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쏘야 Jul 25. 2023

도지가 뭐길래?!

[병원 이야기, 급성췌장염, RI 인슐린]

급성췌장염으로 입원한 지 2주가 지났다.

그동안 너무 아파서 마약성 진통제를 맞으면서

염증 수치가 내려가기를 기다렸다.


"으어어어 억!!"

"아파요 오오..."


급성췌장염이 심해서 계속 구토를 하다 보니

똑바로 누우면 속이 울렁거려서

침대를 45도  이상 세워놨다.

진통제를 맞기 위해 콜벨을 누르려면

침대 산을 오르고 올라 콜벨까지 손을 뻗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의문이 생겼다.

'어랏... 이상하다?'

'입원한  2주나 지났는데, 인슐린 주사를 맞은

기억이 없어...!'

'이따가 간호사 쌤 오시면 여쭤봐야겠다.'


버스의 법칙!

늘 보이던 버스는 기다리면 오지 않고,

늘 밖에 있던 간호사 쌤은 기다리면 오지 않는다.

 

'이런 일로 콜벨을 누를 수는 없고...'

'쌤 기다렸다가 오시면 여쭤봐야겠다!'


드디어 기다리던 액팅 간호사 쌤이 오셨다.

"쌤, 저 오늘 쌤 정말 기다렸요."

"쏘야야, 왜 IV 빠졌니? 안 되는데..."

"아니.. 그런 거 아니에요."


"쌤, 저  입원한 지 2주나 지났는데 인슐린주사 

안 맞아요?"

"혈당 계속 300, 400 이라면서  

저는 인슐린 주사를 맞은 기억이 없어요." 


"하하하..."

"쏘야야, 여기 콤비 수액 보이지?"

"여기에 RI 인슐린이라고 20 단위나 들어가 있어."

"안 그래도 주치의 선생님이 혈당이 높다고

수액에 4 단위만 더 믹스하자고 하셨어."


"쌤, RI  인슐린은 뭐예요?"

"란투스는 기저 인슐린이라고 하고..."

"애피드라는 초속 인슐린이라고 하는데..."

"쏘야야, 이건 네가 맞던 인슐린이랑 다른 종류의 인슐린이야."

"여기 믹스된 인슐린은 휴물린 R이야."


'아하...!'

드디어 2주간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인슐린의 비밀이 풀렸다.

'휴물린 R은 어떤 인슐린일까...?'


데이번 선생님이 퇴근하시고

이브닝번 선생님이 라운딩을 오셨다.


"아...!" 

"쏘야야, 언니 출근하기 전에 IV 라인 새로 잡지!"

"언니 출근하자마자 첫 일이 쏘야 IV 라인 잡기라니..."

"이거 실패하면 언니 오늘 자존감 떨어져서 일 못한다."

"쌤, 혈관이 없는 건 제 잘못이 아니잖아요!"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IV라인을 잡았다.

"언니 퇴근 전까지 제발 주사 안 빠지게 잘 가지고 있어!"


콤비플렉스는 고농도의 수액이라서

혈관통이 매우 심하다.

'아.. 너무 아파!'

'누가 제 팔 좀 어떻게 해주세요!'

 

수액은 너무 빨리 들어가도 안 되고,

너무 천천히 들어가도 안 된다.

시간당 정해진 처방속도가 있어서

아프다고 마음대로 수액 속도를 조절하면 안 된다.


"아니.. 조강지처를 버리고 바람을 피운다고?"

"저 여자가 나쁜 X네."

"에휴... 말을 하라고 말을.. 답답해서 못 보겠네!"


저녁 7시 30분,

모든 병실 TV 앞에 최고의 막장 드마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였다.


이번에는 TV 앞에 있는 침대로 배정을 받았다.

'저기... 그건 제 폴대인데요!'

TV를 좀 더 가까이에서 보려고 내 폴대를 침대

안쪽으로 밀었다.


I/O(섭취량/배설량)를 물어보러 온 액팅

수액을 보더니 갑자기 나를 불렀다.


"김쏘야님, 잠깐 병실 밖으로 나오세요!"


"너 언니들이 오냐오냐 해주니까 눈에 보이는 게 없는 거야?"

"야야야.. "

"이게 어리다고 예뻐해 줬더니만..."

검지 손가락으로 이마를 툭툭 치며 한쪽 구석으로 밀었다.


"제가 뭘..."

"이게 어디서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박 말대꾸야?"

"네가 뭘 잘했다고...  눈을 그랗게 뜨고 쳐다봐?"

'그럼, 눈을 세모게 뜨고 봐야 하나...?'

'아니면 네모나게...?'


순간 시간이 멈췄다.

너무나 익숙한 이 말투, 느낌, 분위기...!


사실, 나는 위계질서가 강하기로 유명한

예술계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하루 한 두 번 집합은 일상이었고,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는데

몇 시간씩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이고 혼나야 했다.


'오늘은 서서 혼나고 있으니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가해자의 시간은 정상적인 시계와 같이 빠르게

지나가지만,

피해자의 시간은 같은 상황이 반복될 때면

시계를 거꾸로 되돌려서

여전히 멈춰있는 그때 그 자리로 돌아간다.

 

"김쏘야, 너 도지 만졌어, 안 만졌어?"

"이거 네가 만진 거 맞지?"

"하... 오늘 일진 사나운데 너까지 나를 화나게 만드니?"


나는 그때 그 시절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죄인이 된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마음속에 억울한 마음이 차오르니

내 안에 숨있던 용이 밖으로 나와서 불을 뿜으려고 했다.

'안돼,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줘!'


이 불을 여기서 뿜어버리면 안 되니까

수액이 주렁주렁 달린 폴대를 들고 비상구로 뛰어갔다.


드라마에서는 화가 나면 IV 주사를 뽑고

피 한 방울 없이 병원 밖으로 나갈 수 있지만

현실은 드라마와 다르다,


"아아.. 테가덤 좀 살살 떼어 주세요!"

"피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아요."

"어어...? 쌤, 여기 피가 계속 흘러요."


드라마 주인공처럼

호기롭게 IV 바늘을 빼도망가고 싶지만

현실은 피가 철철철 바닥흘러서

빨리 지혈하지 않으면 온 사방이 피로 물든다.


내 안에 용이 크아아악 무섭게 불을 뿜기 전에

빨리 공터로 가서 보내줘야 한다.


평소에는 얌전히 존재감도 모르게

내 속에서 잠들어 있지만...

답답하고 억울하고 화가 나는 일이 있을 때면

깊은 잠에서 깨어나 불을 뿜는다.


폴대를 들고 정신없이 10층에서 내려가고 있었다.

'휴.. 이제 3층이네!'


쿵...

"아, 깜짝이야!"

"김쏘야님..? 네가 왜 여기서 나와?"

"쌤 오늘 당직이니까 사고 치지 말고..!"


다시 힘을 내서 폴대를 들고 계단을 내려왔다.


병원 정원을 지나서 후문을 나왔다.

'이제 이 구름다리 육교만 넘으면 공원이네!'


덜컹덜컹... 딸딸 딸...

매서운 칼바람을 맞으며 폴대를 끌고 구름다리를 건너는데 폴대 끄는 소리가 사방으로 퍼졌다.


'사람도 없는데 괜찮겠지...?'


드디어 공원 구석 인적이 드문 곳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용을 풀어줘야겠다.'


"야아 아아아아아 아!!!!!"

"도지가 뭐냐고!!"

"도지인지 그거 내가 건들지도 않았!"

"뭔지 알아야 그걸 만지든지 말든지 하지!"


"야아 아아아아아!!!"


소리를 지르고 나니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아.. 추.. 추워...!'


*본문에 나오는 용어 설명


RI 인슐린(Regular insulin) 속효성인슐린

당뇨병에 사용하는 빠르게 작용하는 인슐린

효과는 즉각적이고 강하며 단기간 지속.

보통 주사 후 15분 이내 효과가 나타나며

3시간 정도에 정점에 닿은 후 6시간 정도 지속


휴물린 R (Humulin R Injection 100 unit)

휴물린알주 100 단위

속효성 인슐린 주사제로서 혈당 대사를 조절하는 약


도시플로우(도지, Dosi flow) 수액 유량조절기


*참고자료 및 료출처


https://m.100.daum.net/encyclopedia/view/142XXX0000198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57XA11A4370A0009







 


 







 





매거진의 이전글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