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연휴에 7박 8일간 프라하-빈 자동차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코로나 직전에 자동차로 베를린에서 프라하를 거쳐 빈으로 갔다가, 잘츠부르크를 거쳐 독일 남부로 갔다가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오는 거창한 여행 계획을 잡았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발생함으로 인해 여행은 취소되었고 지난 몇년간 우리는 오스트리아를 방문할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래서 올해 부활절 연휴(4일간의 공휴일) 앞뒤에 2일씩 휴가를 사용해서 8일간 베를린-프라하-빈을 왕복하는 여행을 계획했다. 총 1350km의 주행거리로, 베를린-아헨을 왕복하는 것과 비슷한 거리였지만 체코와 오스트리아의 고속도로와 국도를 지나야하는 것이라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일단 고속도로 통행료가 없는 독일과 달리 체코와 오스트리아는 10일짜리 비넷 (각각 18000원, 12000원 정도)을 구입을 해야한다. 프라하 여행을 자주 다니다보니 비넷 구입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독일 국경에서 프라하까지의 고속도로 상황과 프라하에서 빈으로 가는 고속도로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한국처럼 산이 많은 지형이고 터널이 거의 없어서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해야하는데, 독일과 달리 차선 변경 스트레스가 많고 아무도 주행 속도를 지키지 않으며, 중간중간에 경찰이 많았다. 나는 자동차를 몰고 독일 주변 국가로의 여행을 많이 다녀서, 국가마다 도로 설계 및 관리 상태와 운전자들의 운전 스타일을 비교하는 편이다. 현재까지는 독일을 최고로 한국을 최하로 놓고 평가를 하고 있는데, 체코는 한국에 가까운 스타일이었고 오스트리아는 독일에 가까운 스타일이였다. 참고로 중하 수준으로 평가하는 곳은 네덜란드, 덴마크, 폴란드 등이 있다.
모처럼 강아지 포함 온가족이 일주일 넘게 여행을 하는 것이라, 숙소를 잡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다. 부활절 연휴는 성수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1월쯤에 미리 예약을 해두었는데, 검색 조건은 주차 가능, 패밀리룸, 강아지 동반 가능, 조식 포함 등이었다. 이번에는 일부러 관광지 중심보다는 주변에 있는 3~4등급 호텔로 예약을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자동차는 호텔에 주차해놓고, 호텔에서 관광지까지는 우버를 이용했는데 체코의 경우 가격이 저렴한 편이지만 복잡하고 좁은 구도심의 길은 막히기 일쑤였고, 빈의 우버는 택시를 이용하는 방식이었는데 함부르크처럼 택시를 우버 대신 운영하는 경우에는 우버 답지 않게 험하게 운전하는 것이나 서비스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프라하 여행은 5번째였지만 이번처럼 프라하나 체코의 민낮을 직접 경험하기는 처음이었던터라 기분이 묘했다. 그래도 2년만에 다시 찾은 프라하는 예전 모습 그대로 우리를 반겨주었고, 관광객으로 북적거리는 구도심을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안해졌다. 추천을 받아서 찾아간 "맛집"은 정말 우리에게는 맛집이었다. 독일 온 이후로 6년 넘게 맛을 볼 수 없었던 불막창을 먹으며 눈물을 흘려야했고, 숙소에서 먹기 위해 포장해온 족발 대자는 양도 많고 맛도 좋아서 더할나위 없었다.
https://maps.app.goo.gl/ZtyDkLEsy2FDUAC5A
프라하에서 만족스러운 첫밤을 보내고, 기분좋게 빈을 향해 출발했으나 프라하 시내의 교통체증이 우리를 반겼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간만에 최악의 프라하-빈 구간의 고속도로, 국도 주행을 경험해야 했다. 개인적으로 다시는 드레스덴-프라하 구간을 제외한 체코 고속도로는 이용하지 않을 생각이다. 오스트리아 국경 검문소를 지나고나서부터는 독일처럼 합리적으로 설계된 국도(중간에 추월 구간이 반복됨)와 고속도로를 만나게 되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한강처럼 폭이 넓은 도나우 강 한쪽에 위치한 호텔에 도착해서 주차를 하고 짐을 푼 다음, 조금 쉬었다가 우버 타고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비엔나 분식"을 찾아 갔다. 이번 여행은 마치 유럽 한식 여행이 된 느낌이 들었지만, 한국 분식집처럼 다양한 메뉴를 골고루 주문해서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가격도 유럽치고는 저렴한 편이었던 것도 인상적이었다. 저녁 먹고 주변 번화가를 구경이라고 할까했는데,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서 다시 우버 타고 호텔로 돌아와야 했다. 호텔 피트니스센터는 독일에서 우리가 다니는 피트니스센터와 동일한 모델의 운동 장비를 갖추고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운동복을 5세트 준비해갔는데 매일매일 도나우 강을 바라보며 한시간 반씩 운동할 수 있어서 좋았다.
https://maps.app.goo.gl/aK2T8dG2ejBurtTQ6
우리가 5박을 숙박한 힐튼 비엔나 워터프론트는 가족 단위 손님이 꽤나 많아보였고, 독일에 비해 중국인을 비롯한 동양인 손님의 비율도 많아보였다. 이 호텔은 성인 1명당 1명의 미성년자 (18세 미만)은 무료인 덕분에 17세인 아들내미도 숙박비를 내지 않아도 되었다. 도나우 강 바로 앞에 위치해서 좋기는 하지만, 시내 중심가나 관광지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대중 교통이나 우버를 타야하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빈에도 1주일 대중교통권이 있지만, 한국이나 독일에서도 대중교통을 잘 타지 않던 우리 가족이 대중 교통을 이용할리가 없으니 우버(라고 부르는 택시)를 주로 타고 다니거나 4~5km 정도는 걸어다녔다. 독일은 크던 작던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Alt Stadt(구도심)을 가면 걸어서 관광하기가 딱 좋은데, 빈은 도시 전체가 오래된 도시이고 관광지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 가족처럼 한군데를 정해서 걸어다니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는 맞지가 않았다. 조식을 먹은 다음 호텔 근처에 있는 대형 쇼핑몰(딸내미가 찾았음)을 가장 먼저 찾아 갔다. 가족들이 쇼핑하는 동안 에스프레소 한잔하면서 기다리려고 했는데, 독일 보다도 살만한게 없다면서 생각보다 쇼핑은 금방 끝나버렸다. 그래서 그나마 가까운 "프라터"라는 놀이 공원(!?)으로 갔는데, 놀이기구는 별로 안보이고 베를린의 티어가르텐 + 런던의 하이드 파크가 합쳐진 듯한 깨끗하지만 드넓기만 한 공원이 나왔다. 빈 여기저기를 걸어다니면서 느낀 점이라면, 도시 전체가 "깨끗한 베를린" 같다는 것이다. 독일하고 큰 차이는 없어보이지만, 대신 거리에 쓰레기가 많지 않고 잘 정비 되어 있다는 느낌이라고 할까. 역시나 베를린의 티어가르텐 안에 있는 비어가르텐처럼 보이는 "슈바이처하우스"에서 맛있는 맥주와 슈니첼, 굴라쉬를 먹었는데, 맛있기는 했는데 독일에서 잘알던 그맛이었다. ㅎㅎ
https://maps.app.goo.gl/gDoD7puNt32zaEt4A
원래 빈을 좋아하는 와이프의 친구 부부도 비슷한 시기에 빈과 부다페스트를 여행 중이었던 터라, 우리가 거주하는 베를린에서만 재외투표가 가능한 것이 아니라 어느 나라의 한국 대사관에서든 재외투표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다음날엔 역시 우버를 타고 좀더 멀리 떨어진 오스트리아 한국 대사관에 방문해서 재외 투표를 하는 것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마침 한국 대사관이 위치한 동네가 강아지와 산책하기 좋은 동네라서 중심지까지 5~6km를 걸어가보았다. 딸내미 말대로 전쟁의 흔적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는 베를린과 달리, 빈은 어딜가나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깔끔하게 잘 유지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다만, 우리가 독일에 살고 있다보니 굳이 다시 찾을만한 이유가 없다는 것은 아쉬었다. 중심가에 있는 한식당 중에 "수라"를 찾아 갔는데, 예약을 안했는데도 자리가 있었고 (구석방이었지만) 강아지 동반도 가능해서 다행이었다. 딸내미가 LA갈비를 주문하는 바람에 점심 부터 고기냄새가 온몸에 밴 상태로 다녀야했지만, 맛은 훌륭했다. 특히 아들내미가 주문한 자장면은 간짜장처럼 나와서 밥까지 말아먹고야 말았다. ㅎㅎ
https://maps.app.goo.gl/92YqdKpbmYGuTwYL7
배불리 점심을 먹고 나서 서둘러 미리 예약해놓은 벨베데레 궁전의 미술관을 방문했다. 베를린의 경우 학생이면 (대학생 포함)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모두 무료인데, 빈의 미술관은 할인도 적다며 딸내미가 지적했다. 그래도 미술 대학교를 다니는 학생인 딸내미와 함께 미술관 관람을 하니 재미있었다. 딸내미는 중세 종교 미술을 끔찍히도 싫어해서 종교 미술 전시관은 대충 보고 나와야 했지만. 19세기말~20세기초의 작품들 중에 역시나 유달리 눈에 띄는 것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들이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활동한 유명한 작가라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보기도 했다. 미술관 관람을 마친 다음에는 다시 중심가로 걸어가서, 역시 유명하다는 모짜르트 카페에 들렀다. 유럽인들 답게 바깥쪽 테이블에 앉기 위해 다들 줄을 길게 서있었는데, 우리는 한국인답게 실내 테이블이라도 상관없어서 중간에 들어올수 있었다. 솔직히 맛이나 가격은 인상적이지 않았지만, 우리 테이블을 서빙하는 노년의 신사분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잔들이 엄청 쌓여있는 무거워보이는 쟁반을 능숙하게 들고 다니고, 점잖게 주문을 받는 것은 물론 계산을 마치면 엉덩이쪽에 있는 기계에서 영수증을 뽑아주는 모습이 너무 유쾌했다. 한시간 정도 카페에 앉아 쉬었다가 본격적인 쇼핑을 하려고 나섰는데, 연휴라 그런지 원래 관광객이 많은 곳인지 모르겠지만 정상적인 쇼핑을 즐기기 힘들정도로 사람이 많아서 포기해야 했다.
https://maps.app.goo.gl/MyjaE2Zu9p93ChqK6
전날 거의 25000보 16km를 걸었던 탓에 (나는 아침 운동까지해서 더 나옴) 온가족이 하루종일 호텔방에 누워 아무것도 안하고 쉬었다. 점심은 독일에서 미리 사간 컵라면으로 떼우고, 저녁은 근처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를 배달시켰다. 독일에서 사용하는 배달앱 리퍼란도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어서 좋았다. 다들 푹 쉬고 난 다음날에는 호텔에서 번화가까지 6km 정도를 걸어가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렇게 걸어다니다보면 대중교통이나 우버를 타고 다닐때는 볼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어서 좋다. 확실히 깨끗하고 잘 관리되는 멋진 도시임에 틀림이 없었지만, 여전히 우리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아서 안타까웠다. 왠만하면 한국인 맛집은 피하는 편인데, 다시 빈에 올 확률이 낮다보니 "립스 오브 비엔나"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도착하니 마침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나가는 길이다. 독일 사는 사람들에게 오스트리아 여행의 좋은 점이라면 "독일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굳이 영어 메뉴판을 보지 않아도 되고, 뭐가 뭔지 알기 때문에 주문하는게 어렵지 않으니 말이다. 립 스테이크나 비프 스테이크가 훌륭해서 슈니첼은 "아웃 오브 안중"이 될정도로 한번쯤은 방문할만한 곳이다.
https://maps.app.goo.gl/ZYEYBfS8xeZ9Dcyh9
점심 식사 후엔, 알베르티나 미술관을 방문해서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팝 아트와 피카소의 작품 뿐만 아니라 다양한 미술 작품들을 감상했다. 애들에게 쫒기듯이 감상해야하는 게 아쉽기는 했지만, 딸내미와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딸내미가 좋아하는 설치 미술 작가의 작품들도 있었는데, 베를린에서 했던 작품 전시회는 상상을 초월한 수준이었던듯 하다. 미술관을 나와서 수많은 마차를 끄는 말들의 말똥 냄새를 맡으면서 호프부르크 왕궁 앞쪽으로 산책을 하며, 5박 6일간의 오스트리아 빈 여행을 마무리했다. 이것저것 괜찮은 여행이었지만, 무엇보다 좋은 것은 역시 가족들과 한방에서 같이 숙박하며 지지고 볶는 재미가 있었다는 것이다. 아이들도 이젠 거의 다 커서 이렇게 함께 가족 여행을 즐길 기회가 많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빈 여행에서 아쉬었던 점 하나는, 힐튼 호텔이 원래 그런것인지 아니면 오스트리아 노동 환경이 그런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방을 담당하는 하우스키퍼의 모습이 "중노동에 찌든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독일에선 작은 호텔이든 큰 호텔이든 "찌든 얼굴의 노동자"를 보기 힘들다. 그래서 나는 독일 국내 여행을 좋아하고 독일 호텔에서의 경험을 즐기는 편이다. 런던이나 리스본의 호텔에서도 하우스키핑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적이 있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기에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
빈에서 다시 프라하로 돌아가는 고속도로는 이전보다는 덜 스트레스를 받으며 운전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대미를 장식해야하는 호텔의 위치는 내 예상보다 구도심에서 멀찍히 떨어져 있었고 지하주차장은 거의 꽉 찼으며, 다른 프라하 지하주차장처럼 차량 사이의 간격이 좁았다. 게다가 우버를 타고 식당으로 향하는데, 퇴근길 교통 정체 때문에 우버 기사가 식당 근처에다가 내려주고 가버렸다. ㅎㅎ 그래도 다시 찾은 "맛집"에서 곱창볶음과 막창소금구이를 먹으며 행복해하는 것으로 프라하 여행도 마무리했다. 곱창/막창을 먹기 위해서 다시 프라하에 와야한다면... 당연히 우리 부부는 다시 방문할 의사가 있다.
다른 유럽 여행들처럼, 다시 독일 고속도로에 들어섰을때의 그 안도감과 독일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을때의 반가움을 느꼈다. 올해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여행다운 여행은 아마도 이번 휴가가 마지막이 될 것이다. 꽤나 다사다난한 한해가 되겠지만, 언제나처럼 가족들과 함께 힘을 모아 슬기롭게 헤쳐나갈 것이다. 이번 여행은 그런 가족들의 존재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