택으로 자신이 금액을 지불했는가?
근데 뭐 사실 1번은 의미 없는 게 나는 진짜 재밌었다고 해도 남에게는 재미없을 수 있죠라고 하면 되는 거니까.
다만 나는 얼굴을 내건 만큼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출판계라는 것도 돈 되는 것이란 게 있어서 에세이와 시집이 돈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부터 한도 끝도 없이 많은 에세이와 시집, 또는 시인이 아닌데도 일단 후갈기고 보는 시집들이 출판되는데 그게 정말로 시장 전체적으로 봤을 때 도움이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같은 의미로 사이비 교주나 트위터에서 어디에 투자한다고 하는 사람들이나 할 것 같은 요상한 경제학 서적도 도대체 뭔 의미인지 모르겠고.. 좋은 말만 짜집어 놓은 듯한 철학 개론서는 그냥 말도 하지 말자. 말하려면 귀찮다.
앞으로 텍스트힙이라고 불리는 놀이가 더 수명을 연장할 것인가 아니면 LP 열풍처럼 사그라들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는데 당장 판매에 급급해 가짓수만 늘리는 출판이 얼마나 도움 될까? 제목은 그럴듯하고 내용은 형편없이 출판된다면 이 기후위기 시대에 무슨 나무 학대인가? 불태워지지 않는 한 책은 계속 어디선가 돌 것이다. 내 책꽂이에서 돌던 중고시장에서 돌던. 정말 그 책이 몇십 년의 세월을 넘어서 그 사람의 서재에 남을만한 책인지는 사실 까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것인데 그 확률을 굳이 출판사가 기획단계부터 반토막 낼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두 번째.
책을 굳이 본인의 돈을 내고 살 필요는 없다. 선물 받을 수도 있고 협찬받을 수도 있다.
근데 선물과 협찬은 차이가 크다.
협찬은 어떻게든 좋은 서평을 갈겨줘야 한다. 홍보해줘야 하고. 출판사가 건실한 중견 출판사면 서평용 책을 더 전방위 하게 뿌릴 수 있고 서평용 책을 받은 리뷰어들은 좋은 서평을 갈겨준다. 이건 진짜 인스타 좀 뒤지고 블로그 좀 뒤져도 금방 알 수 있다. 인스타에서 독서 인플루언서들은 본인 스스로 리뷰를 제작하는 것을 넘어서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다시 팔로워들에게 돌리는 이벤트를 통해서 본인 실속도 챙기고 책도 흩뿌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꼭 누군가는 그것에 피 보는 사람이 생긴다.
그리고 그 피 보는 사람은 서평용 책을 제공받은 사람이 아닌, 내돈내산 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내돈내산 한 것도 화나는데, 심지어 그 내돈내산에는 저 이상한 프로모션 비용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
정가 다 주고 사서 남은 것은 홍보를 덕지덕지 바른 이상한 책과 거기에 속아 넘어간 나의 더러운 안목에 대한 자학뿐이다.
그리고 다음 책을 살 때는 더 신중해지고 - 더 신중해지고 - 책을 사지 않겠지. 또 속고 싶진 않으니까.
일각에서는 그렇게라도 책 읽는 인구가 10%라도 늘면 좋다고 하는데 그들이 선택하는 책들이 사실상 오랜 시간 애독가들에게 사랑받아왔던 책들이 아니라 트렌디한 책이라는 것이라는 점에서 나는 독서 인구가 늘지도 궁금하다.
좋은 책은 다른 책으로 나를 이끈다. 한마디로 지식의 그물을 치게 만들어주는데 트렌디한 책들이 그 역할을 얼마나 할 것인가?
트렌디한 에세이에 쓰여있는 개인의 경험은 사회의 경험이고 공감을 산다는 점에 무척이나 동의하지만 그것을 저 먼 예전의 명작 - 가령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프리모 레비의 에세이 같은 것으로 징검다리를 할지는 의문이다. 왜냐면 지금 팔리는 에세이에서 그 정도의 통찰을 찾아볼 수도, 그들에게는 개인의 경험의 공감이 중요하지 내 책을 넘어 다른 책으로 가게 만드는 시장 전체를 긍정적으로 움직이는 그 책을 읽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있는지 모르겠다.
물론 시대마다의 경험이 다르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어차피 모든 시대는 자기만의 고통을 끌어안고 산다. 프리모 레비의 시대의 고통과 현재 한국 시대의 고통의 전개는 다를지언정 고통은 똑같다는 점이다. 좋은 글이라면 다른 에세이로 다른 통찰로 다른 세계로 독자를 인도하고 출판 시장을 살리겠지만 당장 자기책만 소비되는게 급급한데 그게 가능한가?
철학은 조금 다를 수 있겠다. 비합리주의에 실존주의로 넘어가는 경우를 종종 봤는데 나는 그 이유가 사상 자체의 이해와 사회적인 배경에 따라 소비되는 것이 아닌 그냥 '말' 자체로만 소비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데에는 말을 짜깁기 해서 내다 판 출판사들의 기획이 한몫했다고 보고. 왜냐면 인스타그램에 있어 보이는 말 써야 하니까. 일단 앞뒤 문맥과 사상적 배경은 필요 없다. 일단 있어빌리티부터 챙기고 보는 거다.
만약 요새 유행하는 비합리주의 철학자들의 말이 실존주의로 넘어가는데 도움이 되었다면 사르트르는 되고 하이데거는 안 되는 이유는 뭔가? 비합리주의와 실존주의까지의 뿌리라고 볼 수 있는 칸트나 헤겔은?
나는 예전에도 독서라는 것이 돈 많고 시간 남아도는 인간들이나 하는 한가한 취미생활이지 의미를 찾는다면 솔직히 모르겠다고 쓴 적이 있는데 그게 그렇다고 이렇게 읽을 책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말은 아니었다.
출판사의 미친 기획과 그렇게 팔리는 책들이 늘어날수록 정말로 책을 좋아하는, 책 한 권의 출판을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나는 이미 내 독서에서 선택할 수 있는 출판사가 상당히 줄었다. 하지만 앞으론 더 줄어들겠지. 팔리지 않으니까.
서평단이라는 이름 아래 책을 공짜로 뿌리고 트렌드세터에게 인기있는 유명 에세이 작가들 돈 주고 동원해서 출판사의 의도에 맞는 띠지 서평이나 찍어낼 바에 출판사 자체적으로 책값을 낮추려는 노력을 하는 척이라도 하거나 도서정가제나 폐지해 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