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차> 주인공 목표, 로그라인, 기승전결 정하기
작품의 기승전결을 짜다보면 으레 갈등의 상황을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 처음 친해지고, 처음 먹은 마음보다 두 사람은 깊게 연루되고, 그저 호감만으론 극복할 수 없는 어떤 차이들이 불거져 나오고, 최대한으로 반목했다가(전->결 지점에서 아예 절연을 했다가), 둘은 다시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이는 새로운 관계를 향해 나아간다.
특히나 두 인물의 관계를 다루고 싶은 내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한편으론 생각한다. 트랜스젠더 여성과 시스젠더 여성 사이의 갈등을 극적으로 부각시키기 불편하다. 이는 글의 재료가 어느 정도 나와 내 친구 사이의 관계에서 나와서이기도 하다. 또 과연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둘 사이의 반목이 그렇게 필연적인 것일까?’ 하는 의문도 있었다. 트랜스젠더의 욕망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여성’의 범주를 흐릿하게 하고 결국 여성운동의 힘을 뺏어갈까? 그들의 싸움은 ‘여성’과 ‘트랜스젠더’ 개인들의 싸움으로 봐야 할까? 여성혐오적이고 호모포비아적인 세상 속에서 왜 결국 두 집단만 싸우는 구도가 되며 결국 더 힘들어질까.
여기에 관한 학술적인 분석이 꽤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 한편으로, 좀 더 관계의 결을 다룬 작품은 별로 본 적이 없던 것 같아서... 이 이야기를 쓰기로 했지.
그래, 이미 작품이 말하고 싶은 바는 ‘두 사람은 잘 지낼 수 있는가.’로 잡았다.
내 경우와 거리를 두기 위해, 작품의 배경은 고등학교 교실로 하기로 하자.
나 역시 고등학교 시절은 나에 대한 고민으로 희비가 널을 뛰는 시기였다. 헌데 젠더 논의가 보다 대중적으로 이뤄지는 요즘의 경우는?
트위터에서 종종 퀴친소라고 해서 자신들의 사진을 그냥 게시하는 어린 퀴어 친구들을 본다. 학교 체육대회 때 드랙을 하고 나서는 친구들의 사진도 본다. 그들이 경험하고 있는 학교는 이전에 내가 경험했던 학교와 또 어떤 점이 다를까? 세상은 분명 바뀌었지만, 동시에 모든 위험이 사라진 것은 아닌데... 아무튼 그런 배경이다.
주인공은 그 속에서 자신이 ‘트랜스젠더’임을 서서히 깨달아가는 남자 교복을 입은 아이다.
기: 체육대회 때 현수의 드랙을 보는 것만으로도 대리 해방감을 느끼는 영진. 그 사건이 발단이 되어 현수와 친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한편 원래 영진과 친했던 소담은 영진의 변화에 소외감을 느낀다. 왜 나는 점점 안 끼워주냐고 감정을 토로하는 소담. 영진은 말한다, 나도 현수랑 같은 상황인 것 같다고.
승: 소담은 영진에게 솔직히 말해줘 고맙다고 한다. 둘 다 mbti로 치면 'i'계열 성격인 만큼 서로 조심하는 타입이다. (퀴어 이슈에 빠삭해 ‘게이 친구’를 원하는 이성애자 여자들을 지레 짐작으로 욕하는 현수. 영진은 현수 말도 이해는 가지만, 자기가 본 소담은 그렇게 판에 박힌 듯한 이성애자가 아니었다.) 영진은 현수에게 화장을 배우는 과정에서도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뷰티 화장이 좋은 영진. 눈을 두 세배 크게 그리는 드랙 화장만이 전위적이라 말하는
전:
결:
(.......) 이렇게 쓰려다 이건 지금 작업의 취지가 아닌 것 같아 그만 둔다.
기: 영진은 소담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애매하게 게이라고 고백한다.
승: 두 사람은 비밀을 공유하며 더욱 돈독해진다.
전: 자신의 정체성에는 보다 복잡한 결이 있다고 생각한 영진.
소담에게 자신은 트랜스젠더라 커밍아웃하고, 둘은 절교한다.
결: 서로를 그리워하는 두 사람.
두 사람은 남들이 뭐라 하든 자신들이 함께하던 그 모습엔 아무 문제가 없었음을 깨닫고 화해한다.
소담이 쪽에서는 왜 영진이의 커밍아웃에 당황했는지, 소담이의 이유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서로 감정이 상하고, 조용히 절교하고... 어떤 내면적인, 개인 대 개인의 대립만 있는데.
이를 더 큰 사건과도 연관시켜야겠다.
‘아웃팅’을 당해야하나? (아, 분명 큰 공포이긴 한데, 너무 이 소재를 쉽게 쓰는 것 같기도 하고.) 전에 어떤 면접에서 사건이 없다는 말에, ‘아웃팅을 시킬까요?’ 답했는데, 참 말하면서도 바보같다 느꼈는데... 진심 다른 답이 안 떠오른다. 아웃팅? 그거 말고 뭐가 있을까.
(<안나수이~>도 아웃팅. 근데 협박의 관계라는 점이 뻔해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니면 트랜스젠더 선생님이 와? 그 선생님이 어떻게 되시는지.. 음. 그게 좋을 것 같기도.
기: 게이 영진, 소만 학교에 트랜스젠더 선생님이 온다.
남자인데도 머리를 기르고 화장하는 등, 멋있다고 생각하다가 그녀가 트랜스젠더임을 안다.
승: 영진이 소속된 동아리원들. 선생님을 배척. 영진은 몰래 선생님에게 잘해준다.
자꾸 숨기는 것이 없었던 소만에게도 거짓말을 하게 된다.
전: 갈등 폭발. 결국 아이들은 생각 없이 한 행동인데, 학부모들이 그걸 근거로 들고 일어나고.
영진도 소만에게 이런저런 거짓말 한 것이 들통 난다.
선생님은 쫓겨나고, 영진은 자발적 왕따가 된다.
(선생님의 죽음?)
결: 영진과 소만의 화해.
혹은, 선생님 복직 운동? 어쩌면 커밍아웃까지 단행하면서?
동아리원들도 하나하나 자신의 퀴어한 부분을 말하고.
(이렇게 무책임하게 희망차도 되나.)
기승전결을 이리저리 짜봤는데... 아직 잘 모르겠다. 마지막 꺼로 그래도 얼추 마음을 정한 거겠지?
그래도 글을 쓰는 동안 주인공의 주된 질문은 구체화됐다.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게 친구에게 잘못하는 걸까?’
그러니까 내 작품의 로그라인은,
'서로 베프인 영진과 소만. 둘은 새로 부임한 국어선생님이 트랜스젠더인 것을 알고 서로 다른 감정을 느낀다. 그 감정이 서로의 관계에 관한 것으로까지 번지는 두 사람. 다툼은 곧 소문이 되고. 두 사람은 과연 이들의 감정을 악용하는 주변인들의 방해를 헤치고, 자기자신과 친구와의 관계 모두를 온전히 지켜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