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와 재생을 통한 조화로운 아름다움의 탄생
파괴와 재생을 통한 조화로운 아름다움의 탄생
디오니소스(Dionysos) 는 포도주, 농경, 황홀경 그리고 예술의 신으로 알려져 있다. 디오니소스가 연극과 공연예술을 대표하는 신인 이유는 아무래도 연극의 기원이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풍년을 빌기 위해 디오니소스 신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가장 큰 행사인 ‘디튀람보스(Dithyrambos)’는 디오니소스를 위한 찬가를 부르는 행사였다. 15명으로 구성된 합창단(코러스)가 디오니소스 신을 위한 찬가를 불렀다. 여기서 테스피스와 같은 합창단에서 떨어져나온 독립적인 배우가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그리스 비극이 발전했다. 최초의 비극은 배역보다는 코러스들의 노래가 중심이었기 때문에 지금의 뮤지컬과 흡사한 형태였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디오니소스는 연극과 뮤지컬 등 공연예술을 대표하는 신이라고 할 수 있다.
디오니소스의 출생의 과정을 살펴보면 예술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해보게 만든다. 전쟁과 파괴의 신인 아레스와 아름다움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아프로디테는 헤파이스토스의 아내였으나 추남이었던 헤파이스토스보다 뛰어난 외모의 아레스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사이에서 ‘하르모니아’라는 딸이 태어난다. 하르모니아는 그리스어로 ‘조화’를 뜻하며 영어 단어 harmony의 어원이 되는 신의 자식이다. 하르모니아는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의 배경이 되는 테베를 건국한 카드모스와 결혼하여 5남매를 낳게 되는데 그중에는 뛰어난 미모를 가진 세멜레가 있었다. 제우스는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해 세멜레의 아이를 가지는데 이를 질투한 헤라는 세멜레에게 제우스님에게 본모습(신의 모습)을 보여달라고 이야기하라고 한다. 세멜레는 헤라가 시키는 대로 했고 이미 스틱스강에 맹세했던 제우스는 할 수 없이 신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세멜레는 그 후광의 에너지에 타죽고 만다. 제우스는 땅에 떨어진 디오니소스를 자신의 허벅다리에 넣어 키웠고 그렇게 디오니소스가 태어났다. 디오니소스는 세멜레의 배에서 한번, 제우스의 허벅다리에서 한번 그렇게 ‘두 번 태어난 자’라는 뜻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출생의 배경을 가진 디오니소스는 하모니의 아름다움과 파괴와 재생을 거친 두 번 태어나는 과정을 통해서 의미를 완성한다는 예술의 의미와 가치를 전달한다.
디오니소스의 외증조할머니인 아프로디테는 아름다움의 여신이다. 아프로디테는 특이하게도 올림포스 12신 중에서 유일하게 레아의 자식도 아니고 제우스의 자식도 아닌 제우스의 할아버지인 우라노스의 자식이다. 제우스에게는 고모뻘인 셈이다. 설로 추측되긴 하지만 아프로디테는 크로노스가 낫으로 아버지 우라노스를 거세하였을 때 바다에 떨어진 피와 정액이 거품을 일으키며 아프로디테가 태어났다고 한다. 보티첼리의 가장 유명한 그림이라고 할 수 있는 <비너스의 탄생(The Brith of Venus. 1485)>(비너스는 아프로디테의 로마식 표현이다.)은 이러한 아프로디테의 탄생을 묘사한 것이다.
예술 작품의 아름다움은 바로 조화로움에서부터 나오는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조화는 사전적 의미로 ‘만물을 창조하고 기르는 대자연의 이치. 또는 그런 이치에 따라 만들어진 우주 만물’을 뜻한다. 특히 공연예술은 이러한 조화로움이 특히 강조되는 예술이다. 배우들의 연기, 무대, 조명, 음향 그리고 관객들의 호흡이 일치하는 순간 하나의 순간이 창조되고 관객들은 카타르시스와 전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안민수 교수의 저서 「연극연출-원리와 기술」에서 ‘리듬과 하모니의 즐거움’이 연극과 연출을 하는 이유라고 말하며 ‘리듬이란 어떤 운동이 있을 때 그 운동이 진행되며 만들어내는 궤적 혹은 자취를 의미한다. 그리고 여러 개의 리듬이 복잡하게 동시에 엮어져서 만들어내는 질서를 조화, 즉 하모니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리듬과 하모니는 우리가 어머니의 태아로 존재할 때부터 느낄 수 있으며 좀 더 크게 말해 모든 자연현상에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라고 이야기하며 공연예술에서의 조화로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 외증조할머니 아프로디테의 출생 또한 파괴와 재생의 순간을 거쳤다. 아프로디테는 전쟁과 파괴의 신인 아테나와 결합해 조화를 뜻하는 하르모니아를 낳게 된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전쟁을 통한 파괴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그것은 곧 세상을 조화롭게 만드는 과정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여기에 아름다움을 결합한 아름다운 파괴를 통한 조화로움이 예술인 것이다.
예술은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것을 파괴하고 새롭게 인식하게 만든다. 또 우리의 답답한 현실을 잊게 만들고 새로운 세상으로 초대하기도 한다. 공연예술은 디오니소스처럼 매번 새롭게 태어난다. 오늘 한 공연은 휘발되고 내일의 새로운 공연이 생성된다. 그리고 이러한 공연예술은 사회와 인간이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게 만든다. 디오니소스의 파괴와 재생의 정신이 외할머니 하르모니아로 이어지는 것이다.
기존의 서구 문명의 사고를 파괴하여 ‘망치를 든 철학가’라는 별명이 붙은 니체는 디오니소스를 인용하여 파괴와 재생 즉, 새롭게 태어나는 정신을 강조했다. 니체는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초인이 되기 위한 세 가지 단계로 낙타-사자-아이의 정신을 이야기한다. 낙타는 황량한 사막에서 무거운 짐을 진 동물로 삶의 무거운 무게를 인지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사자는 “너는 해야한다”라고 말하는 용에게 반항하는 동물로 “나는 원한다”라고 말하며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반항과 주체적인 삶을 가능하게 하는 정신이 바로 ’아이‘의 정신인데, 그것은 바로 망각을 통한 파괴와 재생의 정신이다. 아이들은 간혹 모든 에너지를 쏟아서 논다. 종종 굉장히 파괴적이고 가학적으로 놀기도 한다. 이렇게 에너지를 쏟아낸 아이는 부모로부터 혼이 나지만 다음날 또 똑같이 행동하며 에너지를 쏟아낸다. 이것이 바로 반항하는 아이의 정신이라는 것이다. 즉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틀에 갇힌 행동을 하지 않고 엉뚱하면서도 주체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디오니소스가 관장하는 포도주, 즉 술은 지나치게 섭취하면 어느 시점의 기억들을 망각하게 만들지만 다음날을 힘차게 살아갈 힘을 주기도 한다. 또 디오니소스를 묘사한 그림들을 보면 소년 또는 미소년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은데, 디오니소스가 망각을 통한 파괴와 재생의 정신인 아이의 정신을 닮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글: 예술도서관 박두환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예술도서관 아카데미를 통해 수많은 예비 연극인들을 만났다.
건강한 예술 교육자가 되기 위해 공연 관람과 글쓰기, 창작을 소홀히 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다.
연극과 공연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이러한 경험을 모으고 모아 잘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