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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다 한다는 서울-부산 2박 3일 국토종주 3일차

대구 현풍에서 부산 호포까지

by 루파고

드디어 마지막 구간이다.

전날 땡볕에 하도 고생을 해서 그런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새벽 5시.

아직은 선선한 편이지만 말이다.

습기 잔뜩 머금은 안개를 보니 오늘의 무더운 날씨를 예상할 수 있었다.

그냥 무더위면 괜찮겠지만 낙동강을 따라가는 길이라 습도가 너무 높다.

심하진 않지만 전날과 달리 초반부터 허리 통증이 시작됐다.

시작부터 두 가지 걱정을 안고 달려야 했다.

그런데 새로운 걱정이 나타날 줄이야.

준비 없이 시작한 국토종주라 생각도 짧았다.

서울 올라가는 차편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쭉 뻗은 길이 보기엔 좋지만 노면이 영 좋지 않다.

우두두두두두!

삼 일간의 여정 중 가장 짧은 구간인데 시작부터 허리가 아프니 속도를 내기 어려웠다.

그래도 초반엔 30km/h 속도를 유지했지만 그것도 잠시.

50여 km를 달리자 허리 통증이 말이 아니었다.

새로운 자세를 찾으며 통증을 이겨내려 했지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마을길로 접어드나 했더니 터널이 나왔고 터널을 빠져나오니 도동서원이 나타났다.

이 터널이 생기기 전에는 다람재를 건넜어야 했을 거다.

짧은 업힐이겠지만 터널 덕분에 조금이라도 거리는 줄었다.

보통 때 같았으면 도동서원에 들러 사진이라도 촬영하는 건데 출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하여 멈춰 서지도 않았다.



마침 무인매점이 보였다.

예전에 들렀던 곳이다.

그런데 너무 이른 시간이라 문은 닫혀 있었고 멈춘 김에 잠시 쉬어 간다.



대구국가산단을 지나 지루한 구간이 이어졌다.

합천보를 지나 조금 지나면 황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지점이 있다.

안내판이 애매해 길을 잘못 들어 무려 왕복 10km나 되돌아와야 했다.

어쩐지...

뭔가 좀 이상하다 싶었다.

하마터면 합천군청까지 다녀올 뻔했으니까.



여기까진 평지였지만 이제부터 좀 곤란한 구간이다.



예전엔 대체 어떤 생각으로 다녔을까 싶었는데 기억을 더듬어 보니 자전거를 들고 내려왔던 기억이다.

어지간하면 내려서 걸어가는 게 상책이다.

아니면 우회로(국도)를 타는 게 좋다.

그런데 나름 괜찮은 뷰가 나오니 가보는 것도.



합천보를 건너면 한적한 국도가 시작되는데 쭉 뻗은 시멘트포장도로가 매우 거칠다.

역시 차량 통행은 거의 없다.



거리는 얼마 안 되지만 다시 지루한 길을 한참 달려야 한다.



여기가 중적포인가보다.

작은 수변 절벽이 그늘을 만들었기에 잠시 쉬어 간다.

허리 한 번 펼 때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른다.

뭐가 잘못된 게 분명하다.



합천 갈림길에 있는 청덕교에서 적포교까지 달리는 구간은 자전거도로가 있지만 영 상태가 좋지 않다.

국도는 넓고 차량소통은 거의 없다.

절반 정도는 자전거도로로 달렸고 나머지는 국도로 달렸다.

약한 업힐이 좀 긴 편인데 느긋하게 달리면 부담 없다.



적포교가 있는 적포삼거리에 또깡이식당.

뭘 먹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정식을 권장하시는...

소고기미역국이라 하시기에 단백질 보충 차원에서 정식을 주문했다.

그런데 반찬이 거의 집반찬 수준이다.

사진은 없지만 거의 다 바닥을 비웠다.

가격은 9천 원이었던가?

물통 2개 가득 보충하고 생각해 보니 물값보다 밥값이 훨씬 저렴하게 느껴졌다.

보통 하루에 음료 등 못 해도 20리터는 마시는 것 같으니 말이다.



다시 끝없는 강변길...

너무 길어서 징그럽다.

가도 가도 끝없는 삼만리~

오래전 엄마 찾아 삼만리라는 만화영화 주제가 생각이 났다.



여긴 그 유명한 박진고개.

네 번째인데 언제나 힘든 건 왤까?

화악산보다 약한 업힐이고 그리 긴 구간도 아닌데 말이다.

지쳐서 그랬을까?

막판엔 와리가리...

도보 국토종주했을 청소년들의 흔적이 항상 묘한 기분을 자아내게 한다.

그런 게 진짜 추억이지.

하지만 진짜 무서운 업힐은 따로 있다.



박진교를 건너 남지 쪽으로 향하는 길.

개비리라는 명승지를 거쳐야 한다.



난 영아지고개를 넘어갔는데 미친 짓이었다.

예전에도 한번 넘어본 적이 있었는데 반대쪽과 달리 경사가 장난 아니었다.

그땐 부산에서 대구로 가는 방향이었는데 경사도 자체가 다르다.

여기도 바닥에 이끼가 많아 매우 미끄럽다.

결국 한번 넘어질 뻔했으나 낙차는 면했다.

관광지라 산책 겸 걷는 사람들이 많다.

역시 다운힐은 조심조심.


남지로 가는 길에 국토종주 여행자 두 명을 만났는데 영아지고개를 넘었냐며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반은 타고 반은 걸어서 넘었지만 아무튼 쉽지 않은 구간이었다.

다들 우회하더라는...

만약 나도 알았다면 백퍼 우회했을 거다.



남지교 옆에 차가 다닐 수 없게 막아 놓은 교각이 하나 있다.

강을 건너니 절 하나가 보였는데 능가사이다.

전에도 보긴 했지만 절벽 위의 풍경이 좋아 보였던 기억이다.



아차!

여기쯤 왔을 때 서울 올라갈 차편 생각이 났다.

큰일이지 싶어 부랴부랴 앱을 열고 보니 오후 7시 30분 버스 좌석 하나만 남아 있었다.

고민할 틈도 없었다.

누가 먼저 예약할까 싶어 부랴부랴 예매를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큰일이다.

종합터미널까지 가려면 지하철을 여러 번 갈아타야 하는데...

게다가 허리는 거의 최악이었다.

더위를 먹었는지 어지럽기까지...

이 버스를 놓치면 돌아가는 방법이 있을까?

라이딩할 거리와 지하철 시간을 계산하니 넉넉하기도 하고 빠듯해 보이기도 했다.


창녕함안보를 건너며 사진 한 장 남겼다.

이 구간부터는 몇 번 다녀봐서 제법 눈에 익다.

밀양권에 접어들면 익숙할 정도.



소우정부터는 잠시 공도를 타야 한다.

아마 국토종주길 중에 가장 위험한 구간이 아닌가 싶다.

차량 통행도 제법 있는 도로인데 폭도 넓지 않고 구불구불하다.

게다가 8%~12% 정도의 경사도.

지역 주민들은 자전거가 많이 다니는 곳이라 익숙하겠지만 아무튼 위험해.



하늘이 날 살렸다.

뒤따라 오는 차량을 의식해 미친 듯이 다운힐을 탔는데 국도를 벗어나 자전거도로에 들어서자마자 펑크가 났다.

두 번째 펑크다.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60km/h가 넘는 다운힐 중 펑크 났다면 난 골로 갔을 거다.

허리가 문제가 아니다.

튜브를 갈아 끼는 중 남지에서 만났던 라이더를 다시 만났다.

안동에서 오는 중이시라고 했는데...

도움을 주시려고 잠시 멈추셨는데 혼자 할 수 있다고 말씀드리니 인사를 남기고 출발하셨고...



달리고 달려 밀양 수산(수산국수로 유명)에서 수산교를 타고 낙동강 남쪽으로 건넜다.

그냥 쭉 가도 되는데 밀양 부근에서 한참 돌아가는 길이 싫었다.

허리가 너무 아파서... ㅠ



모정고개 옛길로도 몇 번 넘어 봤지만 이젠 덥고 체력도 털리고 허리도 아파서 그냥 터널길로 통과.

엄청 시원한데 그냥 지나쳐야 했다.

그놈의 버스.



여긴 삼랑진철교다.

자전거와 차량이 다닐 수 있는데 서로 양보를 하긴 하지만 조심해야 하는 구간이다.

지쳐서 사진엔 담지 않았지만 어셈블커피로스터즈라는 카페에 들러 달달한 음료 하나를 주문했다.

그런데 아까 만났던 분이 들어오셔서 합석.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같은 자출사 멤버시란다.

안동에서 출발해서 부산까지 가는 길이시라고.

난 소설 <로드바이크> 쓴 놈이라며 자랑질까지. ㅎㅎ

사진 한 장 함께 촬영하지 못한 건 뭔지.

아무튼 당 보충도 좀 하고 보니 힘이 조금 나는 것 같더라만 그것도 얼마 가지 못했다.

이젠 더위를 먹었는지 아무리 물을 마셔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 것 같았다.


https://kko.to/vWX7d_R1Bh

여긴 라이더에게 시원한 얼음물을 무료로 제공한다.

건물 외부 자전거 거치대에 보온통이 설치되어 있다.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예전엔 물만 얻어먹다가 드디어 음료를 사서 마셨다.

항상 감사합니다. ^^



이제부터 진짜 지겨운 구간이다.

밀양에서부터 원동을 지나 양산까지 가는 길.

대신 휴식할 수 있는 공간도 많고 매점이나 카페도 제법 많다.



한참을 달리다 어질어질하고 허리가 끊어질 듯하여 서릉공원에서 다시 멈췄다.

이젠 한 번에 5~10km 정도 달리는 것도 어려웠다.

그런데 빕숏이 터져 있었다.

이런...

자출사 라이더를 여기서 다시 만났다.

팥빙수를 드시고 계시는 모습이 눈에 똭!

출발하려고 하는데 외국인들과 대화를 하고 계시더라는.

원래 서릉공원에선 팥빙수가 진리인데 잊고 있었다.

몇 수저 뜨고 가시라는 제안을 뿌리칠 수 없었다.

하나 사 먹고 가고 싶었을 정도였으니.

이런저런 상황을 말씀드리니 호포역에서 지하철을 타는 게 좋을 거라는 제안을 주셔서 그대로 따르기로 했다.

지도를 열고 시간을 계산해 보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버스 시간을 맞출 수가 없었다.

을숙도까지 갈 생각이었지만 허리 핑계, 버스시간 핑계가 적당히 맞아떨어지는 순간.

인사를 나누고 다시 출발!



물금에서 호포역까지 가는 국도다.

자전거도로는 강변에 있지만 더운 날엔 대부분의 라이더가 이 길로 다닌다.

물론 아는 사람들만...

차들은 알아서들 피해 다닌다.

이 길을 다니는 운전자들 대부분이 운동하러 오거나 하는 사람들이니 말이다.



드디어 호포역이다.

이제 라이딩은 끝이 났다.

을숙도는 못 봤지만 부산에 도착했으니 됐지 뭐.

호포역은 양산과 부산의 경계다.

부산 간신히 찍은 셈이다. ㅎㅎ



빕숏이 터졌으니 그걸 입고 다닐 순 없는 노릇이고 하여 반바지로 갈아입었다.

터미널에서 김밥에 밀면 주문해 놓고 대선 한 병 주문.

부산에선 대선 아잉교~

좋은데이?

그나저나 이 몸 상태로 서울 도착하면 집까지 어떻게 자전거를 타고 가나 걱정이었다.

서울 도착시간이면 이미 지하철도 다 끊겼을 것이고 또 25km는 달려야 하는데...



구간종주를 한 번 해서 그런지 PR이 제법 찍혔다.

겨우 564km를 달렸다.

평균 속도가 22km/h면 괜찮은 거지?

획고는 3,548m

칼로리는 22,640 Cal 소모했다.

살이 좀 빠졌겠지 싶었지만 88kg 그대로였다.

이렇게 고생하고도 이게 뭘까?

너무 잘 먹고 다닌 건가?

다음엔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올 생각이다.

협착증이 또 도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지만.


사실 이번 계기로 아직도 허리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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