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암 투병기
가족의 카드빚을 대납했다. 통장에 모아둔 잔고를 다 털어도 카드 부채를 상환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당일 상환하지 않으면 어떤 과정을 겪게 되는지 가족의 입으로 전해 들었다. 부득불 은행에서 신용대출을 신청했다. 학자금 대출 상환이 인생 최대 업적이고, 전세 대출 이외에는 은행에 빚지지 않았다는 것이 나름의 자부심이었던 나는 이제 없다.
은행은 대출 원리금 첫 상환일 보름 전부터 상환 일정과 금액을 친절하게 알렸다. 예고한 날짜가 되자 오전 9시 정각에 지체 없이 돈을 가져갔다. 2퍼센트대 전세자금대출 금리에도 매달 벌벌 떨었던 내가 빌린 은행 신용대출 금리는 7.909퍼센트였다. 5퍼센트가 넘었던 첫 학자금 대출 이후로 오랜만에 겪는 매운맛에 은행 어플에 찍힌 숫자를 볼 때마다 눈이 한 번씩 비빈다.
현금을 다 털어 넣고 높은 금리에 허덕이며 낼 이자가 무서워 딱 필요한 금액만 빌렸더니 돈줄이 꽉 막혔다. 곧바로 허리띠를 꽉 조이고 긴축 재정에 돌입했다. 혹시나 들려올 연말 경조사 소식이 무섭다. 어제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친구의 결혼식 사진을 보고도 '하트'를 누르지 않았다. 대구에서 식을 올리느라 친지만 초대했다는 글을 보고 어찌나 안도했는지, 이 기분을 친구에게 평생 고백하지 못하겠지.
띠링. 이 와중에 울린 '한 달 후' 일정 알림 메시지가 겨우 진정시킨 마음을 다시 한번 와삭 구겨 놓는다. 구글 캘린더에 빨간색으로 표시한 일정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감상선암 수술 입원. 순간 돈을 이체하고 가족과 통화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나는 지금 보낸 그 돈이 다음 달 내 수술비라고 말했다. 상대방은 아무 말이 없었다. 대출은 유, 잔고는 무. 암세포는 유, 수술비는 무. 눈앞에 닥친 이 모든 상황이 고약한 농담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