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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젤라씨 Mar 04. 2019

쿠바 크루즈, 시간이 멈춘 곳으로의 여행

세계에서 가장 특이한 장소로.


쿠바 Cuba.


빛바랜 사진에서 느껴지는 낮은 채도의 컬러감, 혹은 눈이 시릴 정도의 화려한 원색이 공존하는 독특한 색감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쿠바를 다녀간 이들은 그곳이 결코 녹녹한 여행지가 아님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아름답고 멋진 곳이라 추억했다. 공원과 같이 국가에서 정한 공공장소에서 별도로 구입한 인터넷 카드로만 와이파이 접속이 가능하며, 자국민과 외국인을 구분하여 사용하는 두 가지 화폐 단위가 존재하는, 흑백 영화에서나 봤을법한 50년대 올드카가 쌩쌩 달리는 곳. 어디서나 음악과 춤이 끊이지 않는 흥겨운 곳이라고. 


미국과 54년간의 오랜 단교 끝에 2015년부터 국교가 정상화되어 현재 미국에서 쿠바 여행의 인기는 굉장히 높다고 한다. 언제 국교가 단절될지 모른다는 마음에 많은 이들이 쿠바로 향한다고 한다. 특히 북미에서 쿠바와 물리적인 거리가 제일 가까운 곳은 플로리다의 마이애미인데, 공교롭게도 이곳은 '크루즈의 고향'이라 불리는 곳이 아니었던가. 쿠바에 크루즈가 몰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아바나 시내에서 불편하게 사용해야 하는 인터넷은 크루즈 안에서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었고, 오랜 단교로 향신료를 구할 길이 없어 자급자족 식문화를 유지한 쿠바 음식에 대한 걱정 없이 호화로운 크루즈의 식당을 이용할 수 있다. 쿠바를 여행하는데 최적화된 여행으로 볼 수도, 다른 한편으론 반쪽뿐인 여행으로 볼 수도 있지만, 부모님과 함께하는, 게다가 부모님의 칠순을 기념하는 여행이라 모든 게 불편 없이 안전하도록 준비했다. 아니, 불편 없이 안전해야 했다. 


쿠바 크루즈는 미국 마이애미를 떠나 미국의 최남단인 키웨스트, 쿠바 아바나(하바나, Habana)를 돌아 다시 마이애미로 돌아가는 5일간의 짧은 일정이었다. 보통 반나절 정도 기항하는 다른 크루즈 항구와는 다르게 아바나에서 1박, 오버나잇 하는 일정이라 아쉽지 않게 아바나를 돌아볼 수 있다. 


불과 몇 달 새 다양한 미디어에서 쿠바를 배경으로 한 콘텐츠가 제작되어 이슈가 되고 있지만, 내가 쿠바를 방문했던 시기엔 여전히 미지의 세계였고, 특히 쿠바 크루즈와 관련한 정보를 얻기는 쉽지 않았다. 아바나에 도착하기 하루 전 인터넷 뉴스로 TV 드라마 '남자 친구'의 촬영 소식을 접했는데, 방송이 시작되기 전이라 포스터 사진만으로 촬영지를 유추하며 이곳만은 꼭 가보리라 지도에 표시를 하기도 했었다. 드라마를 즐겨보진 않지만, '굉장히 멋진 곳이니 촬영지가 됐겠지'라는 제작진에 대한 믿음이랄까.


아바나 시내는 대부분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규모로 울퉁불퉁 돌로 만든 도로를 걸으며 중세 분위기를 느낄 수도 있지만, 올드카 혹은 인력거를 이용한 클래식한 여행도 놓칠 수 없다. 흥겨운 리듬의 남미 음악이 크게 울리는 택시 안은 이미 클럽과 다를 바 없다. 


16세기 스페인에 의해 건설된 도시인 아바나의 골목골목에서 느닷없이 만나게 되는 잘 보존된 화려한 건물들에서 아바나의 반전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현재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호텔이나 레스토랑, 바로 운영되는데 밤늦은 시간까지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 마치 유럽의 부유한 작은 소도시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말레콘이요"


이른 아침, 한적한 말레콘 해변을 찾기 위해 택시를 잡았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가 다 말레꼰이에요"라는 택시기사의 대답은 그대로 드라마의 대사로도 방송되었다니 신기하다. 



눈에 보이는 곳이 모두 말레콘이라고.



실제로 택시기사와의 대화는 아름답지 못했다. 말레콘은 정차할 곳이 없어 시내를 한 바퀴 돌아서야 겨우 맞은편에 잠시 정차할 수 있었고 택시비로 실랑이까지 벌이고 나니 문득 궁금해진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어디에서 택시를 내렸을까?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카메라로 찍어본 흑백사진, 카메라 셔터도 없이 조리개 입구를 열었다 닫는 걸로 촬영 끝. 두 번의 번거로운 인화 단계를 거쳐야 비소로 받을 수 있는 이 사진은 휴대폰으로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요즘 시대에 생소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그 강렬한 여운은 꽤 오래 남을 것 같다.


시간이 멈춘 듯 착각이 들 정도로 느리게 흘러가는 쿠바의 시간은 개방의 물결에 맞춰 변화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관광객이 가득한 시장에서도 그러했고, 온통 공사 중인 아바나 시내의 건물과 도로가 그러했다. 


'아바나'는 현재 사회주의 국가의 모습과 번영했던 과거의 흔적들과 개방 이후 변화 중인 역동적인 모습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독특한 분위기가 인상적인 곳이다. 이곳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물결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았으면, 여행자의 이기적인 마음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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