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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야 Jul 27. 2023

환자의 눈에 비친 간호사 태움

[1형 당뇨, 급성췌장염, 병원이야기]

'아.. 너무 추.. 추워!'


정신없이 병원 밖으로 뛰어나와서

외투를 입을 겨를이 없었다.

한겨울에 얇은 환자복을 입고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나왔다.


내 안에서 뜨겁게 활활 타오르던 용이

분노를 표출하고 나니 자기 몸이 추워졌다.


'핸드폰이 어디 갔지?'

너무 급하게 나와서 핸드폰을 충전

아놓은 것도 까맣게 잊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걸까?'

'조용히 들어가면 아무도 모르겠지...?'


꽁꽁 얼어버린 손을 호호 불면서 공원을 나와서 

구름다리 육교를 건넜다.


덜컹덜컹.. 딸딸 딸...


'기분 탓인가..?'

'폴대 끄는 소리가 왜 이렇게 크게 울리지?'


적막한 겨울밤, 아스팔트에  폴대 소리가

차가운 공기를 타고 더욱 크게 울려 퍼졌다.


하아...

'이제 병원 후문이네...!'


'정원만 지나면 본관 입니까...'

'조금만 더 힘내자!'


"김쏘야님!"

"쏘야야, 어디 있니?"

"쏘야야!"


멀리10 병동 간호사 쌤들목소리가 들렸다.


'아.. 몰래 들어가려고 했는데!'


"야, 이 지지배야!

추운데 어디서 뭘 하다가 이제 나타난 거야?"

"손이 꽁꽁 얼었네! 내가 너 때문에 못 산다!"

"언니가 뭐라고 했어! 당뇨 환자는 발을 조심해야 한댔지?"

"동상 걸리면 어떻게 하려고 겁도 없이 이 추운 겨울에 맨발로 나온 거?"


"우리가 너를 얼마나 찾으러 다녔는 줄 알아?"

"핸드폰은 병실에 두고 나갔지, 안내방송 몇 번을 해도 들어오 않지."

"언니들이 네 걱정을 얼마나 했는데!"


"너 때문에 언니들이 보고서 쓰고 집에도 못 갈뻔했어."

"제가 나갔는데 왜 쌤들이 보고서를 써요?"

"얘가 뭘 모르네..!"

"근무시간 동안 맡은 환자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간호사가 다 책임져야 해."


'이상하다.. 밖으로 나간 건 나인데...'

'왜 쌤들이 보고서를 쓰고 집에도 못 가는 걸까..?'


사실을 알고 나니 쌤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죄송해요..."


"쏘야야, 죄송하다면서 갑자기 왜 울어?"

"도.. 도지가..!"

"쏘야야, 울지 말고 말해야 언니들이 알아듣지!"

"도지.. 그거 제가 안 만졌어요!"

"도지가 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만져요."


"지숙쌤, 오늘 B팀 액팅 쌤이 누구였어?"

"여우쌤인데..."

"아.. 왕여우 쌤이었어?"


"우리도 오늘 그 쌤한테 엄청 혼났는데..."

"아니, 재가 될 때까지 활활 태움 당했지."

"여우쌤, 이제 하다 하다 환자까지 태우시네?"

"아니, 아니지. 쏘야는 환자니까 태움은 아니고..!"


"쌤, 태움이 뭐예요?"

"응.. 그냥 그런 게 있어."

"쏘야야, 그런 건 몰라도 돼!"


"집합해서 이유 없이 혼나는 그런 거예요?"

"너 낳고 너네 엄마는 미역국을 먹었다니?

그 미역국이 아깝다. 아까워!"

"나는 네가 숨 쉬고 있는 것도 너무 싫어!"

"김쏘야,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지 말라고 했지!"


"태움 당하면 이런 이야기도 들어요?"

"쏘야야, 너 혹시 우리 태움 당할 때 지켜봤니?"


"쌤들도 태움 당할 때 맞아요?"

"한 사람만 놓고 빙 둘러서 발로 밟거나..."

"일렬로 쭉 서서 뺨을 맞거나..."


"니, 사람을 왜 때려? 그럼 신고해야지!"

"그건 그렇고, 쏘야야!" 

"너는 무슨 애가 이런 무서운 이야기를 무덤덤하게 하니?"

"우리 쏘야 인생 2 회차니?"

"혹시, 언니들보다 나이가 더 많은 건 아니지?"


깔깔깔...


시간이 약이라고

나의 고등학교 시절 슬픈 이야기를

무덤덤하게 말하는 날이 왔다.


너를 만나고 내가 가장 자책했던 일!

힘든 상황에서 꾸역꾸역 참아가며

어떻게든 견뎌보겠다고 버둥을 친 게 

과연 잘한 일이었을까...


만약, 그때 내가 일찌감치 포기하고

인문계 고등학교전학을 갔다면

너를 만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쌤, 여우쌤 기분파예요?"

"라운딩 올 때만 해도 기분이 엄청 좋아 보였는데"

"갑자기 저녁에는 화내시니까 당황스러웠어요."


"그래, 쏘야야 우리도 그 쌤이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어."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어쩌다가 너랑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니..?"


병동 복도를 지나가다 어떤 방에서

옷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나오는 쌤들을 봤다.

저 쌤들은 왜 그럴까 영문을 몰랐는데

내가 겪은 집합과 비슷하다고 하니

나도 모르게 신규쌤들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그때부터 나는 카트를 밀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신규쌤들을 보면 마음 한편이 짠해져서

사탕이나 초콜릿, 에너지바 등 먹을 것을

주머니에 넣어드렸다.


"쌤, 힘내세요!"


"쏘야 데리고 왔어요."

"쏘야야, 너 어디 있었어?"

"지금 시간이 몇 시인 줄 알아?"

"언니들이 얼마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놈의 지지배! 수액을 주렁주렁 달아놔도 잘만 돌아다니네!"


여우쌤이 아무렇지 않은 듯이 웃으며 반겨주었다.

"쏘야야, 언니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IV 주사는 안 빠지고 잘 있지?"


'와...! 아까 나한테 화낸  다 잊어버린 건가?'

'어쩜 저렇게 태연할 수 있지?'

'으... 소름 돋!'


"네, 주삿바늘 잘 가지고 있어요."

"오케이!"


'나이트번 선생님 오실 때까지 조금만 버티자!'

수액이 들어가는 팔로 폴대를 들었더니 팔이

퉁퉁 부었다.


"하아..."

"쏘야야, 5분만 전에 아프다고 주사 다시 놔달라고 하지...!"

"에휴... 쏘야야, 언니 혈관이라도 주고 싶다."

"우리 병동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보다 네가 혈관이 더 없어!" 


그렇게 그날의 도지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다음날 산책하러 병원 정원을 돌다가

어제까지 못 보던 팻말을 발견했다.


[경고문-환자복을 입고 이 문 밖으로 나가면 병원법에 의거하여 강제퇴원 조치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절대 밖으로 나가지 마세요! 한국 대학교 병원장 백 ]


'어젯밤 사건 때문에 그런 건가...?'

'괜히 미안해지네..!'


너를 만나고 병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나는 병원에서 다양한 일을 겪게 되었고,

때로는 들어도 못 들은 척, 봐도 못 본 척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본문에 나온 용어 설명


태움 문화

간호사 사이에서 발생하는 직장 내 괴롭힘을 뜻하는 은어.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의미로 ‘태움’이라 한다.


집합 

주로 예체능 계열의 학교 및 학과에서 이루어지며

교내 불문율(학년/학번 간 위계서열, 청소, 인사 문제, 기타 등)이 깨졌을 때 소집하는 일.


*참고자료 및 자료출처


https://dic.daum.net/word/view.do?wordid=kkw000938191&supid=kku011048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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