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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티서 Oct 21. 2021

혐오, 협소한 존재의 자리

다락방의 미친 여자

 작년 이맘때쯤 길에서나 회사에서 유독 게이라는 단어가 많이 들려왔다. 뭐 귀에는 뭐만 들린다고 단순히 내가 예민한 탓이겠거니 했다. 마스크를 투과한 말은 발음이 조금 뭉개지기 마련이니까. 뒤늦게 게이들과 심지어 이 코로나 시국과도 관련된 무슨 사건이 벌어졌음을 뉴스를 통해 알게 됐다. 이태원의 게이 클럽에서 코로나가 전파되어 코로나 확진자의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는 소식이었다.


 ‘이 시국에 클럽엘 가다니.’ 솔직히 내가 처음 느낀 감정은 딱 저 수준이었다. 그 외의 어떤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모두가 마음을 모아 코로나 확산을 방지해야 할 때였고, 그런 가이드라인을 어긴 것은 분명 잘못처럼 보였다. 좀 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보니 사람들도 처음에는 그 정도의 우려로 이야기를 시작하고는 했다.

 

 하지만 한 번 꺼낸 ‘게이’ 화제에는 곧 이런저런 살이 붙기 시작했다. 그들이 에이즈도 옮겼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셨기에, 사실 퀴어는 다 좌파라, 개X새끼들 그놈들이 항상 문제니까 등등. 코로나라는 화제가 쉽게 항문성교에 대한 혐오감 표출이나 뚱뚱한 몸매를 가진 게이도 있다는 엉뚱한 이야기로 튀었다. 개중엔 코로나 확산을 반기는 듯한 반응마저 있었다. 이참에 다 죽어버리면, 적어도 이참에 그놈들이 모두 색출된다면 좋겠다는 류의 반응들이었다.


 ‘병원에 가기도 무섭겠다.’ 자연스레 내게는 이런 생각이 생겼다. 만약 하필 지금 시기에 안 그래도 남직원들끼리의 ‘의기투합’에 잘 참여하지 않던 직원이 선별진료소를 다녀온다면? 하필, 실은 흔한 경우이기도 한데, 그 직원의 상사가 호모 포비아라면? 그 직원의 직장에서의 생활이 쉽게 위협받을 것 같았다. 방역지침을 한 번 어겼다는 잘못 때문에 그 사람은 2차, 3차의 보복을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해가 유독 소수자의 삶을 취약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나는 이런 광경들을 목격하며 키웠다. 에이즈균과 메르스 바이러스가 합쳐지면 슈퍼 바이러스가 된다던 2015년의 퀴어 페스티벌 반대 집회의 경우는 또 어땠는가? 성소수자들은 유독 인류의 위기 상황에서 병을 전염시키고 위기를 초래하는 존재로 몰렸다. 이 과정에서 실제 반대집회의 집합 인원이 몇 배는 더 많았다는 객관적인 사실은 쉽게 가려졌다. 아예 퀴어 박멸이 곧 인류의 건강을 지켜줄 거라는 무시무시한 비약도 서슴지 않았다.


 곰곰이 따져보면 당시의 코로나 확산을 이태원 게이 클럽 발 유행이라 말하는 데에도 좀 어폐가 있었다. 이태원에는 게이 클럽만 있는가? 게이 클럽에 가는 손님들은 모두 게이들뿐인가? 애초에 코로나라는 이미 존재하던 바이러스를 마치 게이들의 소굴 안에서 새로이 생겨난 위험요소처럼 취급할 수 있는가? 코로나와 맞서는 긴 과정에서 유독 그때의 상황을 똑 떼어 내 ‘게이 클럽 발 유행’이라고 언급할 때, 악마화 되는 존재들은 누구인가?


 이러한 경험과 문제의식 때문에 나는 코로나에 대처하는 온갖 정책과 선전 문구를 그저 끄덕이기만 하며 바라볼 수 없었다. 홍대에서 원어민 강사들을 중심으로 코로나 변종 바이러스가 유행한다고 했을 때. 그들이 하필 또 음악 바에서 코로나를 전파시킨다고 했을 때. 나에겐 자연스레 이런 생각이 스쳤다. 전염병이라면 당연히 물 건너 온 사람들이 더 취약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들이 병에 걸린 걸 오직 그 사람들의 탓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게다가 이번에도 왜 하필 술집일까.


 나는 소수자들일수록 동류의 사람들을 주변에서 찾기 어려우리라고 짐작한다. 누군가에게는 명절에 가족을 만나는 일이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어떤 퀴어들은 갑자기 한산해지는 거리에 홀로 남아 자신에게는 법적인 가족이 존재하지 않음을 실감하기도 한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기에, 자연스레 소수자들이 자신과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아지트들도 발달해왔다. 이들은 혐오와 차별을 피해 대부분은 밤 시간대에 특정한 동네에 모였으며, 그 중 대부분은 술이나 음악과 함께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이 시국에 술잔을 기울이려 모였다며 누군가는 황당하게 느낄 만도 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모임공간이란 보통의 경우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이들은 그저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인질삼아 유흥을 즐기는 존재들인가? 그렇다면 왜 우리는 어떤 종류의 유흥에 관해서만 더욱 철저한 규제를 바라는가. 룸싸롱 등 각종 성매매 업체들의 경우는 어떤가? 이 업체들의 주요 고객층은 누구인가? 왜 사람들은 코로나 전파를 방지하기 위해 룸싸롱의 고객들의 신상을 낱낱이 밝히자는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 것일까?


 우리는 6시 이후 2인 집합 제한이나 가족 외의 다른 사람들이 한 공간에 숙박할 수 없다는 규칙이 코로나의 확산을 방지하는 데 필수적인 정책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 코로나가 가장 많이 감염되는 장소는 바로 가정이기도 하다. 코로나에게는 호모 포비아가 없어 그들이 소위 정상가족이건 아니건 간에 관계없이 전파될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 다르게 나는 내 주변에서 오히려 다른 누구보다 방역 지침을 철저히 지키는 퀴어 페미니스트들의 사례를 자주 접한다. 나와 내 친구들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오죽하면 우리는 코로나 시국에 발맞춰 꾸준한 우울감마저 느끼고 있다.


 친구의 경우는 또 다르겠지만, 내 경우는 그 우울감이 종종 공간에 대한 불만으로 표출되고는 한다. 실내 생활을 해야만 하는 상황인 만큼, 내가 몸을 담고 있는 집의 풍경과 크기가 더욱 중요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살던 집은 5평의 월세방이었다. 작은 공간이었지만 서울 안에 구하다 보니 월세는 50만원이 조금 넘었다. 처음 구할 때는 나름대로 자신도 있었다. 잘 때 깔았던 매트릭스를 치우고 아침마다 요가를 하고, 책상은 작업 공간이니 최대한 쾌적하게 비워두고, 근처에 산이 있으니 너무 답답할 때는 산행을 해도 된다고. 막상 겪어보니 내게는 그만한 의지력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나마 있던 의지력마저 좁고 더운 방이 쪽쪽 빨아간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지난 3달을 해가 떴다가 다시 어두워지는 시간까지 그저 누워만 지냈다.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던 술을 매일 마시며 취기에 감정을 상당히 의존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외로웠다. 그래도 사람을 대하고 살 때는 느끼지 못했던 그런 종류의 감정이었다. 물론 그 동안에도 과외는 꾸준히 나갔다. 일에 꼭 필요한 줌 회의며 스터디에도 꼬박꼬박 참여했다. 하지만 일적인 순간이라 제대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내게는 어떤 부연설명 없이도 소수자인 나의 감정을 그대로 토로할 수 있는 장이 필요했다. 적어도 코로나 시절 이전에는 버스 몇 번만 타면 찾아갈 수 있는 그런 공간들이 존재했었다. 


 지방에 살아야 하나 하는 고민도 그맘때쯤 시작하게 된 것 같다. 서울에 사는 가장 큰 장점은 친구들과 교류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는데, 이제는 그 마저도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방에 살면 같은 월세에 조금 더 넓은 공간을 사용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지방은 서울보다 퀴어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 걱정되기도 했다. 과연 좀 더 넓은 공간만 있으면 내가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트위터만 봐도 퀴어 친구를 무려 강원‘도’의 범위에서 찾으며 눈물로 호소하던 트윗들이 많던데?


 나는 꼭 나와 같은 답답함을 느끼는 여성이나 퀴어들이 나 외에도 많으리라 짐작한다. 동시에 몇몇 남초 커뮤니티에선 피해사실이 없는 피해의식일 뿐이라며 ‘코로나 블루’라는 단어 자체를 조롱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이들은 과연 퀴어들이 겪는 구체적인 고민의 지점이 무엇인지 짐작이라도 해봤을지 의문이다. 아마 그래본 적 없으리라. 세상은 종종 퀴어가 고립되는 상황에는 무관심하다가도 그들이 혹여 사회에 안 좋은 영향력을 전염시킬까 하는 기우에는 지나치게 집중하니까. 이렇게 보면 퀴어들 역시 이 시대가 다락방으로 내모는 미친 존재들 중 하나같다. 


 코로나는 4단계에 접어들었고 나와 친구들은 그럭저럭 버티는 중이다. 코로나가 정말 끝나기를 진심으로 바라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우려되기도 한다. 정말 다 끝일까? 위기의 순간마다 퀴어가 적으로 호명되는 현상이 과연 그 이후의 세상에는 어떤 파장을 남길까. 하나둘 문을 닫는 퀴어 공간은 다시 회생 가능할까? 법적인 결혼이나 혈연으로 묶여 있지 않은 퀴어들은 이제 어디에서 ‘함께 살고 있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을까? 어쩐지 우리가 사는 세상이 한층 더 협소해진 것 같아 진심으로 걱정된다.



본 프로젝트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창작실험활동에 선정, 지원을 통해 제작된 프로젝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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